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원없이 수영했던 날
허니문이란 이런 것일까. 어제 그렇게 와인을 마셨는데도 생각보다 숙취가 없었다. 오늘은 든든히 밥을 먹고 꼭 바다에서 수영하자는 목표를 세우고 스노클링 마스크와 스포츠 타올, 물안경을 챙겨서 조식을 먹으러 나갔다. 첫날 자정 근처에 도착했을때 밥을 먹었던 컬리나보다 알프레도가 우리 숙소에서 더 가까워서, 우리는 또 알프레도로 조식을 먹으러 갔다.
사실 같은 식당을 벌써 3번째 가는 거니 지겹지 않냐고 할 수 있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았던 것이 조식 점심 저녁 메뉴가 다 다르다. 게다가 어제 아침은 객실까지 가져다 주셔서 알프레도에서 먹는 아침식사는 처음이었다.
조식을 먹으러 객실에서 나와 걸어가는 길, 시타델이라는 이름처럼 리조트는 옅은 황갈색의 울퉁불퉁한 벽으로 마치 요새처럼 둘러 쌓여져 있다. 그리고 이 황갈색이 푸른 홍해와 대비되어 걸을 때마다 그 이국적인 풍경이 한참을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되었다.
아침의 알프레도 식당은 그 어느때보다 북적였는데, 한번에 4개의 후라이팬을 소화하는 화려한 스킬을 보여주셨던 요리사님이 압권이었다. 다른 식사 타임에 비해 종류가 더 풍부해진 느낌이었는데, 빵의 종류도 많고 요거트가 여러 맛으로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리고 이집트 답게 후무스도 한켠에 있어서 빵을 찍어먹어봤는데 짭잘하고 고소해서 별미였다. 처음에 아스완에서 계란전 같은 오믈렛을 보고 웃었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나온 것을 보니 이쯤되면 이집트 오믈렛 스타일이 이런가보다.
밥을 든든히 먹고, 짐을 둘 선베드를 찾는데 역시 수영하기 좋은 한낮이라 어제와 달리 경쟁이 치열했다. 그리고 확실히 파라솔 문화가 한국과 좀 다른 걸 느꼈다. 한국은 햇볕을 피해 그늘을 만들기 위해 주로 선베드가 파라솔에 옹기종기 딱 붙어있었다면, 여기는 파라솔을 중앙에 두고 선베드 하나는 그늘에 있고 하나는 묘하게 빗겨나가 햇볕 아래에 있었다. 어쩐지 햇볕에 몸을 지지는 사람들이 많더라니. 결국 한참을 헤매 천막 아래 있는 선베드에 안착했다.
그렇게 짐을 두고, 아직 어제의 숙취가 남아있던 남편은 쉬라고 하고 수영 전 어제 봐두었던 다이빙 샵 옆 슈퍼에 선크림을 사러 갔다. 한국에서 선크림을 잘 가져왔다고 생각했는데, 워터프루프가 아닌 것을 뒤늦게 어제 발견했다. 워터프루프가 아닌 선크림을 바르고 그냥 수영하기에는 햇살이 너무 강했으므로 살짝 고민하다가 나중에 귀국해서 병원 가는 것보다는 저렴하겠다는 마음에 그냥 사기로 했다. 내가 사고 싶었던 것은 니베아 키즈 선크림이었는데 글로벌 브랜드라 잘 안깎아 주려고 해서 꽤 흥정타임이 길었다. 그래도 3만원에 (한국에서는 2만원에 팔고있었다) 잘 사서 몸에 듬뿍 잘 발라주었다.
어제와 달리 바람이 꽤 불었는데도 수온이 따뜻했다. 들어가기 전 라이프가드에게 말하면 구명조끼를 빌려주는데, 수영을 잘 해도 스노클링을 할때는 구명조끼를 입는 편이 훨씬 오래 수영하기에 편하다. 이날을 위해 스노클링 마스크와 숏핀까지 챙겨온 나는 처음 얼굴을 넣자마자 환호성을 지르기 바빴다.
정말 얼굴을 물 속에 집어넣자마자 물고기 떼가 보였다. 안전선이 쳐져있는 데 까지 가자 색색의 물고기와 산호(물론 죽은 산호지만)까지 보여 정말 아름다웠다. 아마 배를 타고 나갔다면 훨씬 다양하게 봤을 테지만 부족한 시간에 이정도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스노클링을 하다가 바다에 둥둥 떠서 눈을 감으면 마치 바다와 한몸이 된 것 같아 마음이 절로 편해졌다. 체감 15분 수영한 것 같은데 거의 두시간은 수영한 뒤였다.
밖으로 걸어나와 샤워로 바닷물을 씻어냈다. 홍해의 바닷물은 정말 짰는데, 그 강한 염도만큼 몸에 더 찐득하게 달라 붙는 느낌이었다. 샤워 후 나른한 몸을 선베드에 누이고, 인근 바에서 받은 모히또(물론 무료다)를 한모금 하고 눈을 살짝 감으니 이 곳이 정말 천국 같았다.
잠깐 쉬다가 늦은 점심을 먹으러 또프레도로 슬렁슬렁 걸어갔다. 점심에는 화덕에서 피자를 구워줘서 마르게리따 피자를 몇조각 들고 오는데, 바다 옆 야외좌석이 난리였다. 알고보니 거대한 갈매기가 밥을 노리고 있었다.
아니 사람이 앉아있는데도 대범하게 푸드덕 거리면서 날아와 음식을 낚아채는데 깡패가 따로 없었다. 어제 저녁에 왔을 땐 사람이 워낙 빼곡하게 있어서 그땐 차마 못노리다가 점심에는 더워서 야외에 사람이 많이 앉지 않은 틈을 노려 먹이를 노리는 모양이었다. 쫒아도 인근에서 비행하며 틈을 노리는데 아주 끈질겼다. 졸지에 햇빛 아래 행복하게 식사하던 여자분은 혼비백산해서 결국 자리를 옮기셨다.
아무튼 이런 소동과 함께 식사를 마치고, 네시 즈음 이번엔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러 갔다. 푸른 타일의 수영장과 노란색 파라솔이 아름다워서 몸을 담갔는데, 윽 물이 너무 차갑다. 오늘 유독 바람이 거세게 분 탓일까 생각보다 차가운 수온에 놀랐다.
수영을 계속해서 하면 체온이 올라 괜찮을 것 같은데 자칫 감기에 걸릴 것 같아 사진 몇 장찍고 가볍게 몇 바퀴만 돌았다. 노란색 파라솔 아래 맥주를 마시는 커플들과 사진으로 봤던 부르키니를 입은 여자들, 선배드에서 거하게 담배피는 남자들까지 바다수영보다 오히려 이 곳에 다들 모여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저녁으로는 아껴둔 마지막 김치찌개 라면밥과 햇반을 꺼냈다. 산행에 가서 먹는 제품인 것 같은데, 발열체가 내부에 있어 실온의 물을 넣어도 뜨끈하게 먹을 수 있다. 다만 야외에서 먹는 제품이라 연기가 좀 나는 편이어서 베란다에서 먹었다. 야자수가 보이는 먼 바다에서는 아스라이 그라데이션을 이루며 해가 져가고 있었고, 하루종일 수영한 후 먹는 라면과 밥이 주는 뜨끈한 국물과 탄수화물이 끝내줬다.
올라오는 혈당에 잠이 쏟아져 눈을 잠깐 붙였다가, 아무래도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하기엔 아쉬워서 이번 여행의 마지막으로 시샤를 피웠다. 확실히 어제보다 몸이 피곤하다 보니 어제만큼 오래 피우기는 어려웠기도 하고, 내일은 또 비행기를 타고 카이로로 돌아가야 해서 기분만 내고 짧게 피고 올라왔다.
밤 10시 즈음 올라오는데 만월의 바다에 달빛이 비쳐 짐승의 피부처럼 바다에 조직감을 새기고 있었다. 사방에 조용한데, 바람이 강하게 부는 탓일까 멀리서 들리는 파도소리가 마치 귀 옆에서 치는듯 선명해서 한참을 서서 멍하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