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의료시스템에 대해
한국으로 돌아와 한동안은 병원진료 시 의료보험을 이용할 수 없었다. 재외국민은 귀국 6개월 후부터 의료보험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보험적용 전 진료비가 얼마나 되는지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치과 진료를 예로 들면 간단한 정기점검과 충치 치료 등은 1회에 약값 포함 3~5만 원 정도로 진료 시간과 서비스의 질을 생각하면 캐나다, 미국, 호주 등에 비해 꽤나 저렴하다고 할 수 있다. 캐나다에서 의료보험에 가입된 사람은 모든 진료 및 수술이 무료이지만 성인들의 치과치료만은 예외이다. 일반 치과 전문의에게 받는 간단한 치료라 할지라도 치료비가 10~20만 원이 넘는 경우가 흔하고, 임플란트 등 스페셜 닥터에게 치료를 받는 경우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의 치료비와 6~12개월간의 치료기간을 감안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해외에 거주하는 교민들이 의료보험 적용이 안되더라도 한국에 와서 치과 진료를 받으려는 경우가 꽤 많다.
여기서 간략하게 캐나다의 의료보험 시스템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내가 거주했던 캐나다 퀘벡주의 경우 소득신고 때 본인 소득에 비례하는 의료보험비를 세금에 포함하여 납부한다. 이런 절차로 정부에서 제공하는 의료보험 카드를 발급받은 사람은 내국인이던 외국인이던 비자 상황에 상관없이 같은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다. 캐나다 의료보험 가입자는 수술을 포함한 모든 병원비가 무료이다(단 성인의 치과치료는 제외).
한국으로 돌아오고 6개월 뒤 의료보험 가입이 가능해졌고, 치과 외에도 조금 더 다양한 병원을 다녀보니 이건 완전 신세계였다. 한 번은 갑자기 등과 허리에 심한 통증이 생겨 한의원을 찾았는데, 침, 초음파, 전기치료 등 약 한 시간의 치료를 받는데 전체 진료비가 채 1만 원이 되지 않았다. 1시간 동안 나의 치료를 위해 접수처부터 의사상담과 치료사까지 총 3분이 도와주셨는데, 그 총비용으로 지불한 게 현재 대한민국 최저시급과 비슷한 1만 원이라니 '대한민국의 의사 시급은 얼마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이게 모두 한국의 의료보험 시스템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이다. 한국과 캐나다의 의료 및 보험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한국의 의료시스템만 경험해 본 사람들은 우리의 병원 시스템이 왜 놀라운 일인가 싶겠지만,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는 캐나다에서 살다 보면 "늦은 밤 아이가 갑자기 아파 새벽에 응급실을 찾았는데 8시간을 대기하고 받은 게 고작 타이레놀이었다"는 이야기를 한 번쯤은 듣게 된다. 그 경험 뒤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을병이라 생각되지 않으면 병원을 잘 안 찾게 된다는 웃픈 이야기를 덧붙인다. 의사는 적고 행정처리는 느려 하루에 의사가 볼 수 있는 환자의 수가 매우 적고, 그래서 환자들은 진료실에서 의사를 만나기까지 많은 시간 기다려야 한다. 결국 감기처럼 약한 질병의 환자는 병원을 찾지 않게 된다. 심지어 "코로나19"에 대한 대응도 한국과 캐나다는 매우 달랐는데, 캐나다에선 자가격리를 하는 환자들에게 구호물품은 물론 약에 대한 지원도 전혀 없었다. 캐나다 의료시스템의 최대장점은 모든 사람이 무료로 같은 질의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지만, 반대로 단점은 의사를 만나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경증의 진료는 신속하고 저렴하게 진료받을 수 있지만 비용이 큰 수술들의 경우 보험적용을 받지 못하는 한국의 의료 보험시스템과는 전혀 반대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의료보험 시스템은 캐나다와 미국의 중간 정도라고 생각되는데, 최근에는 개인이 암보험 등 사보험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게 필수가 되어버려 점점 미국형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미국, 캐나다 세 나라의 의료시스템 중 어느 나라 시스템이 제일 합리적일까? 결국 나는 한국도 모든 국민이 보험적용으로 무료치료를 받되 인구대비 의사의 수를 더 늘려야 한다고 생각된다. 병원비를 무료로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과는 국민 누구든 중증이 걸렸을 때도 같은 조건에서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게 하여 최소한의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병원에 올 필요가 없는 경증은 자가치료 하게 한다는 점이다. 한국은 약한 감기에도 병원을 찾는 일이 많기 때문에 인력과 약물이 남용되고, 그만큼 의료보험 예산도 낭비된다. 정작 큰 병은 개인적으로 돈을 지불하거나 사보험을 이용해야 하니 돈 없는 사람들은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의료업계 근로자의 근로환경도 개선되어야 한다. 최근 전문의들의 파업이 이슈가 되고 있다. 대한민국 의료인들의 근무한경이 열악하다는 것에는 많이 공감하지만 그래도 역시나 환자들의 목숨을 볼모로 삼았다는 건 참으로 안타깝다. 이런 파국은 면허를 취득한 대다수 의사들이 고수익을 얻을 수 있는 피부과나 성형외과를 선택하고,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소수의 전문의들은 긴 업무 시간과 교대근무 등 과다한 업무로 육체정 정신적 스트레스를 오랫동안 감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의사의 수와 교대 근무조를 늘리고 개인의 근무 시간은 줄여서 일을 여럿이 더 나눠하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 의사들도 개인 여가시간이 보장되어야 하고, 점점 길어지는 인간의 수명과 다양해지는 질병에도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캐나다 의사들은 점점 적은 시간을 일하려 하는 추세인데, 어차피 많은 급여를 받아도 높은 세율의 세금을 납부하게 되니 8시간 근무나 12시간 근무나 세후 실수령 급여에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몸을 혹사시켜 가며 더 많은 시간을 일할 필요가 없으니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쉬게 되며, 오히려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투자하는 진료시간을 늘려 더 집중하기를 택한다. 추가로 캐나다에는 패밀리 닥터라는 제도가 있는데, 예를 들어 나의 건강 담임선생님 같은 의사가 있다. 정기적으로 혹은 어떤 증상이 있으면 바로 이 패밀리닥터를 찾아가고 패밀리닥터가 진찰 후 추가 진료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내과, 외과, 치과, 비뇨기과, 피부과, 정신과 등 각 분야의 전문의에게 연결해 준다. 이 패밀리 닥터는 환자들이 전문의에게 가는 통로가 되어 질병의 경중과 진료 속도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많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복지와 문화 부분을 생각하면 아직 갈길이 멀다. 당장 먹고살기 힘들던 시절에는 어쩔 수 없이 누군가는 희생을 해야 했다. 남들보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고생해야 했다. 최저임금이 1만 원에 가까운 지금 끼니 해결하기가 힘들어서 고생하는 사람들은 확실히 많이 줄어들었다. 지금 우리가 고생을 하는 이유는 더 좋은 집에 살고 더 좋은 차를 타며 조금이라도 더 많이 명품을 사기 위해서라고 생각된다. 다 좋다. 각자의 선택을 나는 존중한다. 하지만 한 번쯤은 생각해 보면 좋겠다. 힘들게 번 돈으로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 간다면, 어떤 음식을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며 먹을지 말이다. 좋은 차를 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좋은 차를 타고 어디에 갈 것인가이며, 좋은 집에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어떤 생활을 할까라는 것을. 사실 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유토피아는 없다. 지향점을 가지고 시대에 맞게 계속 보완해 나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