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여름 Aug 29. 2023

 일인자입니다.

- 나는 지구에서 우리 아버지를 제일 닮은 사람입니다 -

 바람이 좋은 날에 노트북이랑 스마트폰 하나 들고 분위기 좋은 커피집에 앉아서 글을 쓰자. 좋아하는 커피 한 잔 받아놓고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자. 글을 쓰다 더러는 음악도 듣자. 이것이야말로 소소하고 명확한 나의 행복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쩌면 나는 성공을 가지고 태어난지도 모르겠다. 행복이란 게 결국엔  즐겁게 하는 무엇이 존재한다는 건데  열렬하게 노는 걸 즐기고  수다스럽게 명랑한 나는 행복하다. 그걸 토대로 삼아 어려운 문제가 닥쳐도 뚫고 나간다. 행복과 성공이라는 게 떨어져 있지 않을뿐더러 성공의 표준화된 견본도 없지 않은가! 언제나 말하듯 일상(日常)이 성사(盛事)다. 하루하루가 성대한 일인 것처럼 오늘의 성공은 맛있는 차를 마시고 좋은 사람을 만나 교제하는 일로 행복을 찾는 일이다.   




  

 숙부의 소식을 일현에게 들었다. 수화기 저 너머에서 나지막하게 들렸다.


"누나, 아버지 돌아가셨어"


 목소리에서 눈물이 흐른다. 마음이 저 아래쪽

어디에서 아픔으로 차 오른다. 많이 고생했을

사촌동생, 박복했던 나의 숙부 거기에 사촌여동생

의 평탄치 않았던 삶...

숙부는 불행했다. 적어도 내 기준엔 그랬다.

젊은 시절 아내의 가출로 4남매를 혼자 키웠다.

가난하였으며 외로웠다.


 인천으로 가야 했다. 공항에서 엄마를 모시고 셋째가 도착해 있었다. 노란 손수건에 정갈하게 싸 온 계란 몇 알 그리고 맛소금... 한 알 한 알 휴지로 싸서 노란 보자기에 담았다. 역시 엄마답다. 예전엔 삶은 계란이 불편하고 창피했다. '가는 길에 사 먹으면 되지. 굳이 삶아서 구질구질하게 들고 다녀야 하나' 생각했다.  창피했던 그 삶은 계란을 보며 요즘은 고맙고 미안하다.


"엄마. 정말 맛있다... 정말 끝내준다. 엄마 센스는 진짜 국보급이다"


동생이 한바탕 너스레를 떨고, 나는 옆에서 춤을 추었다. 훗날 오늘이 그리워 눈물처럼 비가 내리겠지.


김포공항에서 내려, 택시로 이동하니 멀지 않아 인천이었다. 마음먹으면 갈 수 있는 이곳에 말로만 '찾아뵙겠다' 하고 이제야 간다. 숙부가 얼마 전 우스갯소리로 


"우리는 누군가가 죽어야 만나는구나"


 말처럼 되어버린 현실이 슬픈 건지, 뭔지도 모른 채 나는 영정사진을 보자마자 곡소리를 내며 울었다.


 추슬러지지 않는 감정과 흐르는 눈물은 어떻게 할 수 없고 얼굴은 엉망이 되었다. 내 국민학교 입학을 숙부와 했다. 엄마는 출산하고 얼마 되지 않았고, 숙부는 백수였는지  늘 나랑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문방구에도 가고, 학교도 더러는 함께 갔으며 간혹 어느 집 담벼락에 앉아서  수다도 떨었다. 열몇 살 차이 나는 말 그대로 친한 삼촌과 조카였다. 결혼하고서도 숙부는 우리랑 함께 살았다. 숙모는 엄마의 시집살이가 심해서였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 독립하고 잘 사는가 했는데 아이 넷을 낳고 도망가 버렸다.


   바람이 나서 갔다는 얘기도 있었고 그 상대가 아는 사람이라는 둥 별별 흉흉한 소문이 무성했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다시 돌아왔다는 얘기도 간간이 들렸다. 모든 걸 애써 외면하면서 부모님은 그들과 연락을 끊고 지냈다. 한 번씩 장례식이나 결혼식에서나 볼뿐.     


 여하간 숙부는 내게 애잔하고 그립고 많은 추억을 공유한 사이다. 이제 만나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면서 추억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졌다. 아버지를 많이 닮은 숙부마저 세상을 떠나서 이제 지구상에 아버지를 제일 닮은 사람은 내가 되어 버렸다. 조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다짐했다. 매일매일 살아 있을 때 행복하자. 그리고 즐기자.  

   

 '사사롭고 소소하게 확실하게 행복하자'

 


작가의 이전글 아줌마의 유학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