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순례길-프랑스길을 마치며
느지막이 일어났다. 라면도 끓여 먹고 커피도 내려마셨다. 느슨한 오전이 마음에 든다. 바람이 상쾌하다. 창문을 여니 오늘도 날씨가 좋다.
밤사이, 잘 자다 종아리에 쥐가 났다. 데굴데굴 구르다 쿵 침대에서 떨어지기까지 했다. 긴 걷기가 모두 끝났음을 몸도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힘들었다고 투정이라도 부리는 걸지도 몰랐다. 종아리에 밴 아릿한 느낌은 낮이 돼도 좀처럼 사라지지가 않았다.
잠시지만 엉기적엉기적 골목을 돌아다녔다. 이미 사전 조사를 마친 기념품 플렉스도 순차적으로 마쳤다. 잊지 않고 NuMaru 한식당의 만찬도 곁들였다. 성당과 광장에 인사를 고했고, 하늘과 땅에 그 기운을 전했다. 얼른 숙소로 돌아와 말끔히 샤워를 하고 오늘 잠시 입은 옷도 마저 빨았다. 남은 음료를 털어 깔리무초를 타먹었다. 이번엔 얼음까지 얼려두어 더 완벽했다. 맞아, ‘깔리’와 ‘무초’는 진작에 두 분 다 한국으로 돌아가셨다. 그러니 이번엔 혼자서 ‘살롯’ 건배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쨍그랑, 얼음이 녹으며 소리를 냈다. 막 식탁에 발을 뻗고 앉은 참이었다. 이제 앞으로의 일정을 결정해야 했다. 왠지 큰 맘을 먹듯 핸드폰을 열었다. 고민에 더해 이런저런 정보탐색을 하기 시작했다.
아직 한 달 반쯤 남은 여행이었다. 마지막 2주를 베트남에서 보내기로 한 것 말고는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한국에 있는 아내의 휴가에 맞춰 그때 호치민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출발지를 정하지 못해 여태 호치민행 비행기를 끊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고민이 이었다. 아무래도 언제 또 유럽에 오겠어, 란 생각이 가장 짙었다. 아일랜드와 영국 일정이 꽤 길었기에 쉥겐 조약 잔여일은 아직 충분하게 남아 있었다. '이왕이면' 꽉꽉 채워서 유럽에 더 머무는 쪽으로, 그렇게 마음을 기울였다.
그렇다면 유럽의 마지막은 꿈에 그리던 바르셀로나였으면 했다. 그러다 덜컥 호치민으로 가는 바르셀로나발 비행기를 먼저 결제해 버리고 말았다. 그 순간부터 나머지 일정은 일사천리로 정리가 됐다. 그건 그간 두리뭉실 머릿속으로 떠돌기만 했던 생각들이 구체화되는 과정이었다. 조금만 더 걸어보자 결심을 한 건 바로 그때였다.
사실 포르투갈순례길이 걷는 동안 내내 마음에 밟혔었다. 포르투에서부터 250km 정도 된다고 했던가. 걸어보자. 미쳤지, 이걸 또. 하지만 마음을 정하고 나니 차라리 평온했다. 내일 아침 포르투로 떠나는 버스부터 예약했다. 포르투에서의 4박 5일간 여행, 바로 이어질 포르투갈순례길은 넉넉잡아 2주, 걸어서 되돌아온 산티아고에서 하루 이틀을 보낸 뒤 마드리드를 거쳐 바르셀로나까지다. 차라락 일정이 정돈된 건 정말인지 순식간이었다. 걸으며 나머지 세부 사항은 상황에 따라 조정하면 될 듯했다. 괜히 기념품을 잔뜩 사서 배낭만 더 무거워져버리고 말았다. 뭐, 괜찮을 거다. 어차피 나중의 내가 어떻게든 감당해 낼(감당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런 결정을 내린 스스로에 헛웃음이 나긴 했다. 그러면서도 이상할 정도로 설렘이 일었다. 벌써부터 재밌다, 새로이 크리덴셜에 도장(sello)들을 채워나갈 수 있다니! 분명 힘들다 투덜댈 테지만, 기어코 도착한 광장 앞에선 또다시 환히 웃을 게 뻔하다. 눈앞에 선했다. 다만 그 배경이 될 길 위의 장면들이 무척이나 궁금할 따름이었다.
떠날 채비를 마쳤다. 일찍이 잠자리에 들었다.
자다가 또 허벅지 뒤쪽에 쥐가 났다. 이리저리 뒹굴었다. 힘 빼기, 힘 빼기. 자다 깨선 한참을 웃었다. 다리를 움켜쥔 채 몸이 들썩였다. 크크큭 크큭큭. 더 걸어도 괜찮은 거겠지. 포르투에서의 며칠간 잘 휴식하며 다리의 상태를 세심하게 살펴보긴 해야 할 것 같다.
웃다 말고 스르륵 도로 잠에 들었다. 어두운 밤은 따뜻하고 또 푹신했다. 꿈은 없었다. 쥐만 빼곤 잘도 잤다. 역시 좋은 방이 잠에도 좋다. 아무래도 그랬다. 호강이 괜히 호강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도 이제 잠시 안녕이다. 어둠이 물러난 창밖엔 화창하도록 푸른 하늘로 가득했다. 아침도 챙겨 먹고 모닝샤워까지, 준비는 개운하게 마쳤다. 흐음. 다 꾸린 배낭을 멨다. 그리곤 문 앞에 섰다.
무리일지 아닐지. 다시 곧 걸음의 세계로 떠난다.
문을 열고, 문을 닫는다.
끼익— 탁.
*힘드셨죠? 그동안 산티아고순례길 프랑스길의 여정을 고되이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수기 3편, 산티아고순례길-프랑스길b」는 이번 주 금요일 오전 8시에 마지막 화(부록) 연재를 끝으로 마무리됩니다.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구독과 라이킷으로 따뜻한 발자국을 남겨 주세요.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