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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을 파는 잡화상 Nov 09. 2023

아버지

시와 풍경 _김기택


아이들은 투명하고 맑았다 깨지지 않도록 

손을 잡고 큰 발 잔걸음으로 조심조심 걸었으나

찬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아이들은 금이 갔고

거기서 자주 울음이 새어나왔다

소를 쓰려뜨려 뻘건 고기를 만들던 큰 손으로

그는 아이들 눈물을 닦아주었다

뻣뻣한 털에 긁혀도 상처나는 흰 얼굴에서

조금씩 슬픈 표정들이 지워졌다 그의 목구멍으로 

잠시 소울음 같은 바람이 지나갔으나

그는 표졍 없이 웃었다 다만 머리카락과 콧구멍을 

잡아당길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머리를 숙였고

짜증내고 투정하는 소리가 들어오도록 귀를 열었다

때로 깨끗하고 낭랑한 웃음 소리가 햇빛에 부서져

멀리 퍼져나가기도 했으나 곧 날씨가 흐려졌고

아이들은 잔물결이 되어 그의 가슴에 차올랐다

찰랑거리는 물결이 갑자기 파도처럼 소리내며

일어나지 않도록 그는 조심스럽게 숨을 쉬었다

물에 떠 있는 것처럼 기우뚱거리는 그의 걸음에 

아이들 손을 잡을 때마다 딱딱해지고 무거워지는 

아버지 자꾸자꾸 커져서 벽이 되고 지붕이 되는

아버지




한 때 땅 위에 살았던, 이젠 더 이상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 무수한 생명체들은 어디로 갔을까? 정말 없어져버린  것일까? 숨을 쉬어보면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 것도 같다. 내 몸 속의 공기들을 내보내고, 이미 누군가의 허파를 지나왔던 공기를, 짐승의 내 장과 나무의 수액을 지나왔던 공기를, 변소와 하수구와 자동차  배기통에 있던 공기를 들이마시면 없어졌던 그 모든 것들이 느껴진다. 

공기 속에 가득한 이 먼지들은 무엇인가? 한때  땅 위에 살았던 사람들과 동식물들의 풍화된 모습이 아닌가? 같은 시대에 살았다면 사랑했을지도 모를, 얘기하고 만지고, 그 눈동자만 생각해도 온몸에 열이 나고 떠렸을 어떤 아름다운 몸을 내가 지금 마시고 있지 않은가?

-김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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