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오픈
개업을 준비하며 계획대로 진행된 것이 별로 없다. 변수의 연속이었고 그때그때 일어난 일들을 수습하기에도 정신이 없었다. 결국은 돈이 문제였는데 준비 금액이 적어도 너무 적었다. 결국 많은 걸 포기해야 했다. 인테리어도, 식기도 일단 현실과 타협하며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몇 가지의 확고한 의지는 변함이 없었다.
-개업식을 하지 않을 것
-가게 앞에 화환을 요란하게 두지 않을 것
-주변 사람들에게 개업 사실을 최대한 알리지 않을 것
아내와 나는 개업식을 요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개업을 한다고 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표면적이 이유가 있긴 했지만 가게의 분위기가 애초의 생각대로 나오지 않아 지인들에게 알리기가 민망했던 이유도 분명히 있었다. 각자 다들 바쁘게 사는데 작은 가게 하나 오픈한다고 해서 꼭 그날에 시간을 맞춰 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조금씩 천천히 그리고 그들의 시간이 여유가 있을 때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식 개업식이 아니더라도 지인들을 미리 초대해 음식 평가를 하는 시간도 갖지 않았다. 처음부터 아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평가받기보다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평가를 받고 싶다고 얘기는 했지만 사실 다 핑계였다. 나는 지인들이 걱정하는 마음으로 하는 여러 가지 조언을 좋은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낼 자신이 없었다.
자신감이 없으면 없을수록 쓸데없는 고집은 강해진다. 지인들이 개업식 왜 하지 않냐고 꼭 물어봐도 확실한 답을 주지 않았다.
개업이 다가올수록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커지고 있었다.
점심 영업은 큰 걱정이 되지 않았다. 엄마의 음식은 무엇보다 자신이 있었다.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분명히 자리를 채울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처음에는 내가 직접 서빙을 할 것이기 때문에 직원 교육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다. 조금 힘들더라도 가게가 자리 잡을 때까지는 직접 서빙을 하며 손님들과 교류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건 순전히 몸으로 때우면 되기 때문에 각오만 있으면 되는 일이었다.
문제는 술집으로 바뀌는 저녁 영업이었다. 엄마는 점심시간이 끝나면 다음날 점심 장사 준비를 해놓고 퇴근을 하고 나는 저녁 장사를 준비한다. 내가 쉴 수 있는 시간은 엄마가 점심 장사 마무리를 하는 오후 세시부터 다섯 시까지 두 시간이다. 다섯 시부터 여섯 시까지의 한 시간은 저녁 장사를 준비하고 여섯 시부터 저녁 영업을 시작한다.
하나의 식당에서 두 가지 콘셉트의 식당을 한다는 것!
그 무모한 콘셉트를 나는 고집하고 있었다. 식당 경영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말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서 메인은 저녁 영업인데 점심시간은 어차피 가게를 비워두는 시간이니 조금이라도 더 벌어서 임대료라도 보태게 되면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애초에 가게를 시작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도 엄마의 독립과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점심 장사에 무게를 두지 않고 저녁 장사에 더 무게를 두었다. 그러다 어느 정도 가게가 자리 잡고 엄마가 자신감을 되찾으면 조금 덜 벌더라도 편안하게 장사를 할 수 있는 곳에 엄마의 가게를 준비해 주는 것이 아내와 나의 계획이었다. 그때까지는 일단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점심 매출 20만 원 + 저녁 매출 50만 원만 나오면 엄마 월급 드리고 임대료 내더라도 회사를 다닐 때 월급 정도는 남겠다 싶었다.
숫자적으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됐다.
오픈 당시 가격인 8,000원짜리 점심메뉴를 25그릇 팔면 20만 원 매출인데, 25그릇은 4인 손님 3번, 2인 손님 6번, 1인 손님 1번만 받으면 된다. (오픈 당시) 총 16석의 좌석이었으니 2바퀴만 돌면 목표 달성이었다.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너무 쉬워 보였다.
저녁 매출은 더 단순하게 계산했다. 평균적으로 1 테이블에서 5만 원 정도는 먹으니 10 테이블만 받으면 어렵지 않게 목표 매출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매장에는 4인 테이블 2, 2인 테이블 3, 3인이 앉을 수 있는 바 테이블 1이 준비되어 있었으니 6시부터 12시까지 두 바퀴만 돌아도 충분히 목표 달성이 가능하겠다 싶었다.
오픈일이 다가왔다. 일찍 잠을 자야 했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눈만 멀뚱멀뚱 뜬 채로 다음날 있을 일들을 예상해 보았다. 진짜 새로운 시작이었다. 아내는 잠 못 이루는 나를 보며 잠 좀 자라고 얘기했지만 나는 자는 척을 하다가 이내 거실로 나왔다.
‘내가 식당을 하다니….’
소고기뭇국은 우리 가족의 소울푸드였다. 제사 탕국으로 끓이는 맑은 소고기뭇국을 엄마는 조금 특별한 레시피로 끓여냈는데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친척 모두가 엄마의 소고기뭇국을 사랑했다. 나의 사촌들은 제사 때나 명절 때 소고기뭇국을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집인 우리 집에 오는 걸 좋아했고 엄마는 싸 줄 것까지 감안해서 커다란 육수통에 넉넉히 끓여 준비해두곤 했다.
아내 역시 결혼을 하고 나서 처음으로 소고기뭇국을 먹고는 감동하며 ‘이건 무조건 많은 사람들이 먹어볼 수 있도록 해야 하는 맛’이라고 평할 정도로(그때만 해도 이렇게 가게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엄마의 소고기뭇국은 특별했다.
멸치국수, 비빔국수는 사실 메뉴로 하고 싶지 않았지만 엄마의 고집이었다. 엄마는 가게 오픈하기 전까지 ‘누가 소고기뭇국을 사 먹겠냐’고 의심하고 걱정했다. 그래서 절충한 메뉴가 국수였다. 엄마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국수를 메뉴에 넣자 엄마는 국수만 먹으면 심심하니까 김밥도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김밥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메뉴 구성에 맞지 않다고도 생각했지만 무엇보다 엄마의 일이 많아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메뉴 절충은 국수를 넣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반찬은 김치와 양배추절임을 준비했다. 적어도 3가지 정도는 반찬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엄마의 고집을 꺾고 단순한 반찬 2가지만 준비한 것은 손님들이 식당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소고기뭇국에 조금 더 집중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개업일.
습하고 더운 여름을 보낸 게 언제였는지 완전히 잊힌 완연한 가을이었다. 새벽에 여우비가 잠시 내려서 으슬으슬한 기운까지 감돌아 곧 겨울이 올 것만 같은 10월의 아침이었다.
계획대로 가게 입구에는 어떤 화환도 요란스레 놓여있지 않았다. 아무리 거절해도 그냥 지나가기 서운하다며 친구들이 몰래 보내준 화분이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매장 한 구석에 어색하게 놓여 있었다.
11시에 오픈 시간을 정해두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준비는 이미 10시에 다 마친 상태였다. 갑자기 가게 문이 열렸다. 10시 반이었다. 첫 손님이었다. 일본인이었는데 지금 식사를 할 수 있냐고 물어왔다. 아직 오픈 시간 전이지만 모든 준비는 돼있었다. 잠시 고민했지만 손님에게 오픈 시간을 알려주고 되돌려 보냈다.
첫날, 첫 손님을 제시간에 받고 싶었다.
그렇게 손님을 돌려보내고 나는 바로 후회했다. 뒤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며 다시 불러서 잡을지 말지 계속 고민했다.
'다 준비되어 있었는데 무슨 고집으로 첫 손님을 내쳤단 말인가? 저 사람이 다시 올 수 있을지 확실하지도 않은데 첫 손님부터 놓치고 말다니.'
자책을 하며 애꿎은 식탁만 계속 닦았다. 엄마는 준비가 다 됐는데 왜 손님을 돌려보내냐며 투덜거렸다.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뭔가 잘못되고 있었다. 창 밖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체크하며 시계를 계속 봤다. 11시까지 참 더디게 시간이 흘렀다.
정확히 11시가 되자 가게 문이 다시 열렸다.
-안뇬하세요?
조금 전에 돌려보냈던 그 손님이었다.
첫 손님이 드디어 가게로 들어왔다. 20분 전에 가게 오픈 여부를 물어보고 간 일본인이었다. 30대 초반의 남녀였는데 부부나 연인으로 보이진 않았다. 첫 손님이 일본인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게다가 오픈 시간이 맞지 않아 돌려보냈는데 다시 돌아오다니. 엄마를 슬쩍 보며 '거봐 돌아올 거랬지'라는 눈빛을 보냈다.
메뉴판을 건네주었다.
-소고기뭇국
-멸치국수
-비빔국수
신중할 것 같은 두 명의 일본인은 고민하지 않았다. 소고기뭇국을 가리켰다.
“이거 두 개.”
그렇게 나는 첫 주문을 어색한 한국어를 하는 일본인에게 받았다. 오픈 시간에 맞춰 갓 지은 밥을 소복하게 퍼 담고 반찬을 넉넉히 담았다. 준비해 둔 소고기뭇국을 뜨끈하게 덥혔다. 엄마와 난 그 어느 때보다 신중했다.
가을 아침과 어울리는 리사 오노 특유의 보사노바풍 음악이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과 함께 살랑살랑 춤추듯 흐르고 있었다. 음식을 가져다주고 손님은 내가 잘 보이지 않지만 나는 손님이 잘 보이는 곳에 서서 두 사람에게 주문을 걸었다.
'빨리 첫술을 떠라. 빨리 첫술을 떠라.'
설레는 눈으로 음식을 보던 남자가 먼저 첫술을 떴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맛을 음미했다. 남자의 얼굴에 은은하게 미소가 퍼졌다. 남자는 앞의 여자에게 성급한 손짓으로 빨리 먹어보라 권했다. 그동안 모든 준비가 비로소 완성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때 또 손님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키가 190cm는 족히 돼 보이는 백인 남자였다. 그 역시도 ‘소고기 뭇국’.
갑자기 모든 계획이 변경되기 시작했다.
'그래. 여긴 외국인들이 바글바글한 연남동이었어. 그들에게 소고기뭇국 맛집으로 알려진다면, 외국인들이 줄을 서는 한식 맛집이 될 수 있을 거야.'
또 손님이 들어왔다. 직장인으로 보이는 네 사람이었다. 앞으로 단골이 될 가능성이 높은 손님들이었다. 메뉴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덧붙였다. 자신감이 있었다.
-사장님. 여기 메인은 뭐예요?
-아. 네. 저희는 소고기뭇국이 메인입니다. 매일 아침 직접 끓이고 있어요.
-아 그래요? 음.... 멸치국수 둘, 비빔국수 둘 주세요.
얼굴이 화끈거리고 민망했다. 어차피 맘대로 시킬 거면서 메인은 왜 물어본 거지? 엄마와 다시 상의해서 국수를 아예 빼버리고 싶었다. 12시가 가까워 오자 거리에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가방도 없이 가볍게 나온 걸 보니 모두 근처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의 눈에 띄게 늘어나긴 했지만 가게에 들어오진 않았다. 모두 앞만 보고 걸어갈 뿐 가게에는 눈길조차 보내지 않았다.
처음으로 온 일본인 손님이 계산을 하려 카운터로 왔다. 카드를 건네받고 계산을 하는 짧은 순간, 손님에게 물었다.
-오이시 데스까?
되지도 않은 일본어였지만 첫 손님의 반응이 궁금했다. 남자가 대답했다.
-혼또니 오이시 데쓰.
여자도 남자의 대답에 동의한다며 눈을 크게 뜨고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나와 눈을 맞췄다.
-감사합니다. 저희 가게 첫 손님이셨습니다.
그들은 ‘감사합니다’까지만 알아들었을 테지만 나는 내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기억하고 싶었다. 일본 손님이 계산을 마치고 문을 나서자마자 백인 손님이 식사를 마치고 일어났다. 슬쩍 테이블을 보니 깨끗하게 모든 음식을 먹은 후였다.
-Did you enjoy your meal?
-Yes! very good. thanks. it’s a soul food.
-Thank you. my mom cooked it.
엄마를 내가 가리키자 백인이 엄마에게 커다란 손바닥을 활짝 펴고 미소를 지으며 흔들었다. 엄마도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다시 손님이 들어왔다. 4명이었다. 자리에 앉자 손님에게 설명을 하고 돌아섰다.
-저희는 소고기 뭇국이 메인입니다.
손님들은 메뉴판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앞뒤로 돌려보며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저기요? 여기 카레집 아니에요?
카레는 이전 가게에서 팔던 메뉴였다.
-아. 네. 카레집은 이전 가게고 이제 가게가 바뀌었습니다. 메뉴가 바뀌었고요.
손님들은 다시 자기들끼리 수군대다가 ‘끼익’ 의자가 끌리는 소리를 내며 동시에 일어났다.
-카레집인지 알고 와서요. 담에 올게요.
간판도 바뀌고 주인도 바뀌었는데 식당이 바뀌었다는 걸 못 알아본다는 게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식당 이름보다는 장소와 메뉴로 기억한다. 잘 못 알고 온 손님들이 나가고 식당에 마지막으로 있던 손님들이 일어섰다.
-맛있게 드셨어요?
-네. 뭐….
맛있게 먹었는지 맛없게 먹었는지 모를 대답을 남기고 손님이 떠났다. 손님이 나가는 걸 보고 테이블을 확인하니 국수가 조금씩 남아 있었다. 입맛에 맞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양이 너무 많았다. 가게 오픈 전, 준비할 때부터 엄마의 국수는 엄마가 예전에 일하던 국숫집에 맞춰져 있었다. 나는 그 점을 엄마와 상의하고 고치려 했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엄마의 1인분은 요즘 20대 여성의 2인분과 맞먹는 양이었다. 양이 많으면 좋아하던 예전과는 달리 양이 많으면 부담스러워한다는 걸 엄마는 깨닫지 못했다. 개선할 점이 확실하게 보이는 순간이었다.
거리에는 여전히 사람이 많았지만 가게에는 손님이 없었다. 테이블이 몇 개 되지 않아서 첫날부터 손님들이 돌아가면 어쩌지라고 걱정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손님이 빨리 끊겼다. 시간은 오후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엄마는 애먼 냉장고만 닦고 또 닦았다. 나도 가만히 있기가 답답해서 밖에 나가 간판을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깨달았다.
‘이래서 요란한 화환이 필요한 거구나. 새로 개업을 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 중에 그만한 것이 없구나. 그저 요란한 게 싫다는 이유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고집을 부린 것이 결국 이렇게 돌아오는구나.’
점심 마감을 하고 매출을 체크했다.
98,000원.
회사에 있는 아내에게서 카톡이 왔다.
-점심 어땠어? 괜찮았어?
-궁금해죽겠네.
-사람 많았어?
한참 후에 아내에게 답장을 했다.
-98,000원
-아직 사람들이 몰라서 그럴 듯
-곧 좋아지겠지 뭐
의연한 척했지만 나는 의심의 의심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