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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b 하우스 Nov 16. 2023

퇴사 실패 후 1년의 시간이 지났다

52세에 시작하는 자기 계획서

11회를 맞이하는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의 공모를 보고 글을 쓰기 시작해 마감을 3일 남기고 마칠 수 있었다. 전공도 아닌 집에 관해 쓰기로 하면서 시작할 때만 해도 ‘내가 과연 2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글을 마칠 수 있을까?’를 걱정해야 했다. 그래서 ‘차라리 여유를 가지고 내년을 목표로 차근차근 준비하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했었다. 회사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밤 늦게까지 고민하는 날이 많았고 새벽에 깨어 정해진 양의 글을 쓰기도 했다. 그런데 브런치북의 응모를 마쳤을 때는 기대했던 것만큼 성취감도 해방감도 들지 않았다. 비유를 한다면 수능 시험을 마쳤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오히려 피로가 몰려왔고 무력감이 함께 찾아왔다. 예전 같으면 몇일을 쉬거나 여행을 하는 것으로 나름의 보상을 받으려 했을테지만 나는 그렇게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곧바로 계획해 놓은 다음 일을 시작했다. 나는 건축을 주제로 좀 더 큰 목표로 새로운 도전을 실천하기로 했다.


내가 새로운 일로 건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1년전 퇴사를 결심하면서였다. 직장내 괴롭힘으로 신고됐다는 인사팀의 연락을 받고 나는 배신감에 그날 바로 회사를 나왔다. 그러나 회사의 설득과 나로 인해 생긴 업무의 공백으로 결국 2주만에 다시 복귀하게 되었다. 다행히 인사팀에서 나의 손을 들어주면서 상대가 다른 부서로 가는 것으로 결론을 내주었다. 이것에 몇 달의 시간이 더 걸리면서 우리는 불편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 기간은 나에게 많은 것을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내가 변화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와 잘못된 데는 내 이 크다. 누구를 가르쳐 본적이 없는 나는 서툴었고 리더를 하는데도 부족했다. 이 때문에 나도 상대도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 시간은 내게 배움의 시간이었고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하나의 사건이 새로운 변화의 실마리가 되듯 나 역시도 계획대로 그곳을 떠날 수 있었다.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내가 하던 일에 공허함은 커져만 갔다. 예전 같으면 미리 짜 놓은 신년 계획에 맟춰 일을 시작했을테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회사와 병원은 닮은 데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회사에서 퇴사와 퇴직은 병원에서 퇴원과 비슷하다. 둘 모두 우리가 그곳에 계속 머물 수 없고 그곳이 끝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곳에서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되야 한다. 필요하다면 수술대에도 올라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수술대에 오르기로 했다. 현재의 자리에서 나를 눕히고 나를 분해하기로 한 것이다. 차량을 분해하듯 부품을 하나씩 떼어 점검을 하고 리스토어에 들어갔다. 이렇게 고치고 새것으로 바꾸는 것으로 새 차로 거듭나기로 했다. 새로운 내가 되기로 한 것이다. 나는 새 차가 되어 달려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달리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혔다.


 나는 디자인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했다. 자동차 디자인에 대한 가이드, 사진, 영상을 포함해 디자인 발표와 런칭 일을 했다. 한 프로젝트에 1년 가까운 준비 과정이 필요한데 나는 미션을 수행하듯 이 일을 열정으로 대했다. 나는 거친 파도를 헤쳐 나가는 것이 좋았고 또 이것을 멋진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마주치는 파도와 싸웠고 이것이 끝나면 몸을 추서려 다시 시작해 도전을 이어갔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도전은 많지 않았고 이 마저도 줄어갔다. 마치 모래성에 깃대를 꽂고 하는 모래 가져오기를 하는 것만 같았다. 처음엔 두 팔을 펼치고 가슴 가득 내 쪽으로 모래를 퍼서 나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속도가 줄고 깃대가 쓰러지지 않게 싸우는 경기처럼 지루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렇게 모래에 손끝만 닿는 시늉만 하는 현실이 싫었다. 나는 일과 인생도 마찬가지로 처음의 동작을 계속해서 이어가며 두 손으로 가슴 가득 모래를 퍼다 나르고 싶었다.


1년의 기간동안 나는 많은 생각과 고민을 했다. 나는 그 기간동안 퇴사라는 한가지 재료로 할 수 있는 모든 요리를 만들어 먹은 것 같다. 수많은 고민을 했지만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현실에서 많지 않았고 이 마저도 장미 빛 미래를 포함하고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나의 경력이 특화되어 있다고 해서 이것이 유리하다는 보장은 없어 보였다. 마치 레이싱 선수나 육상 선수가 요기요나 배달의 민족에서 유리하거나 우세하다고 결론짓기 힘들 것처럼 말이다. 진짜 실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는 퇴사를 마치 자유인양 바라보면서 신중하게 대하지 못했다. 열심히 준비해서 퇴사를 하겠다는 말은 멋지게 들리기는 하지만 이것이 실현되지 못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퇴사를 한다는 각오로 지금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현재의 익숙함에 매몰되어 지내는 대신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단련시켜 나가려 한다. 좀 더 도전적이고 안 해본 일을 찾아 실행해 보는 것이다. 도전에 실패한다 해도 미리 실패를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재무장을 할 수 있게 된다. 성공한다면 이것을 경험으로 더 큰 도전을 이어 갈 수 있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잃을 것이 없는 기회인 것이다.


“퇴사가 새 수건처럼 물기가 잘 닦이지 않아 불편한 것이 아닌 원하는 대로 깨끗이 닦아 줄 수 있는 익숙한 수건 같으면 좋지 않을까?”


내가 있던 팀이 처음 만들어질 때는 이례적으로 떠들썩했다. 새로 인원을 뽑고 업무를 시작하는데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마치 천지창조가 이루어지듯 1주가 안되는 짧은 시간에 이루어졌는데 이것은 대기업에서는 불가능한 정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렇게 화려하게 데뷔를 했지만 시간이 지나 조직이 바뀌면서 초기의 멤버들도 한 명씩 떠났다. 그러던 중 작년말 마지막 멤버가 갑작스레 퇴직을 하면서 나 혼자 남게 되었다. 둘이 서로 의지하며 버팀목이 되어 주었는데 이젠 이 마저도 사라져 버렸다. 이것은 올드 멤버인 나도 떠날 때가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 같았고 내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시기 내가 깊은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센터 내부공모가 있었고 추천을 받게 되면서 내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그래서 나는 센터 내부공모를 퇴사를 하는 각오로 임하기로 마음먹었다.


인생을 100세로 봤을 때 분기점을 돌아 반을 남긴 상태에서 나는 다시 거친 파도와 싸우고 두 팔을 펼쳐 가슴 가득 모래를 퍼다 나르기로 했다. 무한의 에너지를 가지고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예술가와 사업가처럼 나도 앞으로의 50년의 시간을 멈추지 않고 달리고 싶다. 최고 속도로 달리는 대신 멀리 있는 목표점을 바라보며 즐기며 달리고 싶다. 아무리 빠른 치타라 하더라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짐승을 먹이로 사냥하게 되면서 성공률은 10프로가 안된다 한다. 하지만 늑대는 사냥의 성공률을 100프로로 끌어 올릴 수 있다. 늑대도 처음엔 먹이를 놓치기 때문에 치타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것을 긴 시간으로 바라보면 둘의 결과는 완전히 다르다. 늑대는 먹이를 놓치면 포기하지 않고 사냥을 시작했던 지점으로 돌아가 다시 추적을 시작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몇시간 전 사슴이 남긴 흔적을 따라 먹이와의 거리를 줄여가면서 결국 사냥에 성공하는 것이다. 내가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기로 한 것도 같은 이유이다.


나는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데 필요한 것이 고집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지금 잘하는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처음부터 시작하겠다는 것은 수지타산에 맞지 않는 고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 것 같은 일에서 고집으로 불편함을 감내하며 먼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싶다. 도전하고 실천하는 것으로 나의 인생을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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