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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이나 해볼까

#계약을 했다

by 조명찬






우선 가게를 찾아야했다.


매물로 나온 가게 리스트를 동네 별로 정리한 후에 하루에 한 곳씩 직접 가보았다. 가게를 보러 가도 되는지, 가능하면 몇 시에 가야 하는지 미리 통화를 하고 방문했다. 괜찮다고 생각되는 곳은 낮에 가보고 볼 일을 본 후, 집에 가기 전에 한번 더 들러 근처에서 한참을 지켜보다가 갔다. 그래야 될 것 같았다. 집에 너무 일찍 들어가 버리면 할 일이 없는 것만 같아 마음이 불안했다.

나는 어두워져야 마음이 놓였다. 백수의 하루는 꽤나 길게 느껴졌으니까.


지나다니다가 맘에 드는 가게에 '임대문의' 현수막이 붙어 있어도 바로 전화를 해서 물어볼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뭘 물어봐야 하는지도 몰랐다. 여러 면에서 나는 워밍업이 필요했다.


일주일을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드디어 맘에 드는 가게를 발견했다. 합정동에 있는 가게였는데 저녁에 간단한 요리와 와인을 파는 곳이었다. 사진으로 본 가게 느낌이 맘에 들어 큰 고민 없이 세입자와 바로 시간 약속을 했다. 실제로 본 가게는 더 맘에 들었다. 그냥 그대로 영업을 시작해도 손색이 없는 곳이었다. 다만 점심 장사가 애매했다. 엄마와 함께하려면 점심 장사도 할 수 있는 곳이어야 했는데 합정에 있는 가게는 위치, 가구, 인테리어 모든 것이 저녁 장사에 맞춰져 있었다.


보증금 3000만 원, 권리금 3,000만 원


금액도 예산과 어느 정도 가까웠다. 점심장사만 포기한다면 당장이라도 계약금을 걸고 싶었다. 그곳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내가 상상이 됐다. 그날 저녁, 아내와 상의를 했는데 결국 가게를 포기하기로 했다. 가게의 인테리어와 여러 조건에 혹해 우리가 가게를 시작하는 가장 큰 이유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와 함께할 수 있는 공간!

무엇보다 그것이 가장 첫 번째 이유여야 했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가게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음이 예전 같지 않았다. 정말 하고 싶었던 가게를 포기하고 나니 의욕이 떨어졌다. 뭘 봐도 합정동의 가게와 비교되며 성에 차지 않았다. 일주일을 다시 방황했다. 친구들을 만나고 술을 마시고 늦게 일어났다. 그런 나를 옆에서 지켜보는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아내는 내가 금세 의욕을 찾을 거라 확신했다고 한다.


아내의 확신은 틀리지 않았다. 일주일을 놀고 보니 슬슬 몸이 근질거렸다. 다시 한번 맘을 다잡고 가게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냥 가게가 아니라 점심도 할 수 있는 곳이어야 했으니 그전보다 리스트업이 까다로웠다.

‘피터팬의 좋은 방 구하기’에 올라와 있는 한 곳을 발견했다. 대략적인 조건만 쓰여 있었고 궁금하면 직접 와 보라는 주인의 소개였는데 사진으로 얼핏 봐도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게다가 점심과 저녁 영업을 동시에 하고 있는 곳이었다.


가게를 찾아가기 위해 홍대입구 3번 출구에 내렸다. 평일인데도 이상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연남동!


몇 년 전에 약속이 있어 한번 와본 곳이었다. 연남동이 핫한 동네로 떠올랐다고는 하지만 그리 오고 싶은 동네는 아니었다. 연령대도 맞지 않는 것 같고.....

‘연트럴 파크’라고 불리는 경의선 숲길 곳곳에 사람들이 앉아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외국인도 많았다. 중국인들이 많은 명동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다양한 인종의 외국인을 짧은 골목에서 여럿 마주쳤는데 골목을 걸으면서 나는 이곳이 어쩌면 한국의 ‘카오산로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인파가 붐비는 곳을 꺼려하지만 곧 가게 운영을 할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그 정신없고 복잡한 풍경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갑자기 연남동이 흥미로워졌다.


미리 살펴본 가게가 보였다. 가게 근처에 한참을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폈다. 어떤 조건의 매물인지도 정확히 몰랐다. 여러 가지를 알아보기 전에 진정한 ‘첫인상’을 느끼고 싶었다.


지상에서 일곱 계단 올라가야 있는, 2층이라 하기엔 애매한 1.5층의 가게.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넓은 창이 인상적이었다. 작은 공간이어서 테이블이 옹기종기 있었지만 그 느낌이 불편하기보다는 아늑해 보였다. 안에 있는 주인이 나를 볼까 하는 맘에 곁눈으로 가게를 살피며 빠르게 지나쳤다. 제법 멀어질 때까지 걸어가 작은 골목에 들어서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피터팬 보고 전화 드렸습니다. 가게 내놓으셨죠? 대략적인 조건을 알고 싶어서요.


-아유. 지금 전화 주시면 어떡해요? 제가 지금은 좀 바쁜 시간이라. 내일 다시 한번 전화 주세요.


자기 할 말만 하고 갑자기 끊어버리는 전화에 나는 몹시 당황했다. 자신이 낸 광고를 보고 전화를 한 사람에게 이렇게 퉁명스럽게 할 일인가? 시간이 지날수록 기분이 안 좋았다. 5분 전까지만 해도 가게는 그리 바빠 보이지 않았는데 그 사이 손님이 많이 온 건가? 이해할 수 없었다. 다시 한번 되돌아가 진짜로 바쁜 건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손님을 가장해서라도 내부를 살펴보고 싶었다.

다시 가게로 발걸음을 돌렸다. 빠른 걸음으로 지나치며 슬쩍 가게 안을 봤는데 손님이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닌가! 그리 바빠 보이지도 않는데 굳이 내일로 통화를 미루는 이유가 뭐지? 밀당이라도 하려는 건가?

찝찝했다. 여기도 인연이 아닌 것 같았다.


다음날, 당연히 전화 걸기가 망설여졌다. 상대방은 별 관심 없는데 어떻게든 마음을 돌리려고 애쓰는 전화를 하는 기분이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점심시간을 피해 오후 3시쯤 전화를 걸었다.


-어제 전화했던 사람인데요. 가게 한번 볼 수 있을까 해서요.


-아. 네. 제가 아직 부동산에도 안 내놨는데 일찍도 연락 주셨네요.


-피터팬에 직접 올리신 거 아닌가요?


-네. 올리긴 올렸는데, 이렇게 빨리 전화 올진 몰랐어서….


이게 무슨 막말인가? 가게를 내놓은 건 맞는데 이렇게 빨리 전화 올지 몰랐다니….

당황스러웠다. 가게를 뺄 마음이 있는 건지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어쨌든 더 급한 사람이 먼저 움직이는 건 모든 일이 마찬가지다. 여러 가지로 비협조적인 것이 맘에 들지 않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곳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어쩌면 시작도 하기 전에 나는 밀당의 기술에 의해 튕겨졌고 그래서 더욱 안달이 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게 주인과 약속을 잡고 가게를 둘러봤다. 브레이크 타임에 잠시 둘러볼 시간을 줄 수 있다고 했는데 그것도 자기들이 장사 준비를 해야 해서 10분 이상은 어렵다는 조건이 있었다. 안에 들어오니 생각보다 더 작은 가게였다. 4인 테이블 둘, 2인 테이블 둘, 6인 테이블이 하나 놓여있었는데 손님들이 다닐 동선 외에는 모두 테이블로 가득 차 있었다. 주방을 둘러보려 하는데, 주인이 바싹 따라붙어 여기저기를 설명했다. 스트라이커를 단독 마크하는 수비수처럼 주인은 나를 잠시도 혼자 두지 않았다. 연락드리겠다는 말을 남기고 10분 만에 가게에서 나왔다. 가게가 작아서도 그렇지만 꼼꼼하게 둘러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빨리 가게에서 나오고 싶었다. 마음이 답답했다.


이곳도 결국 인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가게를 팔려는 의지가 주인에게서 보이지 않았다. 다시 잠시 미뤄두었던 가게 리스트를 다시 작성하기 시작했다. 연남동 말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 알아보는데 구의동에 있는 카레집이 눈에 띄었다. 주상복합 1층에 있는 가게였는데 층고도 높고 평수도 40평 정도로 널찍했다. 점심장사를 하기에 제격인 가게였다. 다만 저녁 장사가 좀 애매했다. 작은 곳에서 내공을 쌓고 조금씩 가게를 늘려갈 생각이었는데 평수가 큰 곳은 반드시 직원이 필요했다. 그래도 여러모로 괜찮은 조건이었기 때문에 가게는 한번 볼 필요가 있었다.


구의동 카레집을 보기 전에 마지막으로 연남동 가게에 한 번만 더 전화를 해보기로 했다. 한 번은 더 해봐야 더 이상 미련이 남지 않을 것 같았다.


-여보세요. 저 얼마 전 가게 보고 간 사람인데요.


-네. 알죠. 왜 이렇게 전화를 안 주시나 했어요. 사장님이 하시면 잘하실 것 같은데….


갑자기 적극적으로 변한 주인의 태도가 당황스러웠다. 아마 며칠 동안 조건이나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어쨌든 비협조적인 전보다는 훨씬 나았다. 이번엔 확실히 가게를 내놓을 의지가 보였다. 좀 더 실질적인 이야기가 오갔고 금액도 적당한 선에서 조율이 되었다. 계약금을 이체하고 나니 그제야 모든 것이 진짜라고 느껴졌다.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


약속한 일자에 전 세입자와 권리금 계약을 먼저 마치고, 건물주와 임대차 계약을 했다. 건물주는 월세 계산을 일주일 정도 미뤄주었다. 본격적인 영업을 하기 전에 가게를 손보는 시간 동안 임대료를 감면해 준 것인데 나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한 달을 달라고 건물주에게 읍소를 해보라고 했지만 처음부터 건물주랑 작은 일로 실랑이를 벌여봤자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


계약이 모두 끝난 후 가게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 있었다. 전 주인이 필요한 물품을 챙겨 가느라 가게는 이삿짐을 바로 뺀 집처럼 어수선했다. 이제 진짜 내 가게다.

계약만 끝나면 좋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갑자기 두려워졌다.

직업이 바뀌었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균형이 잘 맞는 시소처럼 두려움과 설렘이 번갈아가며 오르락내리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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