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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리쿠

-밤의 피크닉

by 조명찬




온다 리쿠의 ‘밤의 피크닉’을 읽었다. 밤을 새워 걸으며 고교생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일본의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를 소소하게 다룬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한동안 잊고 지냈던 ‘인생의 여행’이 떠올랐다.


나 역시 ‘산티아고 가는 길’ 여정의 마지막을 밤을 새워 마무리했었다. 벌써 13년이 지났지만 그날의 밤은, 그날의 새벽은, 그날의 아침은 여전히 생생하다. 스페인 북부를 800km를 걸으며 길 위에서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졌다. 맘이 맞아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지만 우리는 특별히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지 않았다.

스마트 폰이 없던 시절이었다. 따로 약속을 하지 않으면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운명에 우리를 맡겨두었다. 그때 그 길 위에선 누구나 그랬다.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다. 어떤 날은 반가움에 기뻤고 어떤 날은 헤어짐에 슬폈다. 그렇게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다가 결국 몇몇의 친구들이 모여 '산티아고 가는 길'의 마지막을 함께 걷게 된 것이다.


다 같이 모여 밤을 새우며 걷자는 독일친구의 의견에 우린 모두 멋진 계획이라고 흥분했다.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향하는 여정의 마지막 날, 함께 저녁을 준비해서 나눠 먹었고 저녁노을이 어스름하게 내릴 즈음 손을 모아 서로의 안전을 기원하며 출발했다.


처음에는 깔깔대며 얘기하기 바빴던 우리는 자정이 넘자 말이 없어지고 조금씩 지치기 시작했다. 중간중간에 억지로 게임을 해가며 졸음을 물리쳤지만 생각보다 밤을 새워 걷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떤 규칙도 정하진 않았지만 그때그때 컨디션이 괜찮은 누군가가 번갈아 가며 선두와 후미를 책임지며 서로를 보살폈다. 밤은 생각보다 길었고 어둠은 생각보다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나를 앞에서 뒤에서 끌어주는 친구들이 있었고 내가 앞에서 뒤에서 끌어야만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멀리 동이 떠오르기 시작하자 옆에서 밤새 함께 걸었던 친구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린 어떤 인연으로 이렇게 멀리 떨어진 이곳에 와서 함께 걷고 있을까? 이제 이 여정이 끝이 나면 각자의 나라로 돌아갈 텐데 살아가는 동안 이 친구들을 한 번이라도 더 만나게 될 수 있을까? 산티아고 대성당이 가까워질수록 여정이 끝나간다는 기쁨보다 길 위에서 만났던 친구들과 헤어진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순례길을 마치고 도대체 무엇을 깨달았냐?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


나는 아무것도 깨달은 것이 없다. 13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그때 그 길을 걸었다고 해서 인생이 특별히 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주 좋은 기억인 것은 확실하지만 그때의 하루하루가 지금 생각해도 모두 좋지는 않다.


다만 그 길은 언젠가는 끝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좋지 않은 기분을 오래 가지고 있으려 하지 않았다. 오늘이 나쁘면 내일은 좀 더 좋을 거라 생각하고 걸었다. 그랬더니 정말 그렇게 됐다. 나쁜 일이 계속 반복되지 않았다. 물론 좋은 일이 계속 일어나지도 않았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아주 당연하게도 그 일이 별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힘이 들 때, 나는 그때의 나를 떠올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길이 끝남을 잘 알고 있었던 그때의 나처럼 지금의 나는 인생도 언젠가 끝날 것임을 잘 알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아야 한다.


좋지 않았던 오늘도, 매우 좋았던 오늘도 결국은 하루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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