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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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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룰루 Oct 23. 2023

로밍 없이 도쿄여행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유심 없이 해외여행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2015년까지 해외에서 인터넷 없이 여행했다. 그때도 포켓 와이파이나 데이터 로밍 서비스가 있었지만, 지금만큼 보편적이진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은 로밍 방법을 챙겨가고. 나 같은 무계획이 계획인 자들은 그냥 부딪쳤다. 지금은 거의 로밍이 필수나 다름없으니, 세상이 그새 바뀌었다. 난 이상하게 로밍비용이 아까웠다. 유심 없이도 숙소나 카페에서 제공하는 와이파이가 있을 때만 정보를 검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정보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자는 삐딱한 고집도 한몫했다. 중요한 정보는 사전에 핸드폰에 캡처해 두면, 그럭저럭 여행할 만했다. 더 예전에는 가이드북과 여행자들 사이에서 구전되는 비공식 정보에 의존해서 여행했을 거다. 그에 비하면 무척 편하지 않은가.


 로밍 없이 여행했던 마지막 기억은 도쿄다. 지하철이 어디든 촘촘히 연결되어 있는 대도시. 게다가 치안도 보장되는 일본이다. 당시 도쿄가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에 인터넷 없이 여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조금 불편하면 되지 뭐.


 슬프게도 이 여행은 '다음부터는 꼭 로밍해야지'라고 마음먹는 계기가 되었다. 동행했던 친구는 해외여행이 처음이었다. 그는 당시 경기도에 살았는데, 혼자 비행기 타는 게 불안해서 내가 사는 부산까지 찾아와서 김해공항을 이용했다. 그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고 모든 걸 나에게 의지하는 동행이 있었다. 나 혼자만 삽질하면 되는 상황이 아니었는데, 별생각 없이 인터넷 없이 여행을 감행하다니. 지금 생각하니 좀 너무했다 싶다. 나 혼자 삽질하는 거면 뭐든 괜찮은데, 동행까지 강제적으로 고생을 하게 만들었다.




 첫날 숙소에 가는 방법부터 쉽지 않았다. 구글 맵이 있으면 바로 찾아갈 수 있으련만. JR 우구이스다니 역에서 도보 10분 남짓인 숙소를 지척에 두고 40분을 헤맸다. 숙소를 찾고 나서 얼마나 황당했던지. 숙소 근처를 20분을 서성이다니. '그 바로 옆길이라고 이 사람아'라고 과거의 나에게 소리치고 싶다.


 식당을 가는 것도 녹록지 않았다. 내가 이전 도쿄여행 때 갔었던 츠케멘집을 가고 싶어서 앞장을 섰다. 다른 건 몰라도 그 집은 꼭 가야 했다. 너무 맛있었거든. 더군다나 한국에는 제대로 된 츠케멘을 파는 식당 자체가 얼마 없어서 평소에 먹기 힘들다. 신주쿠 시내에서 그 츠케멘집을 찾느라 한 시간을 허비했다. 같은 블록을 수없이 걷다 보니 얼마나 친구에게 미안하던지. 결국 친구의 무릎이 탈이 났다. 절뚝거리면서 츠케멘 집을 들어가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나만 믿고 몸만 온 친구였는데, 불필요한 고생을 시켜서 미안했다.



 얼마 전 그때 동행했던 친구와 대화를 했는데, 과거 여행이 이야기 소재로 떠올랐다.


 "야, 그 츠케멘집 있잖아. 야스베에. 나 그 집 또 갔다 왔다."

 "거기 맛있지. 우리 그때 식당을 못 찾아서 40분 길에서 고생한 거 기억나?"

 "그렇지. 신주쿠에서 식당 찾느라 헤매었잖아. 그런데 그게 40분이었어? 그렇게 오래 걸렸나?"

 "기억 안 나? 우리 데이터 유심도 없이 도쿄 갔잖아."

 "아 진짜? 그러면 어떻게 여행했지?"


 놀랍게도 친구는 인터넷 없이 여행한 걸 기억 못 했다. 미안한 건 나뿐이었고, 친구는 별 생각이 없었나 보다. 친구는 그때의 추억을 이어갔다.


 "우리 그때 도쿄 갔었던 게 벌써 8년 전이잖아. 그런데 이상하게 다 기억나. 숙소 이름은 '오크 호스텔 젠'이었어. 그 숙소 근처에 있었던 닭꼬치집. 그 집은 우리가 두 번이나 갔잖아. 그리고 아침밥 먹었던 카레라이스 집. 아직도 있으려나."

 "닭꼬치 집 거기 고독한 미식가도 다녀갔더라. '토리츠바키'라고 구글에 검색해보면 나와."


  그때 헤맸던 동네는 유난히 더 기억이 난다. 헷갈려서 여러 번 드나들었던 골목길마저도. 나도 친구도 그랬다. 핸드폰을 보는 대신, 동네 간판과 길을 유심히 봐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렵게 성취한 건 오래 기억하나 보다. 그러니까 계획대로 안된다고 너무 좌절하지 말거라. 훗날 더 큰 기쁨을 누릴 터이니. 더 오래 기억할 것이니.



 아날로그 여행이 더 깊게 추억이 되긴 하지만, 두 번 다시 재현할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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