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해

우리도 그녀들처럼

by 흑곰아제

아양교 철길을 따라 만들어진 벚꽃터널에도 꽃비가 내렸어.

아마 어제 내린 비로 분홍색 카펫이 깔려서 운동하는 사람들이 더욱 신나게 뛰어다닐지도 모르겠다.

나는 벚꽃이 폈을 때도 좋은데 꽃이 떨어지고 잎이 나기 시작해서 나뭇잎이 연둣빛에서 연한 초록으로 변해갈 때도 이곳이 좋더라. 벚꽃 터널은 작은 잎들로 뒤덮여서 초록색의 터널로 바뀌거든.

운동이라도 하려면 그 잎 사이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너무 예뻐서 가끔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다가 오기도 했어. 그런 초록이 넘칠 5월에 만나는 건 어때? 내년은 너무 멀어.


네게 얘기를 안 했었나? 아빠가 당뇨합병증으로 오래 고생하셨지. 처음엔 신장이 나빠졌다는 이야기만 듣고 있다가 갑자기 쓰러지셔서 급성으로 투석을 받기 시작했고, 자꾸 넘어져서 알고 보니 발가락이 썩어가고 있었기에 하나, 둘 잘랐지만 나중에는 다리 하나를 잃으셨고 그 와중에 합병증으로 시력도 잃으셨어 (아주 안 보이는 건 아니고 대충 흐릿한 물체가 있는 것을 인지할 수 있는 단계였지) 그리고 조금 더 진행이 된 뒤로 나머지 다리도 잘라야 했고. 그래서 네가 얼마 전 필사 모임에서 인순이의 [아버지]란 노래를 들으면서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떠올려보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게 아빠의 휠체어였어. 두 다리도 없이 얼마나 우울해하셨을까? 특히 두 번째 다리 수술은 갑자기 쓰러져서 병원에 갔는데 나머지 다리에서 염증이 올라와서 그렇다며 급하게 수술을 했거든. 보호자의 동의란 것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었던 수술이었어. 그래서 많이 힘들어하셨지만 이때가 내가 아빠가 혼자 있는 모습을 제일 많이 본 때였어.

아무것도 안 하고 텔레비전만 틀어놓고 음식도 잘 안 드시고.. 그래도 아빠는 무척이나 긍정적이셨던 분인 것 같아. 아빠가 수술하고 친정집은 이사를 했어. 네가 알고 있는 북삼에서 구미로. 아빠가 병원 다니기도 힘들고 휠체어가 올라가질 않는 2층 빌라를 기어서 올라가고 싶진 않으셨던 거겠지. 그리고 어땠는 줄 알아?

아파트에서 ‘휠체어 아저씨’라고 불릴 만큼 사고도 많이 치시고 (욱하는 성격에) 휠체어 레이싱으로 동네를 휘젓고 다니셨어. 그러니 아빠는 밖에서 사람을 만나는 사람이었기에 외로운 사람이라고는 생각 못했었어. 기억을 잃어갈수록 성격이 급해지고 큰소리를 냈고 그때 이미 결혼해서 집에 없던 나는 가끔 보는 아빠의 모습이 다였으니까. 내가 만삭까지 구미로 출퇴근하면서 아빠를 모시고 주 3번 투석을 받으러 다녔잖아. 그날이 토요일이었나.. 투석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아빠를 모시고 집에 가는데 갑자기 화장실을 가야겠다시는거야. 그래서 집에 가는 길에 공중화장실로 모시고 가는데 그 중간에 이미 실례를 하셨어. 가는 길에 뒷정리를 하면서 알았어. 아빠가 기억을 놓고 있구나. 그래도 뭐.. 몸이 먼저 아빠를 놓았기에 가족을 기억에서 놓치는 않으셨으니 이것도 어찌 보면 다행인 건가?


도서관에서 표지가 보라색인 책이 있어서 (내가 보라색을 좋아하잖아) 들었는데 제목이 재밌더라.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해] 였어. 왜 여자들은 두세 시간 통화하고는 끊으면서 “그래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해”라고 한다잖아. 그리고 옆에 새겨진 작가의 이름이 둘인 거야. 그래서 “어? 혹시 이거??”싶어서 빌려와서 읽었는데. 두 명의 여자가 (친구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사회에서 만난 관계였어) 서로에게 매주 수요일 메일을 쓴 것을 엮은 책이었어. 사실 나는 처음 듣는 작가들이었고, 그들이 하는 방송을 본 적도 없었지만 이 책이 참 좋더라.

내가 처음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라는 요조와 임경선 작가의 교환일기를 보고 느꼈던 감정을 다시 느꼈어. 물론 나는 ‘페미니즘’ 같은 어려운 건 잘 모르겠어. 그래도 여자가 여자이기에 누릴 수 있는 것이 있고, 여자이기에 받는 규제도 있다는 걸 알고는 있는데 이들처럼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성을 상대로 하는 무차별적인 폭력들에 가슴 아파해보진 않았거든.

상고를 나와서 열아홉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내가 겪었던 일들이 지금의 세대의 여자들이 겪는다고 해서

‘아~가슴 아파’하며 공감하진 못하겠더라. ‘그냥 그게 사회생활이지. 뭐 웃고 넘기면 되는 걸.’하면서 피해 가는 것을 선택하는 나를 보면 난 이미 꼰대가 되어있는 것 같아.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이야기 못하고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 말 못 하는 내가 이 책을 보면서 참 미안해지더라.

어쩌면 그 당시의 내가 당했던 일들을 웃어넘기지 않았다면 한 명이라도 그런 경험들을 덜 해도 되었던 건 아닐까? 하고 말이야.

이 두 사람이 공유하는 [페미니즘]이라는 어려운 것 말고도 영화나 책을 보고 (물론 이것도 여성의 이야기 긴 해) 하는 거야. 글 중에 이런 문장이 있더라.



P52

물론, 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나의 모든 것을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뜻은 아닙니다


내가 너에게 나는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두려워서 글을 못 쓰겠다고 했을 때 네가 해준 이야기가 있잖아.

모두가 그렇다고 그러니까 그냥 쓰면 된다고.. 그렇게 쓰기 시작해서 우리 생각보다 너무 잘하고 있는 거 아닌가?라는 자만심까지 생기고 있었는데 말이야.

이 글을 보면서 내가 나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내 모든 것을 드러낼 필요가 없음을 확인받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더라. 물론 가식적으로 이야기를 지어서 하진 않겠지만 내가 느꼈던 당시의 감정까지 100퍼센트 날것으로 표현할 필요 없이 한 걸음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이야기해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어.

요즘 큰아이 때문에 바쁘겠지만, 시간이 된다면 이 책 읽어보길 바래.


누구를 위해서 바쁜 생활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지만 그 시간은 엄마인 너를 위한 시간이기도 하고 너 자신을 위한 시간이기도 한 것 아닐까? ‘대학교를 안 가면 어때?’ 아니야 ‘꼭 가야 해!’ 같은 결정은 아이에게 맡겨두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해주겠다는 엄마인 너의 마음이 너를 늦은 시간까지 차에 앉아있게 만드는 거고, 그 시간을 너 자신을 위해서 책을 읽는다던지 따뜻한 커피를 한 잔 사서 여유를 즐기는 것은 너 자신을 위한 휴식의 시간이지. 넌 너를 위해 살고 있어. 잘하고 있어.

네가 포기하지 못하는 게 뭐냐고? 음... 잘해야 한다는 마음? 내가 해줘야 하는다는 마음? 이런 거 아닐까?

그리고 가장 큰 건. ‘난 지금 뭘 하고 있나?’라는 생각.

넌 이미 잘하고 있으니 더 잘할 필요 없어. 네가 아니어도 못해도 괜찮으니까 조바심 낼 필요도 없고.

네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는 내가 알지. "넌 지금 네 삶을 충실히 살고 있어."

그러니 너도 나한테 얘기해줘.

나도 잘 살고 있다고. 알지만, 확인받고 싶은 이 마음 알아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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