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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령 박천순 Jul 17. 2024

바스러진 길

바스러진 길


박천순


길은

언제든 부활을 꿈꾼다


오래된 책을 펼치는데

마른 나뭇잎이 떨어졌다

조심스레 주워 올리다가 한 귀퉁이를 부서트렸다

돌출된 잎맥들이 여러 갈래 길인데


끊어진 시간이 일어선다

이미 지나와버린 먼 길

어디쯤에서 비를 맞고 있을까


기억을 퍼올리며 책 앞에 서 있다

발바닥을 베이고 가슴이 베여도

숨길 수 없는 발자국이

마음을 꾹꾹 밟고

빛바랜 형광펜을 열고 문장이 걸어 나온다


투둘투둘 나뭇잎 길을 만진다

바람과 침묵과 어둠을 견뎌낸

길이 마른 향기를 뿜고 있다


바스러진 길이 무너질세라

다시 문장 사이에 잠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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