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옆자리의 영혼

by 김헌

내가 서있는 자리는 비워졌다. 베여 있던 냄새도, 공기도 차츰 신선한 것으로 바뀌어 갈 것이다. 자리라는 의미가 그런 것이다. 드는 자리는 표시가 안 나도, 나는 자리는 표시가 난다는 속담도 있다. 하지만 지워지는 흔적과 지워진 추억을 아쉬워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말인지도 모르겠다. 무엇이든 첫 대면과는 서먹할 수밖에 없고 익숙해지면 자리를 잡았다는 뜻이니 그 자리가 비워지면 당연히 허전함이 생길 것이다.


내 자리는 지금부터 언제까지 나의 흔적을 품고 있을까. 떠나왔다면 조금씩 지워지고 있을 것인데,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돌아갈 수 있을까.


익숙하게 바라보던 풍경, 내 손에 익숙해져 있는 사물들, 커피 향, 시원한 맥주의 그 황홀한 목 넘김, 전화 소리, 음식 냄새, 예쁜 제라늄 꽃들, 시집들, 그림과 시화들, 음악과 먼지 쌓인 창틀과 제법 시끄러운 냉동고 소음, 말없이 버티고 있는 인형들, 잎이 싱싱한 화분들, 제법 괜찮은 조명들, 조금 불편했던 의자, 진공관에서 나오는 웅장한 안드레아 보첼리의 목소리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존재하게 하는 공간.


그 공간을 채운 주인장과 주인장의 미소, 툴툴대는 잔소리, 땀 냄새, 따뜻한 촉감, 말랑말랑한 피부, 동그란 눈, 작은 입술, 듬성듬성 흰 새치가 섞인 머리칼이 있는 곱슬머리, 앞치마, 그리고 쓸 수 있고 부를 수 있는 이름, 그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 그녀. 내 옆자리의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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