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대한 부모님 세대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맞선으로 만나 며칠 만에 식을 올렸다거나 세 번 만나고 결혼했다거나 심지어는 식장에 가서 얼굴을 확인했다는 등 으레 결혼 스피드 무용담으로 끝날 때가 있다.
지금은 바야흐로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의 시대. 서로에 대해 충분히 알아가기 위해 썸 타는 기간을 갖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로코 드라마를 봐도 주인공들이 연애를 시작하기 전, 썸 타는 과정이 분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연애 관계에 있어서 썸은 이제 공식이 된 것 같다.
평생의 반려자를 찾는 방식과 결혼에 대한 생각이 변화하고 있듯, 회사를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도 점차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출처: 아시아투데이)
입사하던 때만 해도 삼성그룹에는신입사원들의 애사심을 고취하기 위해 매년 전 그룹사의 대졸 공채 1년차 신입들을 모아 응원곡과 군무를 가르쳐 경영 총수를 비롯한 임원진 앞에 선보이는 행사가 있었다. 일명 하계수련회.
하지만 하계수련회는 이제 과거가 되었다. 3주간 밤을 새가며 동기들과 과제를 해야 했던 그룹 입문교육도 그 기간과 강도가 대폭 축소되었다. 삼성인들의 가슴을 웅장하게 했던 파란색 단체복은 어느 순간 전체주의적 조직문화를 표상하는 폐습으로 치부되어 사내에서 자취를 감췄다.
하계수의 빈자리는하루짜리 일정으로 대신한다고 한다. 그마저도 경영진의 마무리 인사가 너무 길어서 8시간을 초과했다며 불만 섞인 글이 블라인드에 올라온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대체왜 입사하자마자애사심을 교육 받고 훈련받아야 하는 걸까? 8시간에 단 몇 분의 에누리도 허용해주지 않는 Z세대의 야박함은 논외로 하고, 신입에게 하는 '애사심을 가져라'는 말은 때에 따라 폭력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건 마치 소개팅 첫 만남에서 당장 본인을 사랑하라고 요구하는 꼴 아닌가.
주선자분께 제 얘기는 어느 정도 들으셨죠? 마음에 들어서 자리에 나오셨을 테니 이제 저를 당장 사랑해주시죠.
입사지원서를 내기는 했다지만, 합격하고 나서야 회사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있는 신입들에게 입사직후는 '이제야 그린라이트를 보낸 상대와 썸 타는 기간'이다. 썸 타는 기간이니 서로가 서로에게 잘해야 진정한 연인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썸 타는 중에 무조건적인 애정을 강요하면 흠칫하고 뒷걸음질칠 수밖에.
최근 MZ세대 직장인들의 입사 후 1년 이내 퇴사 비율이 30%를 웃돈다고 한다. 어느 취업포탈의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30 퇴사자 중 62%가 입사 후 3년 미만에 퇴사했다고 한다. 취업난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퇴사를 결정하는 사람들. 회사와 제대로 썸 타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나 보다.
입사한지 9년차, 썸이 썸인 줄 모르고 지나간 세월이 아쉽다.
제대로 튕겨도 보고, 다른 곳과 저울질도 해볼걸. 너무 열심히 일했다. 알아주지도 않는데 짝사랑만 너무 열심히 했다. 나도 이제 나 좋다는 데랑 썸 타고 싶다.
(출처: Love you, love you, love you Drawing, Claudia Tira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