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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휘지 Nov 26. 2022

일단은 한국인. 그런데 김치는 못 먹어요

  친구와 칼국수를 먹으러 갔다가 내 코에 경보가 울림을 확인한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것. 이것이 없으면 무슨 맛으로 밥을 먹느냐고 읊조리는 노래도 있다. 코가 말한다. 주의해. 멀리 떨어져. 내가 저 시큼한 냄새 때문에 살 수가 없다! 나는 항아리를 내 자리에서 멀찍이 떨어뜨린다. 친구가 말한다.

  "아. 너 김치 안 먹지."

  "정확히 말하면 '안' 먹는다기 보다는 '못'먹는 편에 가깝지."

  나는 그렇게 그의 말을 정정했고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친구는 별말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말을 하면 꼭 듣는 말이 있다.

한국인인데 왜 김치를 못 먹어요?

  

  이 질문 아닌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역사를 거듭하며 변해왔다. 어렸을 때는 넉살 좋게 웃으며 "하하. 그러게요. 한국인인데 왜 김치를 못 먹을까요?!"라고 오히려 웃으며 반문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점점 말하는 투가 퉁명스러워진다. 그냥 못 먹는다고 말하면 될 것을 "그럴 수도 있죠."라고 말하거나 어렸을 때 어쩌고 저쩌고 하며 과거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기도 했다. 지금은 더 싹수없게 말한다. "한국인 중에도 김치 안 좋아하는 사람 있을 걸요?" 또는 "그쪽도 오이 못 먹으시잖아요~"라며 솜뭉치 같은 돌 던지기. 하지만 정말 그렇지 않을까? 한국인 중에도 김치 안 좋아하는 사람. 있지 않을까? 독일인 중에도 맥주를 싫어하는 사람이, 일본인 중에도 초밥을 싫어하는 사람이, 중국인 중에도 녹차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테니까.


  김치를 싫어하게 된 건 순전히 발효된 냄새가 싫어서였다. 3살까지 먹는 것이 미각을 형성해 자라면서 그 사람의 입맛을 형성한다고 하는데 나는 3살 이전에 김치를 먹기 시작했는데도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자라면서도 내가 김치를 먹기 싫다고 식사자리에서 그와 멀리 떨어져 앉으면 엄마는 편식은 안 좋은 거라며 김치를 지지거나 볶아주셨다. 나는 그러면 곧 잘 먹긴 했다. 그럼에도 식감이 물컹물컹하고 씹으면 형용할 수 없는 역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지지고 볶고 씻어도 못 먹겠다. 김치. 너란 녀석.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는 상황에서  김치를 못 먹겠다고 말하상대방 입장에서는 궁금한지 여러 가지 질문을 퍼붓기 시작한다. 하기야 궁금한 게 많을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나 같은 사람은 내 입장에서 '치즈가 느끼해서 먹지 않는 어르신'처럼 느껴진다. 상대방은 내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하며 내가 얼마나 독특하고 이상한 생명체인지 분석해보고 싶어 한다.


  "배추김치만 안 먹는 거야? 동치미나 총각김치도 안 먹어?"

  "응. 다 이상한 냄새 나. 그 특유의 발효 냄새."

  "와 그러면 김치볶음밥은 먹어?"

  "먹긴 해. 근데 김치는 오래 씹지 않아. 볶으면 김치향이 좋은데 식감은 별로야."

  "오... 그러면 김치볶음밥 위에 계란 올린 거는? 그것도 안 먹어?"

  "그거야 당연히 먹지."

  "그럼 겉절이는 안 먹어? 겉절이 맛있는데."

  "겉절이? 방금 요리한 건 먹어. 근데 익힌 건 안 먹어. 그래서 김장김치도 김장 직후에는 먹어. 발효시키고 난 건 안 먹어."

  "진짜 복잡하다."


  실제로 한 대화들만 늘어놓은 것인데도 내 '싫어함'의 형태가 얼마나 복잡 미묘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싫어함은 그런 특징을 띄는 건가. 김치가 뭐... 나쁜 애는 아니다. 참 좋은 애다. 건강에도 좋고. 그런데 냄새가 좀 많이 고약할 뿐이다. 사무실에서 팀원들에게 참 잘해주는 유능한 팀장님. 그런데 그분의 발 냄새가 고약하다면 당신은 그분을 존경하고 따를 수 있을 것인가? 난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서 다른 점은 팀장님의 발 냄새는 병원을 다니거나 잘 씻으면 해결될 문제일 수도 있다는 것이지만 김치의 발효된 냄새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어쩌겠나. 나는 그를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처럼 글쓰기 취미가 있는 친구 S 역시 오이를 못 먹는다. 내가 발효 냄새가 나는 단무지, 섞박지, 치킨무, 장아찌를 못 먹듯이 S도 참외, 멜론 냄새가 오이 냄새처럼 역하다며 먹지 않는다. 그 말을 듣는다고 해서 나는 네가 오이의 참맛을 모르는구나와 같은 말은 할 수가 없다. 나는 S가 아니고 S처럼 오이 냄새를 민감하게 캐치하는 유전자도 아니다. 나는 평생 S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 오이를 못 먹는구나. 냄새가 싫구나.


  아무래도 내가 이해받지 못하는 이유는 "한국인이라면 오이를 먹어야지!"보다 "한국인이라면 김치를 먹어야지!"라는 문장에 공감하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너 나중에 시집가면 김장도 해야 하는데 어떡할 거냐는 말도 들으며 나는 '김치를 못 먹으면 결혼도 못하는 건가?'라고 생각하게 된다. 상대방의 의도와는 달리 나는 그 의도를 두 단계 건너뛰며 해석해버린다.


  갑자기 이런 생각을 늘어놓게 된 이유는 음식점에서 <반찬은 셀프>라는 문구를 보고도 그 문구를 외면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뻐서다. 오늘은 분식집에서 밥을 혼자 먹었다. 아마 함께 온 사람이 있었다면 '김치 드세요?'라고 말할 필요도 없이 가서 역한 냄새를 맡으며 김치를 주워 담고 물컵에 물을 가득 담아 내 자리로 돌아왔을 것이다. 그런 일을 안 해도 되니 새삼 기뻤다. 난 그만큼 김치가 싫은가 보다. 먹으라는 것도 아니고 퍼오는 건데도 싫으면.


  김밥에 라면을 먹어도 나는 김치 없이 잘만 먹는다. 김치가 건강에 좋지만 그걸 못 먹는 대신에 요구르트나 상추, 배추, 양파를 자주 먹는다. 다른 야채는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하지만 스스로가 한국에서 이단아처럼 느껴지는 건 역시나 어쩔 수 없다.


  혹시 주변에 일본 사람인데도 생선을 못 먹거나 인도 사람인데도 카레를 못 먹는 사람이 있다면 한국인인데도 김치를 못 먹는 나를 함께 떠올려 주시길 바란다. 산 근처에 살지만 버섯을 못 먹는 사람, 바다 근처에 살지만 생선을 못 먹는 사람도 있을 테니.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바다 근처에 사는 것과 생선을 잘 먹는다는 것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긴 하다. 그 반대 역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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