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그녀들처럼
우선 내가 미안. 내가 독촉을 하려던 건 아닌데 독촉이 되어버렸네.
나도 재작년에 [번아웃]이 심하게 왔었어. 다른 사람들의 템포에 맞혀서 따라가기도 해야 하고 내가 하고 싶은 독서도 해야 하고 회사일도 해야 하고 정신이 없었어. 하나가 흔들리니까 그동안 해왔던 것들도 다 아닌 것 같고 헤매게 되더라. 뭔가를 놓으려니 같이 하는 사람들에게 약속했던 것들을 어기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이걸 안 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닐 것 같고 말이지. 불안하더라. 나만 뒷처지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마음이 힘드니까 몸도 아파오고 (두통이 심했어) 별 일 아닌 것에도 짜증 나고 눈물이 나고 그랬지.
몸이 힘드니까 약속이고 뭐고 우선 나부터 살고 싶다는 생각에 모든 걸 다 그만두고 쉬겠다고 했어. 정말 하고 싶은 게 뭐였는지도 모르고 그냥 책만 읽었어.
근데 그렇게 한 일주일 지났나. 책을 읽을수록 너무 행복한 거야. 기분이 좋아지고.
그때서야 알겠더라. 나는 처음에 책을 좀 폭넓게 읽고 싶었던 거였는데 점점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나보다 잘하는 사람 좀 더 앞서있는 사람과 나를 비교하고 따라가기 바빴던 거야.
뭘 하고 싶었던 걸까? 남들은 내게 ‘너무 잘한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하며 치켜세워줬는데 난 그게 정말 나의 모습인 줄 착각했던 거지. 사실 나는 그런 ‘급’이 안 되었는데 말이야.
길을 찾으려고 간 곳에서 오히려 길을 잃어버린 거야. 내가 너무 팔랑귀였어. 그래서 귀를 닫고 거리를 두면서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해줬어. 책을 읽고 싶으면 책 읽고, 놀고 싶으면 놀고. 영화가 보고 싶으면 다운로드하여서 보고 말이지. 네가 지금 힘들고 버거운 게 타인 때문이 아닐 수 있어. 스스로에게 너무 많이 해내야 한다는 짐을 들고 있는 거야. 조금은 내려놔. 네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사람이 할 거야. 그러니 부담 갖지 마. 안식년을 갖도록 해.
근데 그거 알아? 안식년이 네 말대로 성직자들이 갖는 휴식기 같은 거잖아. (거의 모든 종교에 비슷한 제도가 있는듯하더라) 근데 성직자들은 안식년 동안 사회로.. 사람들 사이로 돌아오는 거야. 속세로 돌아와 사람들 사이에 어울리다 보면 다시 떠나고 싶어지는 감정이 들 때 돌아가는 거겠지? 우리는 반대잖아. 속세에 어울려있다가 떠나고 싶어서 잠깐 떠나는 것. 우리도 안식년이 꼭 필요한 거야. 쉬어도 될까? 고민하지 말고 쉬어.
나 오늘 브런치 북을 발간했어. 코로나로 격리되면서 어머니가 해주시는 음식들을 사진으로 찍어서 글을 써야지 하고 있었거든. 그걸로 10편을 써서 브런치 북으로 만들었어.
그리고 그동안 내가 글 쓴다는 것만 알고 있던 중학교 친구들에게 고민을 하다가 보내줬어.
사실 중학교 친구들과는 시어머니 얘기, 남편 얘기하는 게 참 쉽지 않더라. 그냥 열네 살의 철없는 친구로 남고 싶고 나도 그 친구들이 그러길 은연중에 바라고 있었나 봐.
그래도 [북]이라고 보여주고 싶어서 보여줬는데, 문자로는 감정을 왜곡하기가 쉽잖아. 그래서일까? 친구의 한마디에 ‘내가 왜 이런 글을 써서 이렇게 산다고 광고를 하고 다닐까?’ 싶어 졌어. 시어머니, 며느리, 엄마가 아닌 나는 글로 쓸 내용이 없는 걸까?
글을 쓴다는 게(물론 내용은 허접할지언정) 처음 시작은 어려웠지만 막상 쓰다 보니 가끔은 너무 잘 써져서 ‘나 소질 있나?’하는 착각도 하고 쓰다 보니 재미도 있어서 ‘역시 쓰길 잘했구나’ 싶은데 그게 나의 이야기는 아닌 거야. 막상 내 이야기는 1도 못하고 있었던 거지. 며느리라는 나는 내가 가진 여러 모습 중 하나이지만, 내 본래의 모습은 아니잖아. 그냥 며느리인 나를 연기하는 거지. 나는 어떤 모습일까? 이야기하고 싶어 지더라.
초라하고 보잘것없어도... 네가 너의 글을 쓰다가 ‘중간에 막혀서 글을 더 못 쓰겠어’라고 했던 이유가 너의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어서 오늘은 글을 못 쓰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