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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이 Dec 23. 2024

시든 오이 무침

시들어도 반찬

삐걱삐걱, 우두득우두득

이게 내 몸에서 나오는 소리라니. 순간 로봇이 된 줄 알았다. 앉았다 일어설 때마다 무릎에서 관절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흡사 태엽 감는 로봇 장난감이 뒤뚱거릴 때 날 법한 소리다. 

오늘도 새벽같이 일어나 시작하는 하루. 겨울이라 그런지, 밤새 이불속에서 웅크리고 잔 탓인지 몸이 뻣뻣하다. 잠도 깰 겸 몸도 풀어줄 겸 국민체조 흉내를 내다가 tv에서 본 스쾃 자세를 취했더니 일어난 일이다.      


왜 언제까지 건강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운동신경 무에 튼튼하다기보다는 골골하는 편인데도 근거 없이 건강에 자신을 갖고 살았다. 최소한 고혈압이나 당뇨도 없고 다른 지병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그 흔한 심리 상담을 받은 적도 우울증 약을 먹어본 적도 없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간 제대로 된 종합검진을 받아본 적 없고. 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빈 속에 찬 커피를 때려 넣었다가 저녁때쯤 되면 소화제로 쓰린 속을 달랬다. 무엇보다 최근 기력이 달리고 확실히 전보다 피로가 심해졌다. 


아무리 몸에 나쁜 것을 하지 않아도, 십수 년 이상 잡곡밥만 먹고 체중 관리를 해도 점점 건강은 내리막길을 타고 있다. 원인은 모두 나이를 먹고 있어서, 말하자면 늙어가는 것 자체가 이유고 병이라는 거다.      

이런저런 착잡함이 밀려오는 겨울 아침, 어쨌든 아침 반찬으로 뭔가를 해내야 하는 상황이니 냉장고 문을 연다. 며칠 전부터 야채칸에 처박혀 있는 오이를 오늘은 꼭 해 먹으리라 어젯밤 다짐했었다. 


시장 채소가게에 마지막으로 들른 것이 언제였던가. 꽤 날짜가 흐른 것 같은데. 겨울이라 그런지 구입할 때부터 여름의 청량한 오이와는 거리가 먼, 푸르뎅뎅한 상태였던 것도 같다.

아니나 다를까. 냉장고 안에서 얼어버린 오이는 청개구리 등짝처럼 우둘투둘하고 징그럽다. 삼분의 일쯤 동상 걸린 오이다. 하지만 겨울에는 오이가 비싸니 버릴 순 없고 어떻게든 반찬으로 활용해야 한다. 


오이를 대충 통으로 썰고 양파도 조금 썰어 곁들인다. 볼에 넣고 간 마늘 조금, 후추, 소금, 설탕 대충 넣고 마지막으로 고춧가루를 위에 솔솔 뿌려준다. 원래는 고추장까지 넣어 맵고 진하게 버무릴까 했지만 매운 양념엔 재채기를 하는 아버지를 배려해 참는다. 


시들시들한 오이는 색깔도 맛도 그럭저럭. 그럴수록 강렬한 빨간 맛으로 단점을 가려야 하는데 이도 저도 아닌 오이 무침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모양이 어떻든, 맛이 어떻든 오이 무침은 아침 식탁에 새로 만든 반찬으로 한 자리 차지할 것이다. 어찌하든 전날 먹은 반찬으로만 밥상을 차릴 순 없기 때문에. 게다가 채소 반찬은 우리 집 식탁에서 빠지면 안 되는 필수템이니까. 


뒤늦게 일어난 엄마도 그 허접한 오이 무침을 웬일로 반색한다.

“오이 무침 한 가지 했네. 안 그래도 시들어가서 신경 쓰이더니.”

그래, 시든 오이도 도움이 된다. 이리저리 애쓰고 노력하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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