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야 할 선이 있다
아보리스트 교육을 받으면서 나무에 ‘지피융기선(Branch bark ridge)’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지피융기선은 나무줄기에서 가지가 갈라져 나오는 부분을 말합니다. 위 사진에 가지의 시작 부분에 주름진 선이 있습니다. 이 선을 지피융기선이라고 합니다.
아보리스트에게는 지피융기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규칙 중 하나입니다. 지피융기선을 지킨다는 것은 가지를 자를 때 정확한 선을 따라 자르는 것을 말합니다. 전지작업에 과학적 이론이 적용되면서 아보리스트들은 지피융기선을 따라 전지를 하는 과학적 전지작업을 하도록 교육받습니다. 그런데 왜 지피융기선을 따라 작업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지피융기선을 따라 작업을 해야 하는 이유는 나무의 건강을 위해서입니다.
전지작업으로 가지가 잘려나가면 나무도 아파할까요? 아파한다는 것은 감각기관과 뇌신경기관이 있어야 합니다. 아직 나무에 인간의 뇌와 같은 기관이 있다는 연구결과는 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나무가 아파하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생명기관이기 때문에 상처를 받으면 인간과 같이 스스로 회복하기 위한 방어체계가 가동이 됩니다. 다만 이 체계는 입체적이지 않고 일차원적이기 때문에 다양한 경우에 대처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이 자르건, 바람에 꺾이건, 눈이 쌓여 무게를 이기지 못해 부러지건, 가지가 잘려나간 부분은 나무 스스로 치유를 합니다. 사람이 피부에 상처를 입으면 딱지가 생기는 것처럼 지피융기선을 지켜 자른 가지는 자가치유물질이 상처 부위를 감싸며 균의 침투를 막고 나무가 썩어 들어가는 것을 방지합니다. 하지만 자연에 의해 부러지거나 잘 못 자른 가지들은 치유를 위한 방어체계가 작동되지 않아 부러진 가지 부분이 썩어 들어가게 됩니다. 잘 못 자른 가지 하나가 나무를 죽일 수도 있는 겁니다.
물론 가지를 잘 못 자를 때마다 나무가 하나씩 죽지는 않습니다. 여러 가지 조건들이 맞아떨어져서 나무가 죽을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이 완성이 되었을 때 일어나는 일이죠. 하지만 가지를 잘 못 자를 때마다 나무가 죽을 수 있는 가능성의 씨앗을 하나씩 뿌리는 셈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가지를 자르는 아보리스트에게는 꼭 지피융기선을 지켜야 할 이유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디보면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선 넘네’라는 말을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얘기하는 선은 어떤 선일 까요? 어디에 있는 선인지를 생각해 보면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에서 ‘근’과 ‘원’의 중간쯤 이겠죠.
나무의 지피융기선이 줄기와 가지를 나누는 경계선이라면 이 선은 사람과 사람, 조직과 조직 등 이해주체들의 사생활, 자존심, 이익 등의 마지노선일 겁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선은 프라이버시라고 할 수 있겠죠. 조직과 조직 사이의 선은 상도덕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이 무형의 선을 넘어 벌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과 규칙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만 법으로 지킬 수 없는 선 때문에, 교묘하게 선을 넘나드는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받고 다툼이 생기고 자살을 하기도 합니다. 조금 더 이성적으로 접근하다 보면 고소와 고발로 이어집니다.
물론 프라이버시가 침해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해서 매번 상처를 받거나 모두가 목숨을 끊을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경쟁사가 매출욕심에 조금 선을 넘는 영업행위를 했다고 해서 매번 고소 고발로 이어지지도 않습니다. 문제는 선을 넘는 사람은 계속 넘는다는 것입니다. 계속 선을 넘는 일을 하는데 아무런 제지도 이루어지지 않는 다면 일을 더 심각해집니다. 선을 넘어 피해를 주고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떳떳하기도 합니다.
첫 직장에서부터 마지막 직장까지 만난 여러 사람들 중에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수시로 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매일 출근해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이 선을 넘는 사람이라면, 더군다나 나의 상사라면 회사는 지옥이 될 수 있습니다. 업계에서 경쟁하는 회사가 갑자기 가격을 낮추면 경쟁에서 밀리게 되며 사장님의 쓴소리가 시작됩니다. 생산부서는 원가절감을 다시 시작해야 되고 영업부서는 골머리를 앓게 됩니다.
부탁도 해보고 화도 내보고 간접적으로도 얘기해 보고 대놓고 얘기를 해봐도 열에 아홉은 바뀌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 안 변한다는 말을 참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 글을 시작할 때는 나무의 지피융기선과 인간들 사이의 선에는 공통점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글을 이어가다 보니 우리 인간들은 너무나 많은 선과 선 사이를 넘나들며 사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갈라진 두 무리 어디에도 속하고 싶지 않지만 선택을 강요당할 때, 업무는 호흡이 잘 맞지만 인간적인 면은 마음에 들지 않는 동료의 지나친 접근 등 불가근불가원을 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굉장히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혼자 있고 싶어 하게 되고 집단속에서도 외로움을 느끼게 되나 봅니다.
그래서 이런 세상일수록 내 마음과 감정의 지피융기선이라도 잘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타인과의 선, 다른 조직과의 선은 내 맘대로 그을 수도 없고 나 혼자 지킨다고 되는 것도 아니니 내 마음의 지피융기선이 어디인지부터 확실하게 알고 그 선이라도 지키는 게 그나마 선을 지키는 사람들과 잘 어우러져 살 수 있는 길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