우리도 그녀들처럼
아... 잠깐만 나 병원에 좀 다녀올게. 이 스트레스 체크 정확한 거지? 나 12개 나오는데...
심각한 거지? 난 왜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못했지? 어르신들 기준이면 나 더 심각한 거 아냐?
무의식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건가? 지루성피부염 때문에 찾은 피부과에서도 위경련과 속 쓰림으로 방문한 내과에서도 스트레스를 줄여야 한다는데, 정작 나는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생각을 못하고 있네.
내가 좀 단순해서 그런가? 금세 화르륵하면서 열을 내다 가다 조금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원상태로 돌아와 있는 거 보면. 뭐 살다 보면 사소한 스트레스 누구나 받지만 금세 잊어버리는 것도 내 능력인가 보다.
예전에 “넌 꿈이 뭐야?”했을 때 네가 “도서대여점 사장님”이라고 했을 때 생각나네.
그 꿈이 시대가 변하면서 ‘작은 독립서점 사장님’이 되는 것으로 바뀌었어.
얼마 전 내가 네게 “네 꿈은 도서대여점 사장님이었잖아”라고 해줘서 잊었던 꿈을 기억해냈다고 했잖아.
근데 나는 네가 지금까지 준비해왔다고 생각해. (너의 모든 선택들이 이길로 인도한 거야) 너는 ‘남편의 꿈이야’라며 카페를 운영했잖아. 카페를 하면서 커피 내리는 법, 디저트를 만드는 법을 익혔고 2층을 활용한다는 명목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대여도 해주면서 사진 찍는 법도 배웠어. 그리고 내가 ‘꽃순이’를 꿈꾸었던 소 키우기도 준비했잖아. 아. 소가 이거랑 무슨 상관이냐고? 내가 생각하기엔 너는 소를 키운다는 모습을 소똥을 치우고 소 먹이를 주며 멜빵바지 입고 삼지창 들고 다니는 모습이 아니라 전원생활을 꿈꾸었던 거 아닐까? 그러니 넌 이미 조용한 곳에서의 생활을 상상하고 준비했잖아. 심지어 넌 자전거 타면서 꽃시장에 가서 스스로를 위해 꽃을 사는 정성도 보였어. 모든 게 다 연결되지? 넌 조용한 시골에서 작고 예쁜 독립서점을 열어 오는 손님들에게 네가 내린 커피와 달콤한 디저트를 대접하며 이야기를 나눌 거고 손님들이 없는 비 오는 한가한 날은 여유롭게 앉아 사진을 찍으며 서점 홍보를 하고 이름 모를 무수한 꽃들로 카페를 장식할 거야. 간혹 날이 좋으면 잠시 문을 닫고 가까운 곳으로 산책도 나가면서... 그렇게 늙어갈 거야. 와우. 이렇게 쓰고 보니 넌 정말 네 꿈을 향해 모든 선택들을 했네.
그럼 넌 묻겠지? “네 꿈은 뭐야?”라고, 우스울 수도 있고 한심할 수도 있는데 난 아직 내 꿈이 뭔지 모르겠어. 어릴 때는 꿈이 화가, 오지여행가, 여행 디렉터 등으로 직업을 이야기했는데 지금은 글쎄 내 꿈을 뭘까? 의외지? 넌 꿈이 뭐냐고 제일 많이 묻는 사람이 정작 자신의 꿈은 모른다는 게 말이야.
네가 물었는 때는 '강사, 작가'등등의 많은 것들을 멋있는 척 내 꿈인 척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조금 지나니 알겠더라 내 꿈이 아니라 그냥 그런 모습의 사람을 존경하는 거였어. 난 그들만큼의 노력은 하고 싶지 않고 그들이 받은 보상만 탐내는 것 같아. 그런 꿈을 이야기하고는 금세 지쳐버리더라. 그럼 내가 즐겁지 않다는 거고 그건 내 꿈이 아니란 거잖아. 그렇지? 그냥 지금처럼 사는 게 내 꿈이 될 수 있을까? 이건 읽고 네가 “정신 차려!”할 것 같지만,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인데 지금 난 행복하거든 그럼 된 거 아닌가? 이런 거 말고 무엇이 되고 싶은 모습은 생각이 안 나. 난 지금의 나에 만족하고 있나 봐.
나를 위해서 커피를 사고 책을 읽을 시간이 있고 이렇게 이야기를 할 네가 있으니까.
이미 충분한 것 같아. 이제 뭘 또 꿈이라고 아등바등하고 싶지 않다면 사실은 내가 지쳐있는 걸까?
어제는 지인이 온라인 강사 수료식이 있다고 해서 온라인으로 참석해서 들었거든, 모르는 8분의 강사님들도 계셨는데 보면서 “참 이 분들은 열정적이다. 나는 뭐 하고 있나?”생각을 했어. 그러다가 “나 열심히 살고 있지. 후회 없이 살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책 읽고 생각하고 시간을 기록하고...”하면서 자기 보호적인 생각들을 했어. 아마 뭔가 시작하기 귀찮아서 핑계를 만들어낸 걸 지도 모르겠어. 나도 배워서 성장하고 변화하고 싶은데 현실에 타협해버리고 ‘안돼!’하며 마음속으로 선을 그었나 보다. 그래도 오늘은 조금만 더 쉬고 싶어.
오전에 청소하고 비 맞으면서 고령장에 갔다 왔더니 으슬으슬 감기 기운이 좀 있는 것 같거든.
우선은, 10년 후 네가 끓여주는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달콤한 조각 케이크 한 조각 같이 마시며 네가 아침에 사 왔다고 자랑하는 프리지어 한 단이 놓인 작은 테이블에서 우리가 쓴 이 이야기를 책으로 보면서 “이때 이걸 쓰길 잘했다”하며 수다 떨 수 있는 옆집 사는 내가 되는 걸 목표로 생각해봐야지.
아 또 생각났어. 너 뜨개질을 배워서 비 오는 날 동네 아줌마들 모아놓고 뜨개질 강의도 할 것 같아.
그럼 김치전은 내가 구워갈게. 나 결혼하고 알았어. 나 은근 전 잘 굽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