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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여름 Sep 04. 2023

가을 편지

계절은 배움처럼 신선하다.


    

6시 30분 알람이 울리면   

  

“헤이 빅스비~<You Raise Me Up> 틀어줘”     


하루가 시작된다. 어제도 그 노래로 아침을 시작했고 오늘 역시도 같은 노래로 하루의 창을 열었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어제와 다를 그것으로 생각한다. 더 괜찮은 내가 되기를 희망하면서 시작되는 아침이다. 지나간 어제의 나와 앞으로의 나는 같은 사람일까? 다른 사람일까? 밑도 끝도 없는 주제를 가지고 줄기차게 싸웠던 친구가 갑자기 생각이 난다. 우습게도….   

  

 지나간 나는 지금의 나와 다르다는 전제하에서 어제의 나에게 되묻는다. 지나온 나에게 지금의 내가 배울 것이 있다고 한다면? 내가 내세울 만한 게 무엇일까…. 잘한 게 뭐지? 되새겨 생각해 보니 딱히 없다. 닥친 하루를 성실하게 살았다? 정도였다. 나는 닥친 일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하는 편이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일에 대한 반대에 많이 부딪혀봤다. 그래봤자 내하고 싶은 대로 했다. 엄청난 계기가 없는 한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시작되는 가을에 나는 어반스케치를 배우려고 한다. 삽화작가인 A에게 부탁하니 스터디를 모집한다고 했다. 두 달을 기다렸으나 바쁜 일이 많은지 개설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내 갈 길을 내가 찾기로 했다. ‘책방 다독다독’ 어반스케치 완전 기초반 모집이라는 광고를 봤다. 어릴 적 내 꿈은 화가였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미술 선생님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꾸었던 꿈. 현실과 괴리가 너무 커서 감히 꿔보지도 못했던 그림의 꿈을 이제 한 번 배워보려 한다. 자잘하게 꾸었던 꿈은 조각 난 끄나풀로 남아서 재킷 한 가닥을 잡고 따라다닌다. 미련을 냅다 던져 내지 못하고 나 역시 옷자락에 매달려 따라다니는 그 꿈을 달고 다닌다. 화폭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꿈은 없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그림으로 표현해 보고 싶다. 조그만 스케치북에 스케치해 보고 싶은 소박한 꿈 말이다.     


 그림을 배워서 책을 쓸 때 재밌는 삽화를 그려보고 싶다. 김수정 작가의 ‘소금자 블루스’에 나오는 ‘소금자’처럼 개성 진 캐릭터도 그리고 노트북과 커피잔의 감성 사진을 그림으로 표현해 보고도 싶다. 막연하게 꾸었던 작가의 꿈도 정면 돌파를 해보니 되는 부분이 있다. 그러면 나도 어쩌면 나만의 ‘소금자’를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오래간만에 뛰는 가슴을 경험한다. 물론 심장은 느끼거나 감동하지 않는다. 오로지 뛸 뿐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신나는 일을 경험하고 느낄 때 우리는 심장을 빌려 표현한다. 왜냐하면 심장은 오로지 뛰는 일만 하지만, 그 일을 멈추면 우리는 죽는다. 어쩌면 침묵하지만 제일 격하게 자신을 대변해 주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기쁨에 대하여 살게 해 주니까…. 심장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무척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마음을 심장의 쿵쾅거림을 들어 표현하고 싶은 것이다.     


“혹시 완전 기초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여기 오시는 분들 다 그런데요?”     


벌써 이 가을이 아주 마음에 든다. 제 작년 겨울 아이패드를 사서 드로잉을 배우러 다녔다. 얼어 꾸덕꾸덕해진 손을 녹이면서 수업받았다. 중학생이랑 어른 셋이랑…. 사방난로를 켜고 우리는 유자차를 나눠마셨다. 물론 지나칠 인연이었지만 즐거웠던 배움이었다. 

    

 배운다는 말과 시작되는 계절은 진짜 궁합이 잘 맞다. 시몽과 구르몽처럼, 니나리찌와 기라로슈처럼… 그 겨울엔 아이패드 제도. 작년 겨울은 글쓰기였고 올해 가을은 어반스케치인일 것이다. 그때 또 어느 해 가을엔 발레를 시작했었다. 그리고 또 어느 겨울엔 필라테스를 했던 것 같고…. 계절은 배움처럼 신선하며 시작되는 배움은 바뀌는 계절처럼 설레게 한다.     


 철 지난 배움일까? 그래도 괜찮다. 배움에 대해 일으킴으로 또 조금 나은 나를 위해 한 발 내디뎌 보리라. 내일 아침은     

“헤이 빅스비~김민기의 가을 편지 틀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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