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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b 하우스 Nov 23. 2023

착한 욕심, 공모로 나의 값을 매기다

52세에 시작하는 자기 계획서

센터 내부공모는 센터 안에서 필요한 인원을 공모하여 선발하는 방식이다. 전문성이 요구되는 센터 업무의 특성에 맞춰 디자인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함께 해당 업무에 관심이 있는 인재를 내부에서 찾는 것이다. 이번 내부공모에 추천을 받게 되면서 나에게 변화의 기회가 찾아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실 나는 퇴사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져 이것저것을 알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건축 방면에 경력이 없다 보니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렇다고 쉬운 방법을 찾거나 지금의 불만족한 상황을 계속 이어가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새로운 도전이 주어지는 내부공모를 선택하게 되었다.


이렇게 나의 도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드림웍스가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 쿵푸팬더와 같이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뚱뚱하고 둔한 몸을 가진 팬더 포는 아버지의 국수 가게에서 일을 하고는 있지만 이것을 가업으로 잇는 대신 쿵푸 마스터를 꿈꾸며 살고 있다. 그러던 중 용의 전사를 정하는 축제인 무적 5인방의 대결을 보기 위해 쿵푸의 성지인 제이드 궁전으로 향하게 된다. 그런데 그곳에서 팬더 포가 용의 전사로 점지되는 이변이 일어난다. 쿵푸의 쿵 자도 모르는 팬더가 용의 전사로 선택되면서 스승인 마스터 시푸가 그를 가르치게 된다. 그에게 리얼의 쿵푸의 세계가 펼쳐진 것이다. 그는 함량 미달에 실력을 갖추지 못했고 영웅적인 모습이라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점잖고 카리스마 넘치는 스승을 만나면서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들을 차근차근 수행해 나가며 도전을 불사를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운이 좋게 그곳에서 마스터인 사부를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새로 일하게 된 팀에서는 디지털팀의 고수가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자신의 일을 가르칠 후임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부는 디지털과 디자인 모델을 검증하는 부분의 일을 개척하며 열정적으로 일해 왔다. 이 일의 중요도가 커지고 있어 센터 내부공모를 했고 여기서 그는 실력 있은 사람이 후임으로 오길 기대하고 있었다. 내부공모 기간에는 그에게 문의를 하고 면담을 한 직원들로 여럿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 업무와는 전혀 관련도 없는 듣보잡인 내가 선발되면서 그를 당황스럽게 했다. 내게는 사부를 만난 것이 큰 행운이지만 사부에게는 예상 못한 최악의 시나리오가 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사부는 마스터답게 걱정하는 것과 달리 열정을 다해 나를 가르쳤다. 인원만 선정되고 아직 인사 발령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사부는 자신의 오전을 교육시간으로 할애해 주었다. 이것은 새로운 업무를 내가 좀 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미리 배울 수 있게 해 준 사부의 고마운 배려였다.


“내게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편안하게 달릴 수 있는 길을 두고 앞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차를 몰기로 했는데 나는 그곳에서 너무나 아름다운 길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최고의 마스터를 만나 그를 스승으로 배울 수 있었다. 이것은 내가 새로운 길을 가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기회였고 행운이었다. 이것은 내가 불편함을 감내하며 힘든 길을 가겠다고 마음먹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소중하고 특별한 만남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시기까지 완벽했다. 이번 내부공모가 센터에서 처음 실시된 것이라 내가 운이 좋았다는 것 외에 이것을 설명할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결국 내가 변화를 찾으면서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현재의 편리를 버리고 미래를 보고 어려운 길을 선택한 것이 잘한 일임을 느끼게 해 주었다. 결국 시작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처음의 생각이 어디를 향하는지가 얼마만큼 멀리 갈 수 있는지 또 어떤 결과가 될지를 결정짓는 것 같다. 끝이 시작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건축에 대한 나의 관심을 참을 수 없는 갈증으로 바꾸어 놓았다. 나는 이것을 마냥 미루고 싶지 않았다. 이것에도 나의 도전과 실천이 필요했다. 그래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고 이렇게 찾은 것이 글쓰기다. 나의 글쓰기를 건축에 올인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내가 하고 있는 글쓰기를 모두 건축으로 바꾸어 나의 건축에 날개를 달아주고 싶었다.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된 사진 한 장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도로가 오래된 주택을 보수해 만든 작은 갤러리였다. 나는 이 사진을 스마트폰에 저장해 생각날 때마다 꺼내 보았다. 새것이 아닌 것에 그렇다고 화려하지도 않은 것에 내가 깊이 빠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내가 새것인 디자인과 컨셉에 집중하면서 더 중요한 것을 놓친 것 같아 부끄럽고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내가 어떤 건축을 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을 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내가 놓치고 있는 건축 그래서 내게 미안하지 않을 건축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부족함을 드러내고 내가 잘하는 컨셉과 디자인을 빼고 건축을 대하기로 했다.


내게 글쓰기는 항상 도전이었다. 나는 회사에서 디자인 브리핑이라는 센터 일간지의 멤버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컨셉의 정의를 새롭게 내리고 스토리를 더하면서 호응을 얻었고 이것을 계기로 컨셉에 손자병법을 더해 글을 쓰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내가 글쓰기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작문 수업에서 선생님 눈에 띄면서 학교 대표로 대회를 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의 처음은 비참했다. 사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 돼서도 글씨 쓰는 것을 힘들어했다. 선생님이 말하는 것은 고사하고 칠판에 써 놓은 것을 노트에 따라 적지 못했다. 나는 매번 적는데 꼴찌였고 이것은 생활기록부에 그대로 남겨졌다. 누구에게도 말한 적은 없지만 나는 심각한 왼손잡이였다. 어떤 이유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왼손으로 했던 것을 오른손으로 바꾸게 되면서 혼자 속앓이를 해야 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글쓰기가 내게 가장 큰 도전인 것이다.


나는 건축에 대해 쉽고 재미있는 스토리를 찾고 싶었다. 건축에 관한 어려운 얘기나 법규 같은 것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내가 할 수 있는 쉬운 얘기를 찾기 시작했다. 나는 몇 곳을 답사하고 이것을 글로 써 보기도 하고 교보문고에 들러 필요한 책들을 살펴보기도 했다. 이때까지 나는 내가 잘하는 컨셉과 디자인으로 건축을 바라보려 했다. 화려함을 찾는데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순간 의문이 들었다. “디자인과 컨셉을 빼면 어떤 게 남을까? 그리고 디자인과 컨셉을 빼면 어떤 이야기가 될까?” 그런데 여기에 더 재미난 얘기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어린 시절 좋아했던 집과 거기서 하던 놀이들을 발견했고, 한옥에서 살면서 좋았던 것이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는 것도 새삼 다시 알게 되었다. 이렇게 내가 경험했던 집에 관한 얘기들을 글로 구상하고 있을 때 브런치북 프로젝트의 공모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새로운 도전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착한 욕심이 생긴 것이다.


"이젠, 미루지 말고 지금 하자. 그리고 생각을 조각이 아닌 큰 생각으로 뭉쳐보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실천이야 말로 조금씩 읽는 것으로 벽돌 같이 두꺼운 책을 독파할 수 있게 한다. 나는 조금씩 실천하며 나를 가로막고 있는 벽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이번 글쓰기를 마칠 때는 건축 홈페이지를 완성해 현재의 벽을 뚫고 나갈 것이다. 이어서 나는 다시 도전을 할 것이고 그때는 더 멀리 우주까지 날아가 보고 싶다. 나는 '만약에' '하지만' '그런데'와 같은 부정적인 말들로 나 스스로를 묶지 않으려 한다. 나는 이것들을 긍정의 언어로 만들어 갈 것이다. 나는 음악가가 되어 노래처럼 예쁘고 리듬감이 넘치는 언어로 바꿀 것이고 박자에 맞춰 대화를 나누고 감정을 표현할 것이다. 그리고 댄서가 되어 나의 언어를 몸의 동작과 표정을 생명으로 키워낼 것이다.


나의 또 한 가지 질문은 “누구처럼 시작할 것인가?’이다. 그냥 처음으로 돌아가 시작한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돌아갔다고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원점에서 맴돌기를 반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늑대처럼 원점에서 출발하여 사냥감을 찾아 목표점에 도달할 수 있기를 원한다. 뇌에 상대의 냄새를 각인시키고 그의 행적을 따라가 그의 마지막 발자국을 밟아 보고 싶다. 이렇게 나는 새로운 길을 걷고 싶다. 그래서 나는 내게 어울리는 늑대 친구를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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