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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옌옌 Feb 03. 2022

저요? 결혼 생각 없어요.

브런치에 처음 글을 쓴다.

그냥 어딘가에라도 길게 털어놓지 않으면 답답해 죽을 것 같아서 한밤에 갑자기 적어내린다.


서른을 목전에 두어 '슬슬 결혼 생각해야지. 남자는 있고?'라는 말이 들려오고, 직장에서나 친척들에게 속에 든 말들은 삼킨 채 웃으며 '아 저요? 아직 결혼 생각 없어요.' 답한다. 그 와중에 '아직'을 붙여 여성의 비혼주의에 대한 무수한 사상 검증과 꼬리 질문을 선차단한다. 그 뒤 따라오는 단골멘트, '그래 뭐~ 아직 어리니까.', '나중에 생각 바뀌면 남자 구하기 힘들 텐데? 후회할 텐데~'


10대 때만 해도 아이한테 하면 안 되는 엄마의 언행, 아이 방 벽지로 좋은 색감, 아침밥으로 좋은 한식 레시피 등 미래 남편과 자식을 위한 준비를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했던 나인데, 어쩌다 비혼주의가 됐을까?

정확한 건 어떤 시기나 사건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 30년 동안 직접 보고 들은 총체적 경험들이 조각조각 모여 비혼주의자가 된 것은 확실하다. 사실 '결혼 생각 없어요.'라고 입 밖에 내어 비혼주의자로 완벽히 정체화한 건 몇 년 채 되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비혼의 씨앗을 심어준 건 내 가족이라 말할 수 있겠다. 내가 태어나 기억이 나기 시작한 시점부터 보아 온 엄마의 삶은 '행복'과 거리가 멀다. 꿈을 버리고 한 평생 집 안에서 자식과 남편만 뒷바라지하다 흰머리가 난 가정주부. 내 아빠란 사람이 유별나서가 아니라, 현 중장년 여성이 결혼할 시기에 당연시 되어왔던 '희생'이 우리 엄마에게도 적용된 것뿐이다. 그냥 여자라면 마땅히 밟아야 하는 코스였고, 그대로 밟은 것이다.


단지 그게 비혼의 이유야? 라고 한다면,

여기에 모든 일화를 적을 순 없지만 이 가정주부가 겪었던 남편과 시가는 참 고통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직접 본 것도 있고 크고 나서 듣게 된 것도 있다. 혼자 버텨내야 했던 엄마의 삶을 온전히 느끼며 자란 나로서는 결혼에 대한 이상은 진즉 깨져버린 지 오래다. 그냥 질렸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겠다. 아빠가 임산부인 엄마에게 대한 태도, 산고 중에 한 행동, 출산 직후 시가의 태도(하나 가볍게 적자면 산후조리원에서 빨리 나와서 미역국 차려달라는 시모 일화가 있다.), 그 외 내가 직접 본 그들의 모습들.. 적고 보니 이런 친가를 둔 이상 내게 비혼은 거스를 수 없는 것이겠다. 운명인 게 느껴져서 웃기기까지 하다.


꼭 내 가족이 아니더라도 내가 아는 어른들 중 행복한 기혼 여성이 없다. 이혼 후 홀가분해진 여성들은 봤다. 이혼하지 않은 몇 며느리들은 지긋한 나이에도 시가를 부양하며 사는 모습이다. 또한 남편과 같이 나이 들어가는 처지임에도 밥 차리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건 와이프 몫. (잠시 얘기가 새지만, 가사일 하는 남편을 왜 그렇게 '스윗하다'고 표현하는 걸까? 여자에게 가사일은 당연한 거고 남자는 도와주면 다정한 남편? 실제로 저런 남성에게 '와~ 좋은 남편감이네.'라며 올려치기하는 모습도 본 적이 있다.)


여기까지 읽고 아냐 요즘은 좀 달라졌는데? 생각할 수 있겠다. 엊그제 기사 제목이다. '전 부치다 부탄가스 폭발로 7명 부상', 내용에 적힌 소방 관계자의 말 "부상당한 분들이 다 여자분.. 70대 할머니랑 40대 며느리들하고 10대.. 2도 화상으로 추정돼요."


그 외 최근 통계자료와 기사들

- 남편이 암 걸리면 부인의 간병률 96%, 반대의 경우는 27%

- 2017년 기준, 기혼 여성의 가사노동시간 기혼 남성의 8배 (154분 vs 19분)

- '남성이 집에서 육아와 가사일 하는 것은 남성 답지 못하다'는 남성 답변, 한국이 76%로 27개국 중 1위

- 1인가구 연령대별 삶 만족도, 45~49세 여성은 73%, 남성은 53% (=연 소득 1,200만원 이상만 되면 여성은 만족도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결과)

- 2019년 기준, 1983년생 기혼 여성 4명 중 1명은 출산 후 경력단절. 반면 동일 나이 남성은 93%가 직업 유지

- 2019년 기준, 출산 후에도 직업 유지하는 여성, 대기업 45%, 중소기업 21%

- 2021년, 남양 최연소 여성 팀장, 육아휴직 후 출퇴근 5시간 걸리는 물류창고로 발령


한국에서의 결혼은 아직 남성에 비해 여성이 손해인 부분이 명백히 많다. 난 내 삶과 건강을 손해 보며 결혼과 출산을 도무지 하고 싶지가 않다.




결혼이 여성에게 부여하는 틀 자체도 기괴하기 짝이 없다. 당장 상견례와 결혼식을 위해 행하는 신부들의 관례적 '준비'만 봐도 답이 나온다. 신체에 마땅히 필요한 근육을 없애는 승모근/종아리 근육 절제술, 여러 성형 시술과 경락, 고가의 헤어메이크업, 캔도 못 따는 젤네일, 원피스, 구두, 백, 단기간 진행하는 신부 다이어트 등 '아름다운 새신부'의 모습에 끼워 맞추는 행동이 정말로 본인을 위함인가? 시모가 며느리에게 당부하는 <우리 아들이 좋아하는 것들, 최소한 아들에게 해줬으면 하는 것(예로는 국이 있는 아침밥), 명절에는 와서(아들이 집안 어른들과 거실에서 술 마실 동안) 일손 돕는 것> 등 '바람직한 며느리'의 틀에 들어맞으려 노력하는 것은 무엇을 내포하나? 어느 새신부가 시가에게 밉보이고 싶을까. 무조건 따라야겠지.


결혼식도 마찬가지. 신랑이 멀끔한 수트 입고 하객들과 호탕하게 인사 나눌 동안 신부는 대기실에서 엄청난 부피의 드레스와 면사포에 싸여 불편한 네일과 속눈썹을 달고 인형처럼 앉아 사진만 찍힌다. 식에서는 어깨 펴고 당당히 입장하는 신랑과 달리, 신부는 부친 손을 잡고 조신히 걸어 들어가 남편에게 넘겨진다(이 와중에 낳고 길렀는데 자식 성까지 뺏긴 엄마는 지워진다.) 한 사람과 사람의 결혼, 동등한 위치처럼 보이는가? 기혼 여성의 삶을 들여다보기 이전의 이 모든 행태부터 결혼이 여성들에게 어떤 족쇄를 채우는지 너무나 잘 느껴진다.


여차저차 결혼식 후에는? 출산이 남아있다. '어머님, 저 아이 안 낳고 싶어요.' 이후 들릴 말은 그냥 적지 않겠다. 임신 한 번에 아이 한 몫의 뼈만큼 산모의 뼈에서 빠져 송송 뚫리는 구멍들. 산후풍이란 후폭풍을 겪는다. 나머지 신체적 노화는 말할 것도 없고. 아이 안 낳는다고 하면 출생률이 이 모양인데 이기적이라며 나라를 위해 낳으라고 하지(실제로 남자에게 들은 말!), 정자 기증받아 아이 낳는다고 하면 공적 혜택 안 주지(출생률 걱정하는 거 아니었어?), 알겠어 아이 낳을게 그럼. 근데 육아휴직 쓰면 눈치 주고 퇴사 종용하지? 반대로 낳고도 출근하면 아이한텐 엄마가 필요한데-하며 모성애 없는 사람 취급하지.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지? '난 결혼해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 거야.' 현재 한국에서 적용될 수 있을까? 결혼의 틀에 발을 디딘 그 시점부터 여성에게 주체적 삶의 기회가 박탈당하는 것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적고 보니 새삼, 내가 남자였으면 어땠을까?

가장으로서 힘드니 와이프가 어느 정도는 같이 벌어줬음 좋겠고, 그 와중에 나랑 똑닮은 아이도 낳아주면 좋겠어. 하나만 낳으면 외로울 테니 두 명 정도? 몸 상하고 힘들긴 하겠지만 내 몸은 아니니까. 맞벌이 후 같이 퇴근했지만 된장찌개는 끓여주겠지? 저녁 먹고 내가 아이 놀아줄 동안 와이프는 설거지, 빨래, 청소하면 되고. 아, 애가 갑자기 울면 와이프 부르면 돼. 와서 달래주고 기저귀 갈아주더라. 애가 좀 크면 교육은 와이프가 알아서 할 거고 학교에서 무슨 일 생겨도 와이프가 가지 난 일해야 하니까. 명절엔 나는 처가 가서 장인어른이랑 담소나 나누고 오면 되고, 와이프는 우리 집 가면 부엌에서 나오질 않더라. 전 부치고 과일 깎고 제사 음식도 하는 것 같던데.. 바쁜가 봐. 나야 우리 엄마 도와줘서 예쁘지 뭐. 그리고 남자가 사회생활하느라 2차, 3차, 노래방이니 업소니 갈 수도 있는 거지. 와이프가 힘들다고 빨리 들어오라는데 난 가장이잖냐. 가장의 고충, 알지? 근데 신기한 게... 내가 육아휴직하거나, 설거지랑 빨래 '도와'주고 새벽에 아이 울 때 안아준다고 하면 다들 나한테 '다정하고 스윗한 남편'이라고 하더라.


남자가 결혼하지 않을 이유? 전혀 없다.


...


나는 25살부터 비혼, 비출산을 다짐했다. 결혼해야만 '정상인'인 것도 아니고(사회적 시선은 아닌 것 같다만) 내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내 스탠스를 바꿔야 할 이유를 어디에서도 찾지 못하겠다. 그냥 명절에는 여행 떠나고, 맘 맞는 친구들과 맛집 다니며 취미도 즐기고 반려동식물도 키우며, 오로지 나를 위한 큰 소비도 하는. 누군가에게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 것이다.


더불어 결혼과 출산을 겪은 선배 유부녀, 좋은 기혼자 본보기가 되어 이 공고한 가부장제를 다음 다다음 여성들에게 대물림하고 싶지도 않다.


- 아침밥 차려주고 아이 낳아주는 '아내'

- 고분고분하고 아들 뒷바라지 잘하는 '며느리'

- 한 평생 희생하는 '엄마'


이 셋이 아닌 그냥 '나'로 살 것이다.


내가 목 막힘을 느꼈던 '저요? 아직 결혼 생각 없어요.' 속에는, 이 모든 것들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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