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그녀들처럼
사람의 눈이 밖으로 향하게 되었잖아.
그 이유가 내가 아닌 남을 보라는 의미라고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나.
그 의미는 남을 배려하라는 것이었겠지만, 우리는 그 눈을 카멜레온처럼 360도 돌려 남을 보고 나를 보며
비교를 하고 있는 게 아녔을까? 누구나 그래. 누구나 남을 의식하고 남의 시선에 갇혀 사는 거지.
너도 나도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이들이 전부.
어쩌면 이런 생각에 도달한 지금도 우리는 가끔 타인의 시선에 갇힐 때가 있는 것 같아.
지금보다 좀 더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의 기준이 '지금은 못살고 있으니까' 혹은 '지금은 내가 저 사람보다 덜하니까' 하는 생각이 전제된 것 아닐까? 행복의 기준조차도 남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막상 나를 그 기준의 자리에 세웠을 때 ‘행복’이란 게 뭔지 모르겠더라. 많이 불안했던 것 같아.
‘행복이란 뭘까?’의 질문을 처음 했을 때, 행복이란 게 항상 즐거움만을 얘기하는 건 아니라더라 슬픔도, 기쁨고, 화나고 우울한 것도 모두 행복이란 글을 읽고, 그럼 우울한 지금도, 슬픈 지금도 행복인 거잖아. 그냥 지금 살아서 감정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행복인 거였어. 아마 그때 그래서 네게 “나는 지금 행복해”라는 얘길 했던 것 같아. 어른들이 “행복이 별거냐, 사는 게 별거냐”시던걸 이해하게 되었거든.
네가 말한 아이들과 목욕 후 먹는 바나나 우유와 어묵이 행복이고, 남편과의 맥주 한잔이 행복이지.
행복은 어떤 목표가 아니고 순간의 감정이래, 우리 행복한 감정을 많이 느끼면서 살자.
지금 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는데 이건 밥을 먹으라는 행복한 신호 구만.
날 너무 잘 아는 네가 질문에 대한 답을 미리 해버렸네. “넌 뭘 하면서 살고 싶니?”란 질문에 내 대답은 역시
“지금처럼”이야. 지금처럼 울고불고 화내면서 때로는 지겨워하면서 살고 싶어.
물론 남편과 캠핑카를 타고 전국일주를 하고, 마당이 있는 작은 집으로 이사해서 텃밭을 가꾸며 살고 싶은 생각도 있지. 지난주 일요일에 청도를 다녀왔어. 남편과 내가 ‘살고 싶은 집’이 서로 다르다고 했잖아. 어릴 적부터 도시 생활만 한 남편은 아파트를 선호했고, 할머니 집에서 자란 기억이 있는 나는 시골생활을 동경해서 마당이 있는 집을 원해. (참고로 시어머니는 삼층 상가주택을 사서 1층은 상가 및 우리 살림집, 2층은 당신이 사시고, 3층은 시이모님이 사시게 하고 싶다지만 이건 어머니의 로망인 걸로)
그래도 만약에 시골생활을 한다면 어디가 좋을까? 남편은 청도가 좋다더라고.
가을의 청도에 우리 부부 흠뻑 빠졌거든. 감이 익어서 주황색으로 물든 청도는 진짜 천국 같아. 대신에 비싸지. 우리 부부보다 먼저 청도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는 이들이 있으니까.
어쨌든 내가 동네를 찍고 (아직은 비밀로 해본다.) 동네도 돌아볼 겸 구경을 갔는데 길을 가다 보니 엉뚱하게 운문사 쪽을 가고 있더라. 나의 운전실력과 가끔 엉뚱한 곳을 알려주는 나의 네비 덕분에 드라이브만 실컷 하다 왔어. 하지만 역시 지금의 청도는 별로야.
가끔 내가 찍은 동네를 네이버 지도에서 로드뷰로 걸어봐. 진짜 여기서 내가 산다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야. 그럼 나도 모르게 행복해지고 ‘진짜 이곳이 내가 살 곳이다’싶어.
10년 후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서 작은 서점의 문을 열면서 커피 한잔 하고 있을 미래의 네 모습이 나도 눈앞에 선하게 그려져서 행복해. 그런 너를 보러 옆집에 살던지 멀리 떨어져 지내게 되더라도 그 길 입구에서 소리 높여 네 이름을 부르면 네가 왠지 손뜨개질한 커다란 숄을 두르고 달려 나와 줄 것 같거든.
이게 우리의 꿈이면 어떻고 망상이면 어때. 지금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라면 그걸로 충분하지.
정말 우리가 이 꿈을 이룬다면 10년 후의 우리 역시 행복할 테고...
아! 아침에 출근하면서 오늘 너한테 글을 써야 지하는 생각과 함께 네 친정 아파트에 피어있던 커다란 제비꽃이 함께 생각났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 보라색 제비꽃인데 너희 동네는 특히 꽃이 커서 진짜 탐이 났거든.
몇 번 캐오려다가 경비아저씨에게 저지당하기도 했었어. 아파트 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내가 유독 너희 집 입구 찾는 게 어려워서 자주 헤맸잖아. 나중에는 경비아저씨가 “아가씨 여기야”해줄 정도로... 그때 그 제비꽃이 생각이 났어. 나중에 내가 사는 집 마당에 그 제비꽃을 캐와서 한가득 심어야지.
그리고 집 울타리를 탱자나무로 하고 싶어. 탱자꽃향도 좋지만 탱자가 익으면 청을 만들어서 에이드를 만들어 먹고 싶거든. 혹시 네 가게에 에이드를 메뉴로 내놓는다면 내가 깨끗이 씻어서 말려 보내줄게. 그리고 탱자나무 사이사이로 쟈스민도 심고, 천일홍, 백일홍도 심어서 동네에서 제일 향기 좋은 집으로 만들고 싶어. 마을 입구에 들어섰을 때 꽃향기로 우리 집을 찾아올 수 있게.
아 참, 딸아이가 못 먹는 꽃 같은 거 말고 먹을 수 있는 걸 심으라고 했었는데,
예의상 그리고 주말 바비큐용으로 상추와 깻잎과 구석에 살포시 심어야겠다.
상추를 손바닥에 놓고 삼겹살 위에 쌈장과 고추. 마늘 얹어서 한입 가득 넣는 행복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걸 보니. 나 지금 배가 몹시 고픈 것 같아.
오늘 너의 점심 메뉴는 뭐니? 난 중국집인가?! 아니면 회사 캐비닛에 들어있는 컵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