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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휘지 Dec 25. 2022

 취준생이어도 회는 먹고 싶어

  겨울바다를 보러 갔다. 항상 '탁 트인 바다를 보고 싶다'는 열망을 간직하고 있었는데, '취준이라 여행은 힘들지'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만류하고 있었다. 내가 이런 소리를 하면 직장인 친구들은 '직장인 되면 더 가기 힘들다'라고 말해왔다. 맞는 말이다. 취준생일 때는 돈과 마음의 여유가 없는 대신 시간이 많고, 직장인일 때는 돈이 있는 대신 시간이 없다. 세상에! 마음의 여유는 거의 항상 없는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면 여행에는 적당한 시기가 없다. 그저 어떻게든 '현실에서 지금 당장 떠나오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 하나로 가는 것이 여행인듯하다. 누군가는 낭만을 찾으러, 누군가는 잊고 있던 자신의 이름을 찾으러.


  바다 근처로 여행을 가면 회를 먹어야 한다는 불문율 때문인가 나 역시 저녁으로 회를 먹었다. 강릉의 매서운 겨울 바다 앞에는 횟집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가격은 거의 모든 곳이 비슷한 것 같았다. 대자, 중자, 소자 회모둠이 있었는데 소자가 평균 8~9만 원 대였다. 그런데 포장은 또 3만 원 대로 가격이 한참 적었다. 이상했다. 왜 포장이랑 가격이 이렇게 천차만별인가.

  가격이 너무 비싸 회모둠이 아니라 간단히(?) 회덮밥을 먹겠다고 같이 간 친구에게 말했더니 '그래도 이왕 여행을 왔으니 비싼 것도 먹어봐야지.'라고 말했다. 물론 여행을 가기 위해 없는 돈을 모았으므로 수중에 정도 먹을 돈은 있었다. 다만 용기가 안 났을 뿐이다.

 

  회를 시키고 나서 왜 포장과 그렇게 다른 가격인지 이유를 알았다. 반찬부터 마지막에 나오는 매운탕까지 모두 그 가격에 포함되어 있었다. 반찬으로는 콘치즈와 김부각, 과메기, 간장 게장, 새우튀김 등이 거하게 등장했고 우리 둘은 '이걸 둘이서 다 먹을 수 있겠냐'는 눈빛을 서로 주고받았다. 나는 경기도 거주민이고 친구는 서울 거주민이라 서울의 물가와 양을 생각했었지만 바다 근처 횟집에서 우리의 걱정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정말 다 먹을 수 있겠냐는 걱정을 했지만 거뜬했다. '회는 살 안 찐다'라고 누가 그랬더라. 나는 그날만큼은 그 말을 믿기로 했다.


  바다 앞에서 회를 먹는데 평소 먹는 회 맛이 안 났다. 더 바다와 가까운 맛이 났다고 해야 하나. 집 근처를 지나가다가 떠먹는 회와는 맛이 너무 달랐다. 역시 먹는 데는 분위기와 환경도 중요하다. 등산을 하고 내려오면 설익은 라면을 먹어도 맛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곧 새해고 신입을 뽑는 회사들이 많아진다. 그나마 남아돌았던 시간도 이제는 없어질 테지만 한 번쯤은 바쁜 와중에 다른 맛도 보고 다른 분위기를 느끼다 오는 것도 좋을 듯하다. 나 역시 하룻밤만 자고 왔지만 개운해서 청소든 공부든 뭐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기분이 오래가지 않을 수 있겠지만 뭐 어떤가.


  '언젠가는 돈을 많이 벌어서 먹고 싶은 걸 다 먹겠어!'라는 꿈이 있었지만 이제는 '언젠가는'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지 않으려고 한다. 조금 더 먼 미래에 해야 할 일도 있겠지만 바쁘고 힘든 취준생활 와중에도 내가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 틈 사이에 꾸겨 넣으며 살고 있다. 내가 하고 싶으니까. 내가 읽고 싶으니까. 내가 쓰고 싶으니까. 그런 마음으로.



    2022.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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