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의 나는 스스로요리를 꽤 좋아하는줄 알았다. 초등학교 때는 종이접기를 좋아했고중학교 때는 레고 조립과 퍼즐 맞추기를 좋아했으니 고등학교 때 요리에 관심이 간 것은 당연한 수순같았달까. 심지어 요리는 레고나 퍼즐처럼 완성만으로 끝나지 않고 완성작을 대접할 수도 있고 먹을 수도 있으니 그야말로 '만들기'계의 끝판왕 같았다.
요리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나는인터넷으로 도전하고 싶은 메뉴를 골라레시피를 검색하고 그 내용을 요리 중에도 보기 쉽게 '나만의 요리수첩'에 옮겨 적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의 이야기다)이유 모를 자신감에 난이도 높은 메뉴만 고르다 보니 수첩을 채운 메뉴들의 면면도 꽤나 화려했다. 수육보쌈부터 유린기에 고르곤졸라 뇨끼까지.
복잡한 뇨끼 레시피 (출처: http://enews.imbc.com, 나혼자산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요리에 임한 것이 총 세 번.
다행히 가족들의 반응은 만족스러웠다.실수는 따뜻하게 품을지언정맛없는 음식에는 가차 없는가족들의 성향을 고려할 때요리솜씨는괜찮은 편이었다.
문제는 막상 요리를 하는 과정이 즐겁지 않았다는 것이다. 타임, 고르곤졸라, 파르미지아노 등 당시엔 생소했던 재료를 준비하는 것부터 남은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고 쌓여있는 그릇을 깨끗하게 설거지하는 것까지 요리과정의 대부분이 복잡하고 고된 노동처럼 느껴졌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나는 '만들기'를 좋아했던 게 아니라 만들기를 완성한 후 느끼는 뿌듯함이 좋았던 거다.
종이접기, 레고, 퍼즐은 모두 완성과 동시에 끝이다. 완성작을 볼 때마다 뿌듯하고, 슬슬 질릴 때쯤엔 언제든 레고를 부수거나 퍼즐을 헤집어서 박스에 담아 넣으면 된다.심지어 정리를 핑계로 신나게 부수면서 파괴의 카타르시스까지 덤으로 느낄 수 있다.
반면, 요리가 주는완성의 뿌듯함은찰나에 불과하고준비과정과 뒷정리는지난한 시간을 요구한다.
가족들에게 뇨끼를 선보였던 날, '앞으로 뇨끼는 사 먹을 것'을 공식 선언했다.
결국 찰나의뿌듯함은 귀차니즘을 이기지 못했고 야심차게 만들었던 레시피 수첩은 서랍 속에 아무렇게나 잠들고 말았다.
밀키트 등장 초기, 회사동료가 스테이크 밀키트를 추천했었다. 그때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정육점에서 고기 사다가 굽기만 하면 되는데 뭣하러 밀키트를 사냐고 물었었다. 그러다 그 제품이 늘 마트 인기품목에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보고 호기심에 구입해봤다. 직접 조리해보고 나서야 그의 추천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고기, 오일, 소스, 가니쉬로 간단하게 구성된 스테이크 밀키트는 간편한 조리행위만으로 그럴듯한 결과물을 만들도록 도와준다. 단순히 고기만 구워내는 것과 달리, 밀키트에 들어 있는 각종 가니쉬와 소스를 곁들여 내는 과정을 추가함으로써 그럴싸한 '요리'를 만들었다는 뿌듯함을 선물하는 것이다.
게다가 고등학교 때 나를 질리게 했던 준비과정은 완전히 생략되고 뒷정리도 간편해졌으니 사실상 '요리 = 식재료 조립'이나 다름없었다.
한동안 그럴싸한 무언가를 만들어냈다는 작은 성취가 고플 때면밀키트가 주는 '뿌듯함'을 구입했다.
최근 기후변화가 글로벌 아젠다로 심각하게 다뤄지면서 소비 제품의 친환경 여부를 따져보는 것은 소비자의 주요 책무가 되었다. 막중한 책무를 상기하고 나니, 요즘엔 밀키트 재료의 소포장을 위해 쓰인 엄청난 양의 비닐을 정리하며 느끼는죄책감때문에 밀키트 구입을 망설이게 된다. 마트에 갈 때마다 요리 완성의 뿌듯함과 환경보호에 일조한다는 뿌듯함을 비교 형량하는 것이다.
요새 소비 트렌드인 가치소비나 미닝아웃도 결국 내가 나 개인이 아닌 전 지구적 관점에서의 가치를 위해 노력 중이라는 '뿌듯함'을 구매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치소비: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포기하지 않는 대신 가격이나 만족도 등을 세밀히 따져 소비하는 성향 *미닝아웃: 소신소비, 정치/사회/문화적 신념과 가치관을 소비행위를 통해서 표출하는 행위
'남들 다 하는데'라는 핑계로 가끔 종이컵도 쓰고 자주 배달음식도 시켜 먹는 대단치 못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이왕 돈 주고 사는 거 '편리함' 보다는 '뿌듯함'을 소비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장바구니를 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