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초등 아들이 떠난 동상이몽 자전거 여행 - 국토 종주 편
2021년 10월. 아침이 밝았다.
아이가 방에서 화상수업을 듣는 동안 나는 빠진 게 없나 가방을 확인 후 자전거길 지도를 펼쳤다. 나는 국토 종주 자전거길을 따라 인천에서 부산까지 가는 것, 환이는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놀이동산 ‘대구 이월드’와 ‘경주월드’를 가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표였다. ‘국토 종주 길에서 벗어나 놀이동산을 갈 때 위험하지 않게 자전거 타기 편한 길이 있을까?’ 네이버 지도와 자전거길 지도를 비교해 찾아볼수록 머리가 복잡해졌다. ‘모르겠네. 가서 부딪혀 보자!’라는 생각으로 지도를 덮었다.
“엄마, 수업 끝. Go, Go~.”
“아들, 이번에도 잘 부탁해! 할 수 있는 만큼만 다치지 말고 가자.”
집에서 인천대공원과 송내역을 통과해 국토 종주 자전거길 합류 지점인 한강공원까지는 다녀본 길이라 이정표나 지도 없이도 쉽게 갈 수 있었다. 송내역을 지나 굴포천 자전거길 합류 지점까지 10개의 신호등을 지나야 하는 마의 신호 구간이 있지만, 여러 번 다녀보니 그마저도 적응됐다.
처음엔 ‘도대체 신호등이 몇 개나 있는 거야? 신호 체계는 또 왜 이래? 앞으로 얼마나 신호가 남아 있는 거야?’ 이 길을 가는 내내 짜증이 났었다.
두 번째엔 ‘아~, 여기 신호 체계는 사람이 걷는 속도에 맞춰있구나!’라는 걸 알게 됐고, 보행 속도에 맞춰 자전거를 타니 신호등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좀 줄어들었다.
그다음부터는 ‘이제 7개밖에 안 남았네!’ 신호등 몇 개만 더 지나면 자전거 전용도로를 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짜증이 나지 않았다.
가 본 길과 그렇지 않은 길은 심리적 거리가 다르다.
두 달 전, 뜨거웠던 여름 500ml 물통을 두 개씩 비워가며 도착했던 한강공원까지 오늘은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렸다. 8월 초 다녀온 북한강 종주가 얼마나 무모했었는지! 여행에서 날씨가 차지하는 비중이 내 생각보다 크다는 걸 제대로 느꼈다.
“아들, 힘들지 않아? 쉬었다 갈까?”
환이는 괜찮다며 계속 달렸다. 쾌청한 가을 하늘 한가한 평일 오후 한강 자전거길은 아이와 함께 달리기엔 최상의 조건이었다.
“한강에선 라면이지!”
앞서 달리던 환이 자전거가 한강공원 2호 편의점에 멈췄다. 끓여 먹는 라면은 맵다며 올여름까지 김밥과 튀김 우동을 먹던 환이가 끓여 먹는 안성탕면에 도전했다.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하는 환이는 바나나우유를 한 손에 꼭 쥔 채 라면을 끓이는 기계 앞에서 3분을 꼬박 기다렸다.
“아들, 여기 앉아 있어도 라면은 끓는다. 본다고 빨리 끓지 않아.”
“알아! 라면 끓이는 거 별거 아니네.”
난생처음 직접 라면을 끓여 본 경험은 환이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듯했다.
잠실대교가 가까워지니 현재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건물인 555m(123층)의 제2 롯데타워가 보였다.
“엄마, 코로나 잠잠해지면 1박 2일에서 김종민이 잤던 롯데타워 제일 꼭대기 다리에 가고 싶어.”
“네가 돈 내면 같이 가 줄게.”
환이는 내 말을 못 들은 척하며 페달을 굴렀다.
한여름 자전거를 탈 때 편의점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느껴졌었는데, 가을날의 편의점은 스~윽 보고 지나치는 미술관에 걸린 그림 같아 보였다.
팔당대교 아래 도착하니 벌써 어둑해졌다. 작년, 홍수로 물이 불어나 건너지 못했던 길에서 사진을 찍고, 팔당대교를 건너기 직전 하남시로 향하는 굴다리를 통과해 매번 들르는 칼국수 맛집에 도착했다. 바지락과 북어로 시원한 국물을 낸 칼국수는 어느새 하남에 오면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이 되어버렸다. 종일 달린 피로를 뜨끈한 국물로 녹여내며 허기를 채운 후 전에 묵었던 하남 시청 부근 숙소를 찾았다. 익숙한 길이라 어둠에도 불구하고 환이가 앞장서 달렸다. 숙소 앞에 도착했는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숙소 간판등이 꺼져있었고, 문은 잠겨있었다.
“두 달 전에도 운영했었는데… 코로나19로 문을 닫았나?”
주변에 호텔이 더 있어 당황하진 않았지만 좀 씁쓸했다.
“엄마, 저기 좋아 보인다. 가 볼까? 너무 비싸면 다른 데 가자.”
앞쪽으로 외관이 멋진 호텔이 하나 보였다. 자전거를 끌고 호텔 입구를 향하는 우리를 CCTV로 지켜보던 직원이 마중 나왔다. 자전거는 이곳에 보관하라며 환이 자전거를 직접 옮기던 직원은 환이한테 말을 걸었다.
“어디서부터 타고 왔어? 어디까지 갈 거야?”
“인천에서 왔는데, 부산까지 갈 거예요. 지난번엔 춘천도 다녀왔어요.”
환이는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우와! 대단한데.”
직원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부산까지 완주하라고 아이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오늘은 평일이라 사람이 많지 않으니 편하게 쉬고 가라며 우리에게 넓은 방을 내어줬다. 2인용 거품 욕조가 있는 큰 방이었다.
“우~와! 우~와! 욕조에서 거품이 나와! 만 원 더 비싸지만 여기 오길 잘했네. 여기서 목욕해도 되지?”
거품 욕조를 보고 흥분한 환이는 한 시간 넘게 노래를 부르며 거품 목욕을 즐겼다. 환이가 어렸을 땐 목욕 장난감이 있어야 한참을 놀았는데, 이제는 장난감 없이 목욕 자체를 즐기는 환이를 보니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욕을 마치고 체험학습 결과보고서를 쓴 환이가 자전거길 지도를 펼쳤다.
“엄마, 오늘 많이 왔으니까, 내일은 조금만 가자. 내일 아침은 지난번에 먹은 초계국수. 알았지?”
“좋지.”
“엄마, 나 먼저 잘게.”
지도를 접어 가방에 넣은 환이는 금세 잠이 들었다. 벌써 세 번째 자전거 여행이라니 꿈만 같았다. ‘내일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을 만날까?’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행의 설렘에 피곤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도 꼭 해야 하는 일도 없는 여행이기에 20대에 떠났던 배낭여행처럼 한껏 여유를 부려본다.
환이의 계획
화상수업과 e 학습터를 마치고, 평소에는 컴퓨터 게임을 10분 하지만 오늘은 자전거로 갈 길이 멀기 때문에 그냥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가능하면 국토 종주로 부산까지, 안 되면 남한강 종주를 갈 것이다. 남한강 종주를 하고 체험학습 일이 남으면 대구 이월드를 갈 계획이다. 만약 계속 국토 종주를 간다면 체험학습을 연장하고 부산에서 경주로 가서 경주월드도 갈 것이다.
내가 가장 기대하는 곳은 경주월드다. 왜냐하면 아직 가 보지 못한 놀이동산이기도 하고 타고 싶은 놀이기구인 드라켄, 크라크, 발키리 등이 있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타고 87km를 와서 두 번 묵었던 숙소에 가려고 했는데, 문을 닫아서 앞에 있는 호텔로 왔다. 만원 더 비쌌지만 좋아서 다음에 또 오고 싶다.
- 인천에서 하남까지 87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