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재완주 제주 올레길 4일 차
5코스
남원-쇠소깍 올레(≈13.4km)
3월
무척이나 흐린 날씨였다. 나갈까 말까 고민이 되긴 됐다. 그러면서도 텀블러에 커피를 타고 가방에 사탕을 챙기고 있었다. 5코스 시작점인 남원까지는 집에서부터 버스를 타고 갈만한 거리였다. 그러려면 정류장까지 20분 정도를 걸어 나가야 했다. 잠바를 껴입고 신발을 신었다. 고민은 망설임만 부추길 뿐, 문을 열고 일단 집을 나섰다.
길을 건너려는 순간 코 앞에서 버스를 놓치고 말았지만, 다행히 다음 버스가 그리 멀리 있진 않았다. 제주의 경우엔 배차 간격이 길어 한 번 놓치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이 노선은 그래도 자주 운행되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요행이었든지.
8시 40분에 버스를 탔다. 남원포구에 도착해 시작점 스탬프를 찍고 나니 9시 20분이었다. 단체로 걸으려는 건지, 올레 안내소 앞으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고 있었다.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들과 겹치기라도 하면 내내 소란에 시달릴지도 몰랐다. 오늘 난 혼자였다. 이왕이면 조용히 걷고 싶다.
우중충한 하늘 아래 잿빛 바다가 나직이 넘실대고 있었다. 바다 위 바위들은 한없이 검었다.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개비가 딸깍거리며 이리저리 흔들렸다. 코를 훌쩍였다. 길 위에는 아직 사람이 없다. 띄엄띄엄 차만 지나갔다. 낮은 파도 소리가 끊임없이 길 위를 넘나들었다.
해안도로를 삥 둘러 큰엉해안경승지로 들어선다. 기암절벽 위로 난 숲터널 산책로가 길게 길게 이어져 있다. 절벽 아래론 동굴도 여럿 있다고 했다. 여기선 산책객들을 더러 만났다. 화려하게 꾸민 관광객도, 운동을 즐기시는 동네 어르신도 계셨다. 어디선가 뽕짝 음악 소리가 들여왔다. 짹짹 새소리가 반주라도 맞추듯 울렸다. 먼 파도 소리는 베이스처럼 무거웠다. 싫든 좋든 발걸음이 길에 따라 박자를 밟는다.
호랑이 머리를 닮았다는 호두암과 어머니의 젖가슴을 닮았다는 유두암을 지났다. 숲터널의 끝, 나무 사이로 바다가 드러난 한반도 모양의 포토존이 꽤나 유명하다. 어떨 때는 사람들이 줄 서서 사진을 찍기도 하는데, 오늘은 날이 흐려서인지 아무도 없었다. 늘 그랬듯 나도 그냥 지나쳤다.
감춰졌던 바다가 확 드러났다. 펜션과 리조트를 지나 절벽 따라 길을 계속 걸었다. 바다 위로 뜬 섶섬이 계속해서 길의 방향을 안내해 주고 있었다. 저기만 가닿으면 바로 집이 나올 것만 같았다. 섶섬은 이미 내게 그런 존재가 되어 있었다. 보고 있으면 한없이 편안해진다. 마음이 심란할 때면 곧잘 찾아가는 이유다.
갑자기 배가 아파왔다. 이미 화장실을 몇 군데나 지나쳤는데 난감했다. 몇 번을 멈춰서 숨을 가다듬어야 했다. 해변의 바위들을 건너야 하는 길이라 더 힘겨웠다. 올레 지도엔 나와있지 않았지만, 다행히 신그물·태웃개 부근에 화장실이 있었다. 후련히 해결했다.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날씨는 그대로였다.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있었다.
국립수산과학원 앞에서 길은 바다를 잠시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선다. 길가는 소나무 가지치기 작업으로 한창 바쁜 와중이었다. 골목길 바닥엔 동백꽃이 한가득 떨어져 있었다. 삐욱삐욱 울어대는 새가, 울음처럼 서글펐다. 곧 위미마을의 동백나무 군락지를 지난다. 먼 과거 현맹춘 할머니가 동백숲을 스스로 일구어 땅에 작물을 자라게끔 했다는 이야기는 아주 유명해 자주 들었더랬다. 겨울의 끝물이라 그런지 골목도 조용했다. 여기에 5코스 중간 스탬프 간세가 위치해 있었다. 간세 위로 누군가 올려둔 동백꽃들이 앙증맞았다. 언제 나타났는지, 올레길을 걷는 너덧 명의 무리가 왁자지껄 뒤를 따라오시는 게 보였다. 뒤돌려 목례를 드리고 걸음을 다시 서둘렀다.
두꺼운 구름 사이로 햇빛의 기운이 슬쩍 비치기도 했다. 희미한 빛에도 반짝이는 윤슬이 남았다. 오른쪽 리조트에서는 포클레인 공사 소리가 연신 시끄럽게 들려왔다. 뜬금없이 나온 바닷가 게이트볼장도 있었다. 세천 포구로 향하다 짧은 다리를 건너 마저 해안길을 따라 걸었다. 이리저리 골목을 거쳐 밖으로 나오자 거대한 위미항이 드러났다. 나름 번화한 곳. 속도 비웠겠다, 이쯤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11시 반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파괴됐던 기암괴석을 시의 지원을 받아 마을 사람들이 다시 세웠다던 조배머들코지. 위미항을 등지고 이 조배머들코지 주변을 산책하듯 빙그르 돌아 나온 골목에서 어느 국밥집을 만났다. 유명한 곳인 듯했다. 이른 시간임에도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래, 점심은 여기로 정했다.(위미국밥, 링크 클릭) 혼자라 눈치가 좀 보였지만 직원분들은 아랑곳없이 상냥했다. 든든히 식사를 해결하고 나오니 남원포구에서 봤던 단체분들이 밖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계셨다. 15명은 족히 넘어 보였다. 길이 겹치지 않아서 휴- 다행이었다. 12시 5분, 멈췄던 길을 다시 이어간다. 위미항 주변을 크게 돌아 다시 바다 곁으로 향했다.
300살을 훌쩍 넘긴 보호수 소나무 아래를 지나고, 건축학개론에 나온 서연의 집도 지났다. 소주 원수로도 활용되기도 했다는 넙빌레는 이미 거의 말랐지만, 바다는 여태 끊임이 없었다. 마을의 주민이신 건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시며 곳곳의 쓰레기를 모조리 다 주우시는 분이 계셔 놀라웠다. 골목골목을 걷는 내내 계속 마주쳤지만 인사는 따로 드리지 못해 아쉬웠다. (그러기엔 뭔가 좀 오지랖 같았다.)
'하', '허' 차량을 이쯤부터 자주 마주쳤다. 이 좁고 짧은 해안 도로를 드라이브 삼아 돌아다니는 듯했다. 곧 공천포였다. 10년 전 제주 올레길을 걸을 때 가장 오랫동안 묵었던 곳이었다. 여기서 매번 그림도 그리고 편지나 글도 쓰고 그랬는데, 여즉 카페 숑이 그대로 있어 감탄했다.(카페 숑, 링크 클릭) 공천포 물회도 아주 좋아라 하는데 오늘은 이미 식사를 했으니 참을 수 밖에.('물회 맛집' 공천포 식당, 링크 클릭) 그때 묵은 게스트하우스는 문을 닫은 지 오래였다. 중간 스탬프를 놓치고 왔다고 하니 친절히 차로 데려다주시기도 하셨던 주인장 형님이셨다. 지금은 어디선가 잘 지내고 계시려나. 그때 아마 10일 정도를 여기에 머물렀었다. 많은 게 바뀌었지만 그럼에도 많은 것들이 여전했다.
그리 두텁게 입고 나오지도 않았는데 더워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바람에 훌쩍이던 콧물도 어느덧 사그라들었다. 망장포를 지나 쇠소깍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숲길과 아스팔트, 돌담길과 골목을 번갈아 걸었다. 5코스의 장소들은 군데군데 추억이 묻어있는 곳들이 많았다. 감상에 젖듯 걸음이 점차 느려졌다. 단체 스쿠터 무리가 왁, 소란스레 곁을 지나간다. 그들이 남기고 간 적막이 좀 전보다 한층 더 짙어졌다. 드러날 듯 말 듯 했던 햇빛은 완전히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돌밭 저 끝으로 걸린 바다가 점점이 일렁대고 있었다.
쇠소깍 다리를 건너자 바로 종점 스탬프 간세였다. 1시 30분, 5코스 길이 끝났다. 이어지는 6코스 길을 마저 좀 더 걸었다. 아내가 마침 시간이 된다고 이쪽으로 데리러 와준다고 했다. 쇠소깍에는 어김없이 카약과 테우를 즐기는 관광객들이 있었다. 깊고 푸른 물길이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 긴 코스가 아니었는데도 다리가 좀 아팠다.
하이. 테라로사 앞에 차를 세워둔 아내와 만났다. 우린 테라로사 커피를 좋아하지만 이번엔 사 먹지 않았다.(테라로사 서귀포점, 링크 클릭) 덕분에 집으로 편하게 돌아간다. 돌아오는 길, 오늘 하루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의 시간과 기억이 거기 녹아 있었다. 각자의 삶과 감내 또한 동시에 있었다. 시간의 경과나 그 지점과는 관계없이, 길을 걷고 나면 그걸로 하루가 오롯이 끝이 나곤 한다. 오늘치의 삶을 다했다는 느낌랄까. 뒤이어 따라올 허무감을 애써 모른 척하는 게 쉽지가 않을 뿐이다. 날씨가 맑았다면 덜했을지도 모를 피로감이었다. 하품이 쩍, 입을 타고 튀어 나왔다. 하하하. 하. 하하. 눈이 딱 마주친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막 웃어댔다.
2025.03.05.
걷기, 재완주 제주 올레길
4일 차(누적거리 55.4km)
오늘 하루 26,619보(19.4km)
*제주 올레길 5코스 공식 소개는 여기 클릭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라이킷을 눌러주세요. 작가나 브런치북을 구독하시면 새 글 소식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비수기 5편, 재완주 제주 올레길」은 월/수 오전 8시마다 업로드됩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