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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 Aug 01. 2023

초보엄마. 남편에게 섭섭했다.

육아를 하면서 나 자신의 바닥을 보게 되었다. 체력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완전히 바닥이었다. 지금까지의 인생 중에 그렇게 바닥이었던 적은 없었을 만큼 바닥이었다.

출산 후에는 호르몬의 영향으로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 우울감을 출산 후 우울증이라고 단순한 말로 치부하며 시간이 지나면 나아진다는 말로만 말하기에는 겪고 있는 사람은 너무 폭풍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자연분만 하면 날아다닌다는 말들은 나를 비켜갔다. 한 달이 지나도 걷기만 해도 무릎이 시큰거려 엘리베이터를 타고서만 움직였다. 아기는 나왔지만 허리는 아직도 계속 아팠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세상에 나온 아기는 나오자마자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내 존재보다 소중한 존재. 아기가 내 인생에 들어온 지 한 달도 안 돼서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그런데 잘 보살피고 잘 키우고 싶지만 아는 게 없다. 그래도 잘하고 싶어서 맘카페며 초록창이며 검색하고 친구들에게 정보를 얻고 책을 뒤져가고 아기와 하나하나 겪어가며 육아정보를 하나하나 얻어가며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공동육아.

같이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으면 요새는 다 공동육아를 한다고들 한다. 내가 생각하는 공동육아란 동등한 위치에서 같은 고민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좋은 올바른 결정을 하며 서로 위로해 주며 같이 성장해나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기에 대한 이야기를 남편에게 하면 별일 아니라는 듯한 대꾸와, 혹여나 내가 실수한 일들이 아기한테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하며 이야기하면 나 때문이라며 책망했다. 위로와 공감을 바랐지만 그런 건 오지 않았다. 

체력과 정신이 가장 바닥에 있을 때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내가 가장 소중한 내 아기한테 실수했다는 듯이 말하는 것을 나는 상처로 받아들였다. 배신감도 느꼈다.

이 시절의 이런 상황들이 여러 번 쌓이니 나는 남편의 말에 귀를 닫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힘들 때 내 이야기 안 들어주고 위로해주지 않았으니 나도 니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위로도 해주지 않겠어!!'라는 초등학생보다 유치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고 우리 사이에는 벽이 생기기 시작했다. 



상대를 내가 돌봐야 할 약자라고 여기면
그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에 상처받지 않아요.
하지만 상대보다 내 마음이 낮은 위치에 있으면
지나가는 한마디에도 마음을 다쳐요.
그 사람 아래에서 칭찬받기만을 기다리기 때문이에요.
내가 나를 상처받을 곳에 데려다 놓은 거예요.

이 한마디가 나를 살렸다/김미경 p155


그런데 이 구절을 읽고, 내 마음의 위치를 한번 돌아보았다. 

나는 남편보다 낮은 위치에서 남편의 칭찬을 받기를 기다렸던 것인가?

내가 남편의 마음보다 낮은 위치에 있을 필요가 있을까?

칭찬. 꼭 남편한테 들어야 할까?


육아를 하며 깨달은 건 오롯이 아기와 지내는 시간이 6개월 이상 되지 않는다면 100퍼센트 공동육아라고 할 수 없으며 100퍼센트 공감할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100퍼센트 오롯이 육아를 해보지도 않은 남편이 나보다 높은 위치에 서 칭찬할 입장인가? 

물론 섭섭할 수 있다. 하지만 생각을 뒤집어보자.

애초에 평등한 육아는 없다. 50:50으로 나눠서 육아를 할 수 없다. 누구 한 사람이 더 깊이 많이 담당하게 되게 되는 게 거의 확실하다. 우리 집에서는 그게 엄마인 나고 내가 육아에서는 책임자이자 회사로 치면 사장이다. 그런데 사장이 알바한테 칭찬을 바란다니? 땡! 틀렸다. 


육아에서 나를 칭찬할 수 있는 건 나와 우리 아기뿐이다. 다른 사람의 칭찬을 기대하며 쭈그려 있지 말자. (남의 집 남편들은 알바인지 직원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주양육자인 사장인 위치는 아니다.)

오늘도 고생한 나에게 나 스스로 칭찬하며 일어서자. 이렇게 나는 단단해지며 커간다.


엄마는 오늘도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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