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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명찬 Jul 01. 2024

잔소리의 이해(利害)

나이를 먹을 수록 말수를 줄여야하는 이유

아버지는 잔소리가 많은 사람이었다.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쓴소리를 했고 친척들은 그런 아버지를 의도적으로 멀리했다. 나는 아버지의 잔소리가 누구보다도 싫었지만 다른 이들이 아버지의 잔소리 때문에 아버지를 멀리하는 것도 싫었다. 묵묵하게 지켜봐 주는 어른이었으면 좋겠지만 아버지의 잔소리는 점점 심해졌다. 본인은 관심이고 애정이겠지만 듣는 사람들에겐 잔소리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버지의 잔소리가 너무 심해서인지 엄마는 잔소리가 없었다. 어떤 결정을 해도 엄마는 믿어 주고 지켜봐 주고 지원해 주었다. 요즘 들어 어떻게 엄마는 그렇게 한결같이 믿어줄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놀란다. 그 인내심과 믿음에 대해.


아버지가 뇌출혈로 재활병원에 입원한 이후 나에게 특별히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 없다. 아내가 가끔 사소한 잔소리를 하지만 그건 부부간에 충분히 주고받을 수 있는 의견이라 잔소리가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때때로 그 말이 길어져서 듣기 싫을 때도 있지만.


아내는 자신이 잔소리를 진짜 하지 않는 편이라고 말한다. 어느 정도는 인정한다. 아내는 나를 지켜봐 주는 편이다. 중요한 건 아버지의 잔소리에 이골이 나서인지 누군가 조금만 길게 얘기하는 듯해도 듣기 싫을 것을 떠나 때때로 화가 난다는 것이다. 적당한 관심은 고맙지만 만날 때마다 전하는 조언은 결국 반감을 들게 한다. 워낙 그런 마음이 강해서인지 나는 다른 사람들이 무관심이라고 느낄 정도로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각자의 판단대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지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말수를 줄여야 한다. 어른은 가만히 지켜봐 줘야 한다. 원하지도 않았는데 가르치려고 할 때 관계는 틀어지기 시작한다. 주변을 봐도 그렇다. 오랜만에 만나 미소와 따뜻한 포옹으로 반가움을 전하는 사람이 있고 멀찌감치 떨어져 사람을 위아래로 훑으며 지적질로 인사를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


누구와 더 자주 만나고 싶겠는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잘 생각해 보고 만약에 지적부터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고쳐야 한다. 지적을 자주 하는 사람들 주위에는 사람이 없기 마련이다.


자녀에게도 조심해야 할 잔소리를 관심이라는 말로 포장하여 즐겨하는 것은 심각한 결례이다. 예의가 없는 사람에겐 정확하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 당신의 조언은 필요 없다고.


조언에는 책임이 있어야 한다. 우선 자신을 객관화하여 먼저 돌아봐야 한다. 배가 불룩 나온 사람이 타인에게 운동 조언을 하거나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 술 좀 적당히 마시라고 조언을 하거나 딱 봐도 돈에 허덕이는 사람이 경제적인 조언을 한다면 듣는 사람이 어떻게 듣겠는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주변에는 이런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자기의 실패담을 타산지석 삼아서 실패하지 말라는 진중한 말도 아니고 그냥 자기가 알고 있는 편협한 지식들만 나열한다. 중요한 건 이런 사람들은 상대의 듣는 태도를 살피지 않고 오로지 자기의 말만 한다는 것이다. 상대가 에둘러 더 이상 듣기 싫다고 표정과 딴청으로 일관해도 계속 자기 말만 한다.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의지보다 자기가 얘기하고 싶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하고 얘기를 하면 쉽게 지치고 다음부터는 대화를 하는 것이 꺼려진다.


앞에서 말했듯이 잔소리는 하는 사람에겐 관심의 표현이겠으나 듣는 사람에겐 거절하고 싶은 관심이다.


-다 애정이 있으니까.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야!


이런 마음으로 조언을 하고 있다면 99.999% 잔소리일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가장 좋은 관심은 관심을 꺼주는 것이다.


사람을 믿고 있는 그대로 지켜봐 주는 것.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이 깊을수록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오지랖은 관계를 필히 망친다. 그러니 쓸데없는 잔소리보다는 나는 당신을 믿고 있다는 따뜻한 눈빛이, 어깨를 가볍게 토닥여주는 손짓이 더 중요하다.


나는 어떤 어른인가. 매일매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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