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서

#겨울산을 쉽게 만나는 법-북한산 둘레길

by 조명찬

밤 사이 비가 조금씩 두껍게 내린다 싶더니 이내 눈이 돼버렸다. 날이 포근했다. 내리는 족족 눈이 녹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씩 조금씩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습설이다.


처서도 지나고 요 며칠 따뜻해서 이제 겨울이 끝난 것 같았다. 올 겨울의 눈은 정말 마지막일 것이다. 미끄러지지 않는 부츠를 신고, 기모가 있는 운동용 바지를 입고 집을 나섰다. 밖으로 나오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은 눈이 쌓여있었다. 한 발을 쓱 넣어보니 발목을 넘는 깊이다. 조금 더 확실하게 눈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아내에게 같이 나서자고 얘기하려다가 관두었다. 갑작스러운 제안에도 아내는 준비를 할 테지만 그 시간 동안 나는 빨리 가고 싶어 시계를 보며 조바심이 날 것이다. 그럴 바엔 그냥 혼자 나가는 게 낫다. 눈을 제대로 보려면 조금 멀리 가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신도림에서 지하철을 탔다. 무조건 산 근처로 가야 한다. 신설동역에서 우이동으로 가는 전철이 생겼다는 게 생각났다. 그곳으로 가면 눈을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 12시 전까지 도착하면 둘레길을 걷고 와도 시간이 괜찮을 것 같다. 지하철 어플로 소요시간을 검색해 보니 1시간. 11시 반이면 도착이다.


우이동으로 가자.


한 때 북한산을 출근하듯이 다닌 적이 있다. 오랫동안 애정을 가지고 했던 일이 잘 되지 않았고 말 그대로 나는 하루아침에 백수가 됐다. 삼십 대의 방황은 쉽게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제자리가 어디였는지, 있긴 했었는지도 잘 모르겠는 시절이었다. 집에 있으면 은퇴한 아버지와 한 공간에 있어야 하니 출근하듯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갈 곳이 없었다. 그래도 집에서 나와 어디든 가야 했다.

며칠 갈아입을 옷만 챙긴 채 지방에 가서 머물기도 하고 아침 일찍 나가 택배 상차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었다. 어떤 일을 하고 싶다는 의욕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다. 나는 나를 뭉개고 있었다.


그때 북한산을 만났다. 산에 가는 걸 원래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서른이 됐을 때는 한 달 반 동안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오기도 했었다. (매스컴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많이 다루지 않아 사람들이 잘 모르던 시절이었다.)


본격적으로 산을 다닌 건 처음이었다.

몇 주간, 백운대를 매일 올랐다. 늦은 아침에 나와 천천히 다녀오면 사람들이 퇴근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하루와 나의 하루가 같이 느껴져서 좋았다. 피곤하니 빨리 잠에 들었다. 하루가 짧아서 좋았다. 산을 다니며 나와 대화를 많이 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건지, 다시 그 일을 집요하게 파볼 건지, 아니면 다른 일을 해볼 건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지내다가 혼자 산을 다니니 생각이 많아졌고 마침내 마음이 편안해질 즈음 새로운 일을 찾아보자는 용기가 생겼다.

다시 시작한 일은 관광지도를 만드는 일이었다. 면접을 통해 들어간 곳은 북한산 입구에서 매일 같이 보던 관광안내지도를 만든 회사였다. 지인에게 소개받은 사람이 알고 보니 먼발치서 지켜봤던 사람인 것처럼 반갑고 운명처럼 느껴졌다. 다시 일에 의욕이 생겼고 지도를 만들면서 삼십 대를 보냈다.


결혼을 하고 영등포에 자리를 잡고 나니 산에 갈 일이 있으면 북한산보다는 관악산이나 인왕산을 자주 갔다. 아무래도 북한산까지는 거리가 좀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그리 무리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멀게만 느껴졌다. 그런 북한산을 실로 오랜만에 가게 됐다.


'북한산우이'역에 내렸다. 내가 한창 다닐 때는 지하철이 없었다. 우이동에서 올라가는 북한산은 은근히 교통이 까다로운 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지하철로 올 수 있다니 그동안 너무 관심이 없었던 게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주변에 큰 리조트가 생기긴 했지만 대부분이 그대로였다. 좋아했던 두부집도 제 자리에 있었다. 산을 오르기 전 그 두부집에서 막걸리 한잔만 마시려다가 산에 오르지 않고 눌러앉은 적이 몇 번이나 있다. 두부집 맞은편에 있는 '우이빌라맨숀'도 그대로였다. 북한산을 매일 같이 다닐 때는 그곳이 너무 근사해서 결혼하면 그 집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낡고 오래된 다세대 빌라지만 서울에서는 느끼기 힘든 운치가 있는 곳이었다. 눈이라도 내리면 대관령에 있는 작은 리조트에 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집이었다. 그 집에서는 북한산의 사계절을 온전히 느낄 수 있으리라.


조금 더 올라가니 하얀 눈이 내려앉은 북한산이 보였다. 크게 공기를 들이마셨다. 차가웠다. 상쾌했다. 왼쪽으로 난 골목으로 걸었다. 북한산둘레길 1코스가 그곳에서 시작된다. 골목으로 들어가니 눈이 더 많이 보인다. 수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었다. 이토록 눈에 둘러 쌓여 있던 게 얼마만인가! 뛴 것도 아닌데 숨이 조금씩 가빠졌다. 오늘 하루가 설레기 시작했다.


북한산 둘레길 1코스 안내판이 있는 관문으로 들어서니 눈밭이 시작됐다. 키가 큰 소나무에 눈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아무도 없길래 조금 크게 감탄을 했다.


우와. 우와. 우와.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관문같았다



나는 눈을 처음 본 사람 같았다.

설산이 처음도 아닌데 왜 이렇게 좋았을까? 얼마 전 아내와 얘기를 하다가 혼자 푸념을 한 적이 있다.


"에휴. 올해는 눈산도 한 번을 못 보고 지나가네. 가게는 정말 할 게 못된다."


가게를 하기 전까지 우리에게 겨울산은 한라산이었다. 매년 겨울에 한 번쯤은 제주로 가서 겨울의 한라산에 하루종일 안겨있었다. 하지만 가게를 시작하니 여행을 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시간의 여유도 경제적 여유도 우리에겐 없었다.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이런 내가 나도 웃겼다. 아내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집에 있던 아내가 눈에 둘러 쌓인 나를 보며 도대체 어디를 간 거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렇게 멋진 곳을 갈 거였으면 자기를 왜 데리고 가지 않았냐고 푸념했다. 나도 이럴 줄 몰랐다고 얘기했다. 진짜 그랬으니까. 전화를 끊고 다시 혼자 걸었다. 여전히 주변에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군데군데 나뭇가지가 부러져 있었다. 무거운 습설이 쌓이면 힘이 없는 나무가, 나뭇가지가 부러진다. 그래서 습설이 내린 산은 조심해야 한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무에 쌓여 있던 눈이 흩어지며 눈비가 내렸다. 눈비가 내리는 듯싶으면 얼른 고개를 젖혀 얼굴로 눈비를 맞다가 양손을 벌리고 빙그르 한 바퀴를 돌았다. 나는 약간 아니 많이 흥분해 있었다. 경치를 보느라 눈비를 맞느라 걸음이 무척 느렸다.


다시 도심으로 나와 솔밭공원을 지나 2코스로 들어갔다. 2코스는 시작하자마자 4.19 민주묘역이 한눈에 보였다. 나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혼자 묵념을 한다. 학교 다닐 때, 4.19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 교과과정에 자세하게 나와 있지 않았으니 말해주는 선생님들도 없었다. 이번 정부에 들어서 이승만의 공을 더 홍보하는 모양새다. 모든 정치인은 공과가 있다. 공과는 시민들에게 거짓 없이 알려야 하고 판단은 시민들의 몫이다. 언론에서 공과를 왜곡하는 것은 시민들을 무시해서다. 왜곡을 하면 쉽게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까. 어느 정부나 공과가 있지만 역사를 왜곡하는 정부는 문제가 많다.


북한산둘레길 2코스 시작점에선 4.19민주묘역을 한눈에 볼 수 있다


2코스의 끝에 거의 도착했을 즈음 작은 간판 하나가 눈에 띄었다. 하얀 간판에 '인수재'라고 쓰여 있었고 그 아래에는 빨간색 화살표가 샛길을 가리키고 있었다. 산 중턱에서 숯불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식당이름이 인수재였던 것 같다. 언젠가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만나게 되니 고민이 됐다. 혼자여서였다. 일행이 있었으면 고민하지 않고 신나게 올라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유명한 그 집은 혼자 오는 사람을 그리 반기지 않을 것만 같았다. 위치도 대충 알았으니 다음에 다시 오려다가 얼마나 올라가야 하는지 정도는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서 일단 올라가 보기로 했다. 길에서 많이 벗어나 있지 않을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식당은 꽤 깊은 곳에 숨어 있었다. 길만 따라가면 되긴 하지만 중간에 이 길이 맞나 생각할 정도로 올라야 했다. 그래봤자 10분 정도긴 하지만 처음 가는 사람들은 길을 의심할만하다.


식당이 보였다. '인수재'라고 한자로 쓰여 있는 가건물 옆으로 비닐하우스 같은 집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곳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식당 위치를 알았으니 돌아갈지,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혼자서 막걸리에 전이라도 하나 먹고 갈지 고민 됐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나는 혼자서 밥 먹을 수 있냐고 물어보는 게 참 어렵다. 그게 어려우면 대충 프랜차이즈 식당에 가서 한 끼를 때우면 될 일인데 그건 또 싫고. 이리저리 복잡하다.


안수재


고민을 하고 있는데 안에서 나오는 식당 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어서 오세요."


나를 반긴다. 용기가 생겼다.


"몇 분 이세요?"


"혼자입니다."


"아. 네. 고기 드실 거죠?"


고기? 혼자 고기? 그건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고민하고 있는 뇌와 다르게 당연한 걸 뭘 묻느냐는 투로 답을 했다.


"네. 네. “


식당 주인은 아마도 나를 혼자 고기를 먹으며 촬영을 하러 온 유튜버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여긴 그런 사람들이 꽤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메뉴를 보니 통갈매기와 양념갈매기가 있다. 어서 주문하라는 주인의 눈빛에 통갈매기 2인분과 소주 한 병을 시켰다. 1인분은 당연히 안될 것이고 먹다가 남기면 될 일이었다. 밖에서 고기를 혼자 구워 먹는 건 처음이었다. 다행히 손님은 한 테이블만 있었는데 중년의 남자 한 명과 여자 두 명이었다. 나보다 조금 일찍 둘레길을 먼저 걸은 것 같았다. 나를 힐끔힐끔 보는 게 느껴졌다. 애매한 정적이 흘렀다. 그들의 대화에도 나를 의식하는 것이 느껴졌다.


양념을 안 시킨 건 이유가 있었다. 양념 고기는 잘 타기 때문에 자주 뒤집어줘야 한다. 혼자 고기를 먹는데 고기에 너무 집중을 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이지만 나는 느긋하게 처음이 아닌 것처럼 고기를 구워 먹고 싶었다. 그러려면 양념이 묻지 않은 생고기가 좋다. 몇 번씩 부산스럽게 고기를 뒤집지 않아도 되니깐.


혼고기는 처음이었다

길게 나온 통갈매기를 두 점을 턱하니 올리고 소주를 한잔 따랐다. 반찬으로 묵은지가 나왔다. 소주 한잔을 천천히 목으로 넘기고 묵은지를 한점 먹었다. 아주 적절하다. 김치가 맛있어서 괜히 용기가 생겼다.


불이 좋아 고기가 금세 익었다. 두툼하게 자른 한 점을 먹으니 다른 건 신경 쓰지 않고 이 맛에 집중하고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맛있었다.

소주 반잔에 고기 한점. 나의 속도로 천천히 한 점씩 구웠다. 지금 이 시간에 여기에서 혼자 고기를 구워 먹고 있는 나를 생각하니 자꾸 웃음이 실실 새어 나왔다. 별일이다. 그래도 재미있다.


반 병쯤 마셨을 때, 아저씨 한 명이 들어왔다.


“고기 먹을 게요. 2인분이요. “


오. 동지가 생겼다. 여긴 그렇게 혼술, 혼고기를 하는 덴가 보다. 내가 괜히 혼자 의식했었나 보다 생각했는데 아저씨 뒤로 일행 두 명이 시간차를 두고 들어왔다. 그렇지. 그렇겠지. 여기를 누가 혼자…..

조금 지나니 그들도 나를 힐끗힐끗 쳐다봤다.

카메라라도 앞에 하나 켜둘걸. 그러면 차라리 유투버라고 생각할지도…..


꿋꿋하게 마지막 잔을 비우고 마지막 고기를 먹고 일어섰다. 남길 줄 알았던 고기 2인분은 단 한 점도 남지 않았다. 하긴 1인분에 150g이었다.

통갈매기는 소주 안주로 아주 근사했다.

멀쩡했지만 소주 한 병을 마셨으니 조금 더 조심스레 산을 내려왔다. 북한산둘레길을 다시 만나 조금 더 걸었다. 금세 2코스의 끝점에 도착해 다시 도심으로 걸어 나왔다. 올 겨울 마지막 눈을 실컷 봤다. 처음으로 고기도 혼자 구워 먹었다.


오후 3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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