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에 코로나가 발생한 이후 2년 만에 부산에 내려왔다. 인천과 부산은 대각선에 위치해 있어서 참 멀다. ktx 광명에서 부산역까지 2시간 30분이 넘게 걸린다. 옛날 새마을호 열차를 탓으면 5시간이 넘게 걸리는 여정이다. 부산에 내려오면 여행자로서 부산 주변을 둘러보곤 한다. 그중에서 둘레길을 걸어보는 것을 가끔의 호사다.
부산의 둘레길을 갈맷길이라고 한다. 오늘은 갈맷길 3코스의 일부인 이기대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아침에 광안리를 출발하였다. 광안리 해변 끝에 삼익비치타운 아파트가 광안해변로를 따라 길게 서 있다. 해변에 테트라포트가 막고 있고, 길 건너 아파트 담으로 2m 정도의 콘크리트 벽이 아파트를 감싸고 있다. 태풍으로 넘어오는 높은 파도를 막기 위한 이중 방지 장치다. 땡볓을 피해서 아파트 안의 산책로를 걸어본다. 남쪽이라 털머위 군락이 화단을 덮고 있고 간간히 노란 꽃을 피우고 있다. 아파트가 오래되어서 커다란 나무들이 운치 있게 아파트를 감싸고 있다. 아파트 바로 옆의 남천항을 지나면 광안대교의 남쪽 끝단이다. 광안대교 밑을 요리조리 피해서 용호만 쪽으로 들어섰다. 용호만 유람선 터미널을 지나면 용호만과 이기대가 연결되는 작은 다리가 놓여 있다. 갈맷길과 해파랑길 리본이 나란히 걸려 있다. 동해안을 내달린 해파랑길은 이기대길의 끝인 오륙도에서 끝난다. 거기서부터는 남파랑길이 이어진다. 동해안과 남해안의 접점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림 1] 부산 둘레길인 갈맷길 표시와 용호만 유람선 터미널을 지나면 용호만과 이기대 해안 산책로가 연결된 갈맷길. 해파랑길과 갈맷길이 겹치는 구간이다.
이기대길은 10여 년 전에 홀로 걸어보고 이번이 두 번째이다. 그 전보다 훨씬 개발이 많이 되어 있다. 이기대길은 용호만에서 출발하여 오륙도 방향으로 걷던지, 반대로 오륙도에서 용호만으로 걸을 수 있다. 난이도로 보면 용호만에서 출발하는 코스가 더 어려운 것 같다. 올라가는 계단이 더 많다. 동생말 전망대에 서면 광안대교, 광안리 해수욕장, 해운대 마린시티의 고층 아파트, 동백섬, 해운대 해변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금 더 가니 이기대이다. 이기대란 이름은 논개처럼 임진왜란 때 두 기녀가 일본 적장을 안고 떨어져 죽은 곳이란다. 슬픈 역사의 전설이 서린 곳이다. 이기대는 해안이 지질공원이라 다양한 암석과 낭떠러지가 형성되어 있다. 해안 절벽 위를 요리조리 피해서 길이 나 있다. 걸을 때 해안에 펼쳐진 암석지대에서 다양한 암석을 볼 수 있다. 큰 자갈돌이 빠져나간 암석에는 물웅덩이가 여기저기 형성되어 있어 있는데 이 구멍을 돌개구멍이라 한다. 지질학 시간에 배웠을 법한 암맥을 볼 수 있다. 길처럼 가운데 부분이 각섬석 암맥이라 한다. 가운데 부분은 암반을 뚫고 올라온 용암이 식어 형성되어 양옆의 돌과는 다른 색깔의 암석으로 되어 있다. 지질공원이라 친절한 설명 간판이 서 있다.
[그림 2] 이기대 근처에서 볼 수 있는 함각섬석 암맥. 가운데 밝은 색 부분이 각섬석으로 양옆의 암석과 다르다.
이기대를 지나 수평선이 보이지 않는 남해를 보면서 걷는다. 해안길을 여러 명이 단체로 걷기도 하고 홀로 걷는다. 혼자 또는 둘이 걷는 외국인들도 더러 보인다. 해안길 주변에 가을꽃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바닷가에서 볼 수 있는 해국이 군데군데 군락을 이루어 펴 있다. 구절초나 벌개미취와 꽃 모양이 비슷하지만 입사귀의 모양이 아주 다르다.
[그림 3] 이기대 해안길에 피어있는 해국. 야간의 보랏빛을 머금은 꽃 색깔이 이채롭다. 잎사귀가 쑥부쟁이, 벌개미취와 전혀 다르다.
만개한 해국 사이에 구절초도 같이 피어있다. 보통 화단에 심어져 있는 구절초의 잎은 갈라진 형태가 길쭉한데, 바닷가 구절초는 잎 갈라짐이 심하지 않고 약간 타원형이다. 구절초 꽃의 특징인 가운데 부분에 꽃술에 초록색이 약간 보인다. 해풍을 맞아 그런지 꽃잎 모양이 올록보록하여 더 애처롭다. 둘레길에서 꽃을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기 때문에 걸음이 자꾸 지체된다. 우리를 뒤따르던 한 무리의 둘레꾼이 우리를 지나쳐 간다. 순탄하게 이어지던 이기대 갈맷길의 반쯤 지나자 길이 험해진다. 길 차체는 잘 정비되어 걷기 좋은데 오르락 내리락이 심하다.
[그림 4] 해국과 구절초. 흰색 구절초와 해국이 함께 피어 있다. 분홍색 구절초가 돌 틈에서 외롭다.
남쪽 해안가라 돈나무가 흔하고 벌써 열매를 많이 매달고 있다. 돈나무가 상당히 우점종을 형성하고 있다. 큰 나무 밑의 그늘에는 아이비가 덮고 있다. 중부지방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송악도 황금빛 열매를 매달고 있다. 무리 지어 피어 있는 송악 열매는 마치 부처님의 곱슬머리 같다. 길가에 커피나무 열매처럼 생긴 열매를 매달고 있는 나무가 많이 분포해 있다. 어떤 나무인지 궁금해서 스마트 렌즈로 찍어보아도 정확한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다. 나중에 찬찬히 조사 보니 천선과나무인 듯하다. 천선과나무는 우리나라 남해안 이남에 자생하는 무화과나무 속에 속하는 나무란다.
[그림 5] 열매를 달고 있는 돈나무, 송악 넝쿨의 열매가 마치 부처님 머리 같다. 천선과나무의 열매는 꼭 커피 열매처럼 생겼다.
여러 번 오르막길을 오르니 농바위가 보인다.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는 사람 형상의 바위가 벼랑 끝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 풍상이 만들어낸 걸작일 것이다. 예전에 해녀들이 이 바위를 좌표 삼아 물질을 했다고 한다. 농바위 고개를 돌아서면 이기대길의 끝이 아닐까 하고 기대했지만 한 번 더 가파른 계단길을 올라야 한다. 두 시간 정도를 걸어서 드디어 오륙도가 보인다. 오륙도가 보이는 절벽 아래에 사람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보랏빛의 해국과 노란색의 털머위 꽃이 서로 경쟁하듯 피어 있어 조화롭다. 오륙도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서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와 점점이 떠 있는 오륙도를 한가롭게 감상한다. 이기대 길은 두 번째 걸어 보지만 부산 해안길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둘레길이다. 다음에는 오륙도에서 용호만까지 반대로 걸어보고 싶다.
[그림 6] 농바위가 마치 사람처럼 서 있다. 물질하던 해녀들은 저 바위를 보고 물에서 자기의 위치를 알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