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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갱새 Feb 13. 2022

최선과 몰두  

또 한 번 근심과 걱정 없이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다면,

어디선가 들은 말이 있습니다. 1등도 해본 사람이 1등을 하고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을. 또 다른 말로는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많이 먹는다 라는 말처럼 그만큼 경험이 중요하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승부욕이 되게 많았던 것 같습니다. 다만, 모든 것에 적용됐던 것은 아니었고 제가 특히 이끌렸고 하고 싶었던 것들에 승부욕이 많았습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하는데, 제 인생에서 제가 첫 번째로 선택했던 일은 무엇인가 떠올려보면 초등학생 때 태권도를 배우고자 했던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태권도장에 들어섰던 저는 누구보다 열심히 다리를 찢었고 누구보다 열심히 발차기를 연습했습니다. 진정으로 리더십이 강하고 똑똑하며 그릇이 크셨던 관장님 아래에서 가르침을 받으며 존경심이 생겼고 목표가 생겼었습니다. 관장님께 특히나 눈에 띄고 잘하는 학생으로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태권도장을 다니는 동안 정말 최선을 다했었습니다. 30분 일찍 도착해서 몸을 풀고 남들보다 30분은 더 발차기를 연습했습니다. 그렇게 제 태권도 단수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고난도 발차기를 혼자서 연습하고 연습하여 웬만한 학생들보다 잘하다 보니 주변 친구들에게도 칭찬을 받게 되고 관장님도 저를 좋아해 주셨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 자체도 행복한데, 그것을 남들에게 인정받을 때의 행복감과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꼈던 시기였습니다. 관장님께서는 발차기와 품새는 물론 잘 가르치셨거니와, 리더십과 도덕성에 대한 말로 하는 교육을 빼먹지 않고 해 주셨습니다. 저는 어렸었지만 그 교육이 지루하지 않았고 참 달콤했으며 가슴 깊이 새겨졌었습니다. 관장님이 해주시는 교육에 몰두하고 또 몰두했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았지만, 결국에는 학생들의 그릇을 키워주고 인간의 참된 면모를 갖추고자 하는 교육임은 분명하다는 것은 알았습니다. 관장님 같은 어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멋있어 보였고, 어른이라면 갖추어야 할 지성과 품성에 정답이 있다면 관장님이 정답과도 같은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런 관장님에게 인정을 받게 된 저는 실망스러운 학생이 되지 않기 위해 더욱 열심히 발차기를 하고 교육을 들었습니다. 태권도장을 다니며 친구들도 많이 만들었고, 소풍도 많이 다녔고, 추억도 많이 쌓았습니다. 그때의 경험들은 제가 살아온 인생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끼쳤기에 제 인생의 첫 선택은 헛되지 않았음을 지금 이 순간까지 속에서 계속하여 되뇌며 되뇌고 있습니다. 


태권도뿐만 아니라, 학창 시절 제가 원해서 시작하고자 했던 것들은(공부는 제외해야 할 것 같습니다..ㅎㅎ) 정말 진심을 다해 최선이었습니다. 피아노를 배워서 콩쿠르 대회 대상도 타보고, 친구들 사이에서 팔씨름 대장도 되어보고, 심지어는 동네의 오락실 게임들도 제가 게임기를 잡았다 하면 사람들이 우르르 몰릴 정도로 제일 잘하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쓸데없어 보일 수 있는 일에 괜한 승부욕이 있어서 혼자 방에 틀어박혀서 무언갈 연습하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쓸데없어 보이는 그 일들이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결코 쓸데없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사소한 것들에서라도 저는 1등이라는 경험을 해보았고 그 경험들은 제 자존감을 점차 높여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어떤 것이든 1등을 경험해보면 그것에 대한 책임감이 생깁니다. 피아노를 더 잘 쳐야만 할 거 같고, 팔씨름도 더 잘해야 할 것 같은 그런 생각들 말입니다. 그런 작은 책임감의 경험들이 비로소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나게끔 자신을 응원하게 만들고 다독여주는 것 같습니다. 과거로의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최선을 다했던 지난날의 저에게 고맙다고 한마디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에 무언갈 성취할 수 있는 것만 해당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특히나 저는 대인관계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오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을 원했고 사람들이 좋았으며 그저 평화로움이 좋았고 주변을 평화롭게 만들고자 했습니다. 베푸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고 늘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대했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잘해주고자 한다면 어떤 방식이 되었든 저에게 복이 되어 돌아온다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어머니 역시 대인관계를 중요시 생각하는 분이십니다.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많이 행해야 조상님들이 도와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계시고 특히 시댁 어머니께 정말 감사한 일들이 많았어서 지금까지도 산소에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고 꿈에 나와서 저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도록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끊임없이 하고 계십니다(지금은 시댁과 멀어진 상태지만요.). 조상님들의 도움을 받고자 대인관계에 최선을 다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어머니의 믿음이었고, 저는 그 믿음을 존중했습니다. 저는 그저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라왔으며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어느샌가 그 베풂이 버릇이 되고 오히려 제가 행복한 일이 되었습니다. 저로 인한 웃음들이 좋았고 눈물도 달콤했습니다.


버릇이 되어서 그런지 지금까지도 저는 회사에서든 밖에서 친구를 만나든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자연스레 웃음을 짓고서 바라보곤 합니다. 제가 행복하든 슬프든 남들에게 웃는 얼굴로 맞이해왔습니다. 어떤 누구라도 저를 바라보았을 때 그저 편안하고 행복한 미소를 전염시키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 제 모습을 좋게 봐주시는 분들 역시 많았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 보니, 고민이 하나도 없어서 좋겠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진 않았습니다. 제 속에선 고민들이 떠나간 적이 단 한순간도 없었지만, 남들에게 그런 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싫었습니다. 이러한 지난날들을 떠올려 보면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분명 저는 대인관계에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너를 숨겨가며, 금전적인 손해까지 봐가면서 대인관계를 하냐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게 내 행복이고 내가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냥 하는 것이라고. 물론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의 그 신념과 의도는 분명히 알고 있고, 그 사람들의 가치관을 충분히 이해는 합니다. 저를 바보처럼 바라볼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바라봐도 상관없습니다. 어찌 됐든 이것은 제 삶이고 제가 그리는 방향대로 살아가면 됩니다. 자신의 가치관을 남들에게 강제로 주입시킬 수는 없으며 그것은 실례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자분들도 남들의 시선에 의식하여 베풀고자 했던 것을 묻어두었거나 본인의 가치관대로 행동하지 못했던 경험이 있으시다면, 저와 같이 생각하시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여러분의 인생을 살아가 보시길 바랍니다. 


이 글을 생각하고 쓰며 지금의 저는 무엇에 최선을 다하고 있고 몰두를 하고 있는 가에 대한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 최선을 다했던 만큼의 노력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냥 살아가다 보니.. 그런 것이 무뎌진 것 같습니다. 반성을 하게 됐습니다. 어렸을 적처럼 조금 더 마음의 근심과 걱정을 내려두고 편안한 마음으로 제가 좋아하는 것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고 정리를 해야겠습니다. 어렸을 적엔 최선을 다하는 무언가가 제 삶의 의미가 될 정도로 좋았는데, 지금은 그런 확고한 마음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제 삶이 의미가 있어지도록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고 그것에 다시 한번 몰두해봐야겠습니다. 부지런하고 꾸준히 브런치에 글을 쓰시는 작가님들을 보면 존경스럽습니다. 이미 그것이 삶의 의미인 분들이시겠지요. 조금 더 부지런하고 삶이 역동적일 수 있게 노력해야겠습니다. 제 삶에 대한 이야기를 쓰며 계속하고 계속해서 저를 돌아보게 되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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