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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이나 해볼까

프롤로그 :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던 일

by 조명찬

음식을 만드는 게 재미있다.


먹는 걸 워낙 좋아하기도 하지만 음식을 만들어 남들과 함께 먹는 게 좋다.

장 보는 게 재미있다. 재료를 둘러보고 가격을 살펴보고 장바구니에 넣으며 어떤 음식을 만들지 상상하는 과정이 좋다. 할 수만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요리하는 것이 좋았다. 요리는 기꺼이 내 몫이었다. 별 것도 아닌 재료로 근사한 요리를 만들어 내면 사람들이 좋아했다. 칭찬이 들려왔다. 궁극적으로 나는 그게 좋았던 것 같다.


요리가 나에게 주는 기쁨은 크지만 취미는 말 그대로 취미일 뿐 직업으로 삼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식당을 하면서 자기의 삶을 얼마나 포기하며 살았는지를 바로 옆에서 목격하며 컸다.


그런 나의 속도 모르고 아내는 식당을 해보는 것을 권유했다. 번아웃이 와서 더 이상 회사일에 아무런 재미도 느끼지 못할 때였다. 아내는 식당을 오픈하는데 하나의 조건을 더 내걸었다. 여전히 식당 일을 하고 있는 엄마와 함께 해보라는 것!


-어머니 여전히 고생하시는데 다른 곳에서 일하시는 것보다 당신과 함께 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어? 계속하자는 게 아니야. 어머니가 편하게 장사하실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 드리자는 거지.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그때 우리는 맘 편하게 다른 일을 찾아보자.


사실 엄마는 아버지의 암수술 이후로 자신이 하던 식당을 접고 아버지의 컨디션 회복에 인생을 걸었다. 인생을 걸었다는 것은 시간과 돈 모두를 쏟아부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엄마의 헌신에 아버지는 건강을 되찾았고 아버지가 혼자 생활할 수 있게 되자 엄마는 다시 식당 일을 시작했다. 이번엔 자기의 식당이 아니었다. 엄마의 시간은 되돌려졌다. 다시 남의 식당 일을 시작한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식당을 다시 시작할 금전적인 여유가 없었다. 그 흔한 암 보험 하나 들어 놓지 않은 아버지의 치료에는 많은 돈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용기가 없었다. 무슨 일이던 저지르고 보던 엄마는 더 이상 없었다. 엄마도 나이가 들었다.


엄마와 함께 식당을 해보라는 아내의 권유에 나는 화가 먼저 났다. 그렇게 화가 날 일이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나도 잘 몰랐다. 며칠을 생각했다.


하등 쓸데없고 도움이라고는 1도 안 되는 자존심이 문제였다.


나는 그동안 내가 해왔던 일에 대해 아내가 존중을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지도 회사에서 기획팀장을 맡고 있었다. 여행자들이 여행을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도록 여행지도를 기획하는 일. 멋진 일이었다. 7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재미있게 일했다. 월급이 크게 오르지 않아도 회사를 관두지 못했던 건 단지 그 일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20대가 아니었다. 단지 일이 좋다는 이유로 회사를 다니기엔 여러 가지로 생각할 것이 많은 40대를 앞두고 있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여행지도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회사는 어려워지고 있었다. 언제 관두냐가 문제지 계속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많은 업무를 주관하며 일을 해왔기 때문에 당장 나가서 회사를 차려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가장 큰 고민은 이 하향산업을 당장 재미있다고 해서 계속해도 되는지였다. 게다가 프로젝트를 손바닥 뒤집듯 쉽게 뒤집는 공무원을 상대로 일을 하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한 번에 몰려들 때였다.


프로젝트를 담당자와 두 달 이상 일을 진행하다가 납품을 며칠 앞두고 있는데 윗선에서 콘셉트를 하루 만에 바꿔 그동안 해왔던 일을 다시 처음으로 되돌리고, 납품일은 정해져 있으니 단 며칠 만에 밤을 새워 결과물을 만들어 납품을 하고 결국 뻗어 버리는 일. 그런 과정을 몇 년 동안 반복하고 나니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 있었다.


아내는 나보다 현실적이다. 나의 일만 생각하는 나와 다르게 아내는 우리의 일을 계획했다. 식당을 오픈하자는 것도 그래서 나온 말이었다. 사실 내가 화가 난 것은 아내가 나의 일을 존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 어느 때보다 뜨끔하게 양심을 찔려서였다.


마흔이 다 되도록 나만 생각하고 살아왔다. 엄마가 어떤 일을 하던 내가 쉽게 바꿀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부모는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데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아내에게 너무 부끄러웠다. 너무 부끄러워서 불같이 화가 났다.


결심을 했다. 회사를 관둘 결심.

그리고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나를 내 던졌다.


-그래. 식당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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