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섬세함으로
2007년 런던 테이트 모던 터빈홀 바닥에 167미터에 달하는 사선의 깊은 균열을 낸 작업으로 유명한 콜롬비아 출신 여성 작가 도리스 살세도(Doris Salcedo, b.1958)의 수많은 작업들 중 나는 특히 취약하고 섬세한 소재를 활용한 조각 (또는 설치) 작품들을 좋아한다. 내전과 폭력이 일상이 되어 버린 모국 콜롬비아에 거주하며 작업하는 그녀의 작업은 '애도'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그리고 그녀의 작업에 쓰이는 재료들은 대비되는 것들, 이를 테면 가늘거나, 얇거나, 부서지기 쉬운 것들과 날카롭거나, 무겁거나, 둔탁한 것들의 병치, 조합, 또는 충돌로 이루어진다.
그녀의 작품 <Atrabiliarios>(Defiant Ones, 1992-2004)는 전쟁 또는 납치 등으로 희생되거나 실종된 여성들을 애도하는 작품이다. 전시실 벽을 뚫어 만든 벽감 안에는 실종된 익명의 여성들이 신던 구두가 담겨있고, —소의 방광으로 제작된—반투명한 동물성 섬유로 봉인되었다. 이 가림막과 전시실 벽체를 바느질한 두꺼운 수술용 실은 상처를 거칠게 봉합하는 과정과 그 이전에 존재했던 폭력의 실체를 상기시킨다. 혼란스러운 사회 상황 속에서 실종된 여성들의 현존은 그들의 체중이 실리던 신발이라는 사물로 치환된다. 전시실 한 켠에는 같은 동물성 섬유로 제작된 박스들이 수술용 실로 밀폐된 채, 텅 빈 내부를 보여준다. 남아있는 이들이 지닌 상실감은 빈 상자가 담은 공허감과 함께 정지된 채 전시된다.
내전 중 콜롬비아에서는 누구나 위험에 노출될 수 있었다. 가정이라는 공간 역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살세도는 안전하고 신성한 영역이라 믿어지던 가정을 위험지대로 변형시켰다. 작업은 이 사적인 장소에 위치한 가구들을 분해해 기묘한 방식으로 재구축하는 것이었다. 침대는 책꽂이와 합쳐지고, 서랍장은 장식장과 수직으로 결합된다. 생활용품이 수납될 빈 공간은 허용되지 않고, 대신 무거운 콘크리트로 채워진다. 기능을 상실한 가구들은 미니멀리즘 조각처럼 전시공간을 기하학적으로 구획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오브제 표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의외의 세부 묘사들을 발견할 수 있다. 가구 틈새에 끼워진 작은 뼈 조각들이나, 머리카락 다발, 그리고 콘크리트 덩어리 속에서 유영하는 유령처럼 굳어진 옷가지의 지퍼와 리넨 천조각 등이 그것이다. 옷들은 실종되거나 희생된 이들의 가족들로부터 직접 전해받은 것이라고 한다.
또한 살세도의 작업은 주로 여성 화자로 상정된다. 작가가 작업에 앞서 대화를 시작한 대상도 주로 여성들이었거니와, 장미꽃, 여성용 구두, 가정용 가구들, 레이스가 달린 옷가지, 곱게 다림질한 셔츠 등 그녀들의 가정적 정체성, 노동행위와 연관되는 소재들이 작업의 세부를 구성한다.
<A Flor de Piel>(Skin Deep, 2014)은 적갈색의 거대한 장막으로 전시실의 한 공간을 덮은 채 전시된다. 이 거대한 장막을 이루는 것은 모두 장미꽃잎이다. 수술용 실로 꽃잎 하나하나를 일일이 바느질해 엮어낸 천 조각에는 그 거대한 크기를 압도하는 지독한 섬세함이 배어있다. 취약한 소재에 극도로 노동집약적인 작업을 더해, 작가는 고통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다. “비극적인 사건들에 아름다움을 덧입히는 일은 힘겨운 일”이다. 하지만 “인간의 삶을 존엄하게 여기고 싶다면, 예술은 필연적으로 아름다움으로 수렴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 아름다움에서 존엄성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지난한 수작업을 가능케 한 의지를 작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일관된 추구는 또한 폭력적인 행위를 재생산하지 않으면서 폭력의 이미지를 재현하는 것을 가능케한다.
여러 인터뷰를 통해 살세도는 “예술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에 우리가 직면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다만, 예술은 지속적인 질문을 던질 뿐이다.” 30여 년간 예술로 지속된 그녀의 애도는 현재 진행형인 폭력의 현장에서 무력감을 느끼기도 하는 개인으로서, 아울러 피해자들과 연대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기를 회복하고, 공동체를 치유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유색인이자 여성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제3세계”라 지칭하는 그녀에게 예술가의 정의에 대한 견해를 묻는다면 탁월한 재능과 영감을 지닌 천재가 아니라, 철학, 문학, 사회학 등 서로 다른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통합하고, 진득한 노동으로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존재에 가깝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