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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먹고 다니니?

by 몽접

오랜만에 친구와 전화를 했다. 이 친구와는 대학 때 만났다. 제주도에서 서울로 대학을 오면서 물에서 육지로 성공을 했다며 정말 좋아했다. 나는 내심 제주도 한 번 못 가 봤다고 부러워했지만 아버지는 선장에 어머니는 해녀 전형적인 바다 사람이라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아냐며 쏘아붙여서 처음에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싶었다.


친구는 지금 생각하면 외향형이다. 나는 아주 내향형이고 그래서 우리 둘이 다니면 친구들은 저 둘이 뭐가 맞아서 다니지라고 궁금해했는데 이유는 딱 하나 철학이었다. 친구는 철학이 좋아서 책을 미친 듯이 읽었고 나는 대학에 들어가서 흔히 말하는 중 2병이 들어서 니체에 푹 빠져 들었을 때 친구는 내게 아주 좋은 지침서를 알려주었다. 같이 다니면서 울며 웃으며 그렇게 4년을 다녔고 친구라는 정의가 매년 같이 밥 먹고 연락을 해야 한다면 그렇다면 이 친구는 그런 친구가 아니다.


뜨문뜨문 연락을 하는 친구이다. 그런데 그 뜨문뜨문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 그런 친구다. 그래서 언제 어떻게 연락이 와도 전혀 이질감이 없어서 세상 사는 이야기에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집안 사정 누구나 하나씩 있는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이야기하면 나도 한다.

우리 둘의 공통점은 장녀라는 거 그래서 이 부분도 같이 해결을 한다.

이 친구는 나에게 늘 하는 첫인사가 밥은 먹고 다니니? 다.


썰은 이렇다.

고등학교 때 내 몸무게가 피크를 찍었다. 뭐 선생님들은 대학 가면 살이 빠지니 걱정하지 말고 많이 먹어라 하셨지만 뻥이었고 대학 때도 거구의 체격으로 살다 보니 여러 가지 불편했다. 특히 남의 시선에 신경이 쓰였고 여자지만 여자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그런 환경이 되어서 오기가 나서 대학 1학년 여름방학에 하루 한 끼를 먹고 미친 듯이 뛰었다. 걷기도 많이 걸었고 그때는 정말 죽기 살기로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하라고 하면 못한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 살 빼겠다고 하면 부모님은 하필 가장 더울 때 왜 그렇게 하냐고 뭐라 하셨지만 내 치욕은 반드시 갚는다며 나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여름방학 동안 딱 15킬로를 감량을 하고 학교로 다시 갔을 때 반응은 역시 큰 반응이었다.

여자 친구들은 비법을 물어봤고 남자 선배들은 말을 걸어오지 않았던 선배들은 말을 걸었고 동기들은 같이 밥을 먹자고 했다. 나는 그렇게 거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 살을 빼면서 뼈마름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해서 거의 밥을 먹지 않았다. 하루 한 끼가 삼각김밥 하나에 두유하나였다.

이걸 안 제주도 친구는 늘 나에게 "그렇게 먹으면 나중에 나이 들어서 골병이야"라고 말을 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학교 앞 헬스장을 등록을 하고 아침 7시부터 난 헬스인이 되면서 열심히 살을 뺐다.


그리고 3학년이 되어서는 정상체중에서 미달이 되었고 친구는 이제 노래를 불렀다.

"밥 좀 먹어"라고 그럴 때마다 "야 내가 어떻게 뺀 살인데"라고 말로 응수하면 고개를 저으면서 알겠다고 했다.

그 기억 때문인지는 몰라도 친구는 늘 나에게 카톡으로도 전화로도 묻는다.

"밥은 먹고 다니니?"

나는 "야 요즘 나이가 있어서 먹어야 해. 그때처럼 살면 나 힘들어" 하면서 웃는다.

물론 난 요즘도 유지어터로 살고 있다. 미용몸무게를 유지하기 위해서 매일 걷는다.


단순한 이 질문에 나는 많은 생각이 든다.

내가 어렸을 때 형편이 어려운 친구가 있었다. 한 동네에 살았는데 우리 집에 와서는 쌀을 구하러 온 친구였다. 같은 반이어서 나와 마주치면 어려울 것 같으니 엄마는 "몽접아 들어가라" 하시며 나에게는 함구를 하시고 그 친구에게는 쌀을 주셨다. 그러면 엄마는 "언제든 와라, 여기 쌀 많으니 굶지 말고" 하시며 엄마는 반찬도 싸주셨다.

밥이라는 게 매일 먹으면 질린다고 하지만 사실 많은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밥 먹고 살자고 하는 게 일인데,라는 말도 있고 단순히 밥이라는 의미는 아닐 거라 생각하는 나는 오늘 친구에게 물었다.

"밥은 먹고 다니니?"

친구는 "그럼 먹었지"라고 하는데 이 단순함 속에 깊은 울림은 어느 대답 보다도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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