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깨달은 아빠 마음
혼자 계시는 아버지가 일 년에 두 차례정도 우리 집에 머물다 가신다. 대부분은 아이들 방학 때에 너무 더울 때 너무 추울 때 짧으면 일주일 길면 이주 정도 지내신다.
이 일은 내가 결혼하자마자 생긴 건 아니었다. 아버지가 아프신 후 일을 그만두게 되면서 생긴 행사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굳어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첫 시작은 아버지의 우울감 때문이었다. 일하던 분이 안 하시고 집에 계시니 좀 무기력해하셔서 걱정이 됐다.
더불어 워낙 검소하게 사시는 분이라 여름에 더운데도 에어컨을 틀리 없고, 겨울에 보일러를 빵빵하게 틀리 없는 분이라는 점도 큰 이유였다.
(이 부분을 남편이 이해해 줘서 이 즈음 남편이 몹시 사랑스러워 보인다.)
처음 머물다 가실 때는 애들도 울고 아버지도 우셨다. 내 마음은 편치 않았고, 모셔다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차에서 많이 울었다.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이 감정을.
그 집에 아버지를 두고 올 때, 아버지 혼자 그 집에 고여있는 느낌이 들 때.
우리 집은 행복한데 아빠는 그 집에서 쓸쓸할 것이 느껴질 때.
몇 년이 지나자, 다음을 기약하며 서로 웃으며 인사하지만, 종종 속마음이 섞인 혼잣말을 들을 때면 마음이 미어진다.
내일 집에 가면 애들 소리도 안 나고
허전할 거 같네
이번 아이들 겨울방학에도 오셨다가 다시 아버지 집으로 가는 길.
아무렇지 않은 척 짐을 옮겨드리고, 정리를 좀 도와드렸다.
점심 먹고 가라고 이야기하면서, 어느 가게 이야기를 꺼내셨다. 이 가게 이야기를 한 게 세 번째인데, 가보고 싶다고 먹으러 가자고 말은 안 하신다.
그저, “거기가 맛이 있을까? 궁금하네” 하신다.
처음 들었을 땐 그냥 하는 말인 줄 알고 깨닫지 못했고 두 번째는 이번에 우리 집에 오자마자, 세 번째는 모셔다 드리자마자 하시길래.
‘아 그곳에 가고 싶은 더구나’ 싶어서 같이 가보자고 하고 길을 나섰다.
혼자 사시니 혼자 밥 먹는 게 익숙해지셨다 생각했는데, 아버지는 밖에 나와서는 혼자 잘 못 먹는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서도, 술 한잔하고 싶은데 같이 마실 이가 없어서 혼자 포장마차도 못 가고 어린 나를 데리고 가던 분이었다.
그 포장마차에 가서 어린 나와 마주 앉아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나는 안주를 먹었다. 지금의 내가 가리는 음식이 없는 것은 안주로 단련된 입맛 덕분일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아직도 마음 한편에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버지와 데이트하는 기분이었던 걸까?
아버지가 매일 입버릇처럼 하는 괜찮다는 이야기가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때때로 모른 척하고 싶은 미운 마음이 내게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아버지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올 때면 마음 한편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 아마도 이 일은 영정사진 앞에서 많이 울겠구나.
이번에도 나중에 후회를 덜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마음을 전한다.
마주 보면 마음이 들킬까 싶어, 마주 보지 못하고 땅 어딘가를 보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아빠 잘 먹었어~ 다음엔 애들이랑 같이 가서 또 먹자”
차마 얼굴은 쳐다보지 못하고 그저 땅 어딘가에 시선을 두고 이야기를 건넨다.
그러면 나와 꼭 닮은 자세와 시선으로 아버지도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덕분에 잘 쉬다 왔다. 고마워. 고생했다.”
그까짓 게 뭐라고 아버지는 과하게 고마워하고 미안해했다. 그저 며칠 밥 차려주고 챙겨준 게 뭐라고
아빠는 평생을 해준 건데 그게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