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다를 보러 갔다. 항상 '탁 트인 바다를 보고 싶다'는 열망을 간직하고 있었는데, '취준이라 여행은 힘들지'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만류하고 있었다. 내가 이런 소리를 하면 직장인 친구들은 '직장인 되면 더 가기 힘들다'라고 말해왔다. 맞는 말이다. 취준생일 때는 돈과 마음의 여유가 없는 대신 시간이 많고, 직장인일 때는 돈이 있는 대신 시간이 없다. 세상에! 마음의 여유는 거의 항상 없는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면 여행에는 적당한 시기가 없다. 그저 어떻게든 '현실에서 지금 당장 떠나오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 하나로 가는 것이 여행인듯하다. 누군가는 낭만을 찾으러, 누군가는 잊고 있던 자신의 이름을 찾으러.
바다 근처로 여행을 가면 회를 먹어야 한다는 불문율 때문인가 나 역시 저녁으로 회를 먹었다. 강릉의 매서운 겨울 바다 앞에는 횟집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가격은 거의 모든 곳이 비슷한 것 같았다. 대자, 중자, 소자 회모둠이 있었는데 소자가 평균 8~9만 원 대였다. 그런데 포장은 또 3만 원 대로 가격이 한참 적었다. 이상했다. 왜 포장이랑 가격이 이렇게 천차만별인가.
가격이 너무 비싸 회모둠이 아니라 간단히(?) 회덮밥을 먹겠다고 같이 간 친구에게 말했더니 '그래도 이왕 여행을 왔으니 비싼 것도 먹어봐야지.'라고 말했다. 물론 여행을 가기 위해 없는 돈을 모았으므로 수중에 회 정도 먹을 돈은 있었다. 다만 용기가 안 났을 뿐이다.
회를 시키고 나서 왜 포장과 그렇게 다른 가격인지 이유를 알았다. 반찬부터 마지막에 나오는 매운탕까지 모두 그 가격에 포함되어 있었다. 반찬으로는 콘치즈와 김부각, 과메기, 간장 게장, 새우튀김 등이 거하게 등장했고 우리 둘은 '이걸 둘이서 다 먹을 수 있겠냐'는 눈빛을 서로 주고받았다. 나는 경기도 거주민이고 친구는 서울 거주민이라 서울의 물가와 양을 생각했었지만 바다 근처 횟집에서 우리의 걱정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정말 다 먹을 수 있겠냐는 걱정을 했지만 거뜬했다. '회는 살 안 찐다'라고 누가 그랬더라. 나는 그날만큼은 그 말을 믿기로 했다.
바다 앞에서 회를 먹는데 평소 먹는 회 맛이 안 났다. 더 바다와 가까운 맛이 났다고 해야 하나. 집 근처를 지나가다가 떠먹는 회와는 맛이 너무 달랐다. 역시 먹는 데는 분위기와 환경도 중요하다. 등산을 하고 내려오면 설익은 라면을 먹어도 맛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곧 새해고 신입을 뽑는 회사들이 많아진다. 그나마 남아돌았던 시간도 이제는 없어질 테지만 한 번쯤은 바쁜 와중에 다른 맛도 보고 다른 분위기를 느끼다 오는 것도 좋을 듯하다. 나 역시 하룻밤만 자고 왔지만 개운해서 청소든 공부든 뭐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기분이 오래가지 않을 수 있겠지만 뭐 어떤가.
'언젠가는 돈을 많이 벌어서 먹고 싶은 걸 다 먹겠어!'라는 꿈이 있었지만 이제는 '언젠가는'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지 않으려고 한다. 조금 더 먼 미래에 해야 할 일도 있겠지만 바쁘고 힘든 취준생활 와중에도 내가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 틈 사이에 꾸겨 넣으며 살고 있다. 내가 하고 싶으니까. 내가 읽고 싶으니까. 내가 쓰고 싶으니까. 그런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