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굼벵이 입니다
"꿈을 꾸고 기대하고 다가가고 이루고"
"저는 굼벵이 입니다"
내 나이 28살이자 대학 4학년 겨울, 졸업 예정을 앞두고 취업 면접에서 나를 소개 했던 말이다.
요즘과 달리 그때의 내 나이는 동년배 친구들보다 일반적으로 1~2년, 많게는 3년 입사가 늦은 시점이었다.
어쨌거나 입사 시점의 봄에는 29살이 되는 그때는(2009년도) 늦은 건 사실이었다. 나와 스펙이 비슷하거나 뛰어난데 나보다 어리다면 나는 당연히 후순위로 밀릴 수 밖에 없는. 즉, 상대 평가에서 매력도가 떨어질 수 있는 지원자인 셈이다. 하지만, 나는 상대적으로 아킬레스건인 나이의 허들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표현했다.
"모두가 굼벵이는 느리다고 생각하지만, 굼벵이는 지나온 길에 흔적을 남깁니다."
「귀사에 입사하게 된다면, 먼 훗날 귀사의 성장 과정에 제 이름 석자의 흔적을 남기겠습니다. 10대때의 꿈은 컴퓨터 프로그래머이자 대학가요제에 본선에 올라 신해철처럼 되보는 것이었습니다. 남들보다 입학은 늦었지만 재수를 하고 컴퓨터공학에 진학 했고, 군입대도 늦었지만 제 이름을 타이틀로 만든 곡을 가지고 가슴 두근거리며 대학가요제 심사를 봤습니다. 20대에는 KTF 인턴십에서 SKY가 아니더라도 실력으로 최고의 성과를 만들고 싶었고, 이듬해 학교 대표로 선발되서 전국 1등의 학교라는 전무후무한 성공 체험도 했습니다. 남들은 굼벵이를 느리다고만 생각하는데, 속도보다 지나온 길에 의미가 있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면접이 끝나고 나왔을 때, 함께 들어갔던 지원자들중에 한명이 당신 진짜 말 잘한다는 얘길 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근데, 나는 그저 지나온 시간들에 내 마음이나 태도에 대해서 얘기했고 앞으로도 나에게 주어질 시간앞에 진심이었을 뿐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삼형제중 막내로 자라면서 어렸을때부터 하고 싶었던게 명확했고, 자연스럽게 꿈이 선명했었다.
"10대때 내가 품은 꿈은 컴퓨터공학 진학과 대학가요제"
사실 초등학교때 별다른 두각이 없던 내게 작은형이 어머니에게 "쟤 컴퓨터 학원이라도 보내서 뭐 하나라도 잘하는게 있어야 하지 않아?"하고 권유했던 게 내가 컴퓨터 공학 전공을 꿈으로 품게된 계기였다. 1990년도 그때는 학원에서 XT컴퓨터로 프로그래밍을 배우던 시절이었다.(하드디스크가 없어 플로피 디스크를 번갈아가며 끼워 넣고 녹색의 허큘리스 그래픽카드 화면에 Basic 기반의 지렁이 게임, 남북전쟁, 고인돌 등 게임에 환장하던 시절이었다. 이걸 알고 있고 지금 직업이 IT쪽이라면 현재 당신은 적어도 우리나라 IT업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라 생각된다.) 그땐 같은반 친구들이 죄다 OO속셈학원을 다니느라 바빳던 기억이 있고, 컴퓨터학원에 대한 중요성은 그리 크지 않았다. 대다수가 컴퓨터 공부를 안하고 있을 때, 먼저 했던 것이 시대적 흐름에 맞아 떨어지며 결국 '남보다 잘하는 무기'가 되었고, 높아진 자존감으로 대학진학과 동시에 향후 빌게이츠 같이 성공하고 싶은 목표가 어렸을 때부터 선명해졌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대학 학부생임에도 교수님으로부터 별도 학습방도 지원 받고, 서버 구축과 웹사이트도 여러개 만들면서 재미와 공부, 돈도 벌기까지 하며 세상을 다가진 것 같은 기분과 내 앞길은 훤하다라는 자신감도 컸었다. (2002년도에 학교 주변 맛집을 정리하고 학생들에게 소개하는 웹사이트를 만드는 생각을 했고 노트에 스케치했던 것을 보면, 배달의 민족과 같은 서비스를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나와 9살이나 차이나던 큰형이 좋아했던 '무한궤도/신해철'의 음악을 들으며 11살때부터(당시 91년도에 '안녕'이란 노래에 심취했었다) 대학가요제를 또 하나의 꿈으로 품었다. 10년, 15년이 지나 21살과 26살 두번에 걸쳐 이루어 보려고 MBC에 드나들며 가슴설레이던 시간을 보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20대때는 통신사에 입사해서 모바일 전문가가 되는것"
2003년 와이더댄닷컴에서 군입대전까지 SKT/KTF/LGT 이통 3사의 모바일 컨텐츠를 경험하며, 앞으로 세상은 컴퓨터가 아닌 휴대폰으로 크게 변화될 것이란 확신을 가졌다. 그리고 군입대 후, 사령부인사처 행정병으로 근무했던 이점(?)으로 말년에 통신사 관련 온갖 기사들을 꾸준하게 스크랩했고, 그때 우연히 조선일보에 실린 "KTF 신입사원 박종일"의 기사가 눈에 띄어 스크랩 북에 오려서 담아두었다. 결국 군제대 후, 나는 KTF에서 인턴십을 하게 되었고 이듬해 KTF 인턴십에서 학교 대표로 선발되서 후배들을 이끌고 전국 1등이란 작은 성공체험을 경험했다. 그때 내 20대때 꿈이 선명해졌다. 결국 나는 29살에 통신사에 입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