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그녀들처럼
큰 굴곡이 없었기에 오히려 겁이나.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희로애락을 다 느끼고 살아야 하는 거잖아.
당연히 순간순간 화가 날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니 전부 소소하게 기쁘고 행복한 시간들이었더라.
그래서 어쩌면 내 인생에 가장 큰 고비는 말년에 오는 게 아닐까?
그것이 아니면 네가 재미있다고 보라 고했던 드라마 [도깨비]에서 인간은 모두 네 번의 생이 있는데
첫 번째 생은 씨를 뿌리는 생이고, 두 번째 생은 뿌린 씨에 물을 주는 생이고, 세 번째 생은 물을 준 씨를 수확하는 생이고, 네 번째 생은 수확한 것들을 쓰는 생이라고 하던데 나는 이미 네 번째 생을 살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할 때도 있어. 아직 오지 않은 그 큰 굴곡이 뭘까? 고민하는 요즘이야.
진짜 쓸데없는 생각이지?
지난주에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왔어.
보름 전부터 앉아있으면 허리가 아프고 서있으면 무릎이 아프다고 하셨거든.
근처 병원에 가서 접수를 하려고 하니 어디가 불편하시냐기에 그대로 설명했더니
허리는 신경외과, 무릎은 정형외과에서 진료를 봐야 한대.
이게 무슨 소리지? 그냥 뼈가 아프면 다 정형외과 아니야?
뭐 어찌 되었든 둘 다 진료를 봤는데 똑같이 엑스레이에 MRI를 찍으라는 거야. 도대체 왜 나눠 놓은 걸까?
진료를 기다리면서 남편과 이 문제를 얘기했어.
“이게 뭐하는 짓일까? 그냥 한 곳에서 다 보면 진료 시간도 줄고 진료비도 줄텐데 왜 나눠서 사람 고생시키는 건지 몰라!”하며 짜증을 냈지.
그랬더니 남편이 “더 정확하게 진료를 보는 거겠지. 척추면 척추, 무릎이면 무릎. 전문적으로 말이야.”하더라.
사물을 정확하게 보고 판단하는 게 전문적인 것이라는 말이 뭔지 모르게 끌렸어.
‘나는 나를 전문적으로 본 적이 있는가?’하는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거든.
오랜 기간 집중해서 일을 하면 그 일에 전문가가 되는 거잖아.
꼭 전문가라는 수식어가 없더라도 마치 내가 15년째인 지금 회사에서 업무를 대충 해도 급한 걸 처리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야.
가끔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뭘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이 들 때가 있는데
어쩌면 나를 전문적으로 바라보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 오랜 시간 함께 해오고 앞으로도 함께해갈 존재이지만, 정작 나는 나를 진지하고 진찰하고 진료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
노후를 준비해야지 하면서 네게 “사회복지사도 요즘 많이 공부하더라”하니
“그 직업 사람 만나는 거야.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해. 넌 사람 만나는 거 싫어하잖아”라고 했잖아.
그래, 네가 날 더 정확하게 전문적으로 알고 있었어. 난 사람들과 어울리면 금세 피곤해지는 스타일인데
잊은 거지. 어머니 병원에서 나에 스스로에 대한 진료가 시급하다는 생각을 했어.
글을 다시 쓰려고 하니 어떤 이야기부터 해야 할지 몰라 두서없이 쓰게 되는 것 같아.
다시 요일을 정해서 쓰자. 글을 이미 썼다고 생각하고 놀았다는 걸 솔직히 고백할게.
참, 어머니는 원인불명의 허리 골절로 결과가 나왔어. 11번, 4번 척추가 안 좋대.
그래서 그동안 미뤄두었던 식탁과 침대를 사러 가야 해.
기왕이면 내 맘에 드는 걸로 사고 싶은데 공간이 나오질 않아서 아침부터 또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