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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을 파는 잡화상 Oct 30. 2023

우리는 슬프다

시와 풍경 _ 채호기,「우리는 슬프다」


  

우린 슬프다. 술 취한 밤 하늘을 날아

나는 너에게로 간다. 가는 척한다.

무선 전화 전파를 신고 공중을 저벅저벅 걸어간다.

네가 나에게 “잘 지냈어?” 하면

“사랑해”였는데, “별일 없어” 하면서

서로의 가슴에 재를 뿌린다.

그리고 서로 할퀸다. 좀더 깊이 상처를 내면서,

상처가 아물기까지라도 기억해 달라고.

“가족을 버려!”라고 정색하지 않는다.

삶을 버리랄까봐. 낮에는 각자 일한다.

일로 얼굴 가리고 낄낄댄다.

밤에는 집에 가서 마누라와 애들 앞에

목소리를 깔고 그 위에 앉아 소리없이 말한다.

술 취한 밤. 택시는 잡히지 않고

인적 없는 거리에서 비틀대다 제 그림자를 밟았을 때

그림자의 핏발선 눈초리에 가슴을 쥐어 뜯겼을 때

우리는 각자 수화기를 들고 욕설을 주고받는다.

제 탓할 힘이 없어질 때까지

고래고래 고함지른다. 축 늘어져 마른걸레처럼

싱겁게 빳빳해져 집으로 간다.

그게 우리들 사랑이냐?

삶이냐? 고

골목 어둠 귀에는 들리지 않게 낮게 중얼거려 본다.

생각해 보면 너는 내 그림자 속에만 사는데

니가 내 애인이냐?

검은 그림자가 개같이 어슬렁어슬렁 앞서간다.         


                                                       

                                                     





시는 몸에서 흘러나온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삶의 흔적들이 몸에 새겨진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한다. 몸을 변화시키면서 우리는 삶을  변화시킨다. 시는 삶을 변하게 한다(변하게 하여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내 삶을 끊임없이 변화시키려고 몸부림친다. 시를 통해서 삶을 변화시키고 삶의 변화를 통해서 시는 계속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다. 시는 언어로 구성되어 있지만, 시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자신의 삶의 어떤 부분이 부서지거나 새롭게 덧붙여지는 체험을 하게 된다.

  몸은 즉각적이다. 몸은 반응할 뿐 반성하지 않는다. 물론 몸은 생각에 의해 조종되기도 한다. 하지만 항상 몸은 생각보다 빨리 간다. 뜨거운 것이 몸에 닿았을 때 뜨겁다고 생각하기 전에 몸이 움직이는 것처럼. 시가 삶의 불투명성과 싸우려면 몸의 비이성적인 속성을 제 것으로 해야만 한다.

 이 세계 안에 우리는 몸으로 있다. 몸이 없이는 우리는 이 세계에 있을 수 없다.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 내 몸 아닌 다른 몸?.... 끝이 없다면...., 영원히 날아가는 돌팔매. 저기 날아가는 물음표가 떨어지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삶을 바꾸기 위해 시를 쓴다. 삶은 바뀌는 곳에만 있다.  

   


-채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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