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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윤 Jan 25. 2022

나에게 자동차란?

아빠와의 행복한 기억을 떠올려 보다


 『메밀꽃 필 무렵』 속 달밤의 산길, 허생원은 조선달, 동이와 걸으면 성처녀와의 사랑이야기도 꺼내고 동고동락하며 길을 동행한다. 이동하는 과정은 장돌뱅이의 삶의 애환이 근원적인 애정이 되는 만큼 소설 속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시절에는 교통수단의 제약으로 도보로 이동하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추억을 쌓아 나갔던 것이다. 오늘날 이 역할을 이행한다는 점에서, 이동과정에서의 자동차도 비슷한 성격을 지닌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나의 인생에서 비중을 크게 차지하는 경험은 학원을 오갈 때 이동과정에서 있는 아빠와의 시간들이다.

 

 특히 물리학원을 마치고 집에 오는 시간을 소개하고 싶다. 물리학원은 제시간에 끝나는 날이 드물다. 그 중 끝나는 시간에 대해 연락하지 못한 날은 아빠가 학원가 앞 주차난 속에서 20분, 30분이고 기다려준다. 학원에서 나와 아빠 차를 찾고 달려가 차에 타면 아빠의 온기와 함께 오래 기다리게 한 미안함과 기다려준 고마움이 밀려온다. 하지만 아빠는 늦게 온 것에 대해 불평을 하거나 시간이 늦어진다고 연락하지 못한 것에 대해 화내기는커녕 나에게 오늘 배운 내용을 ‘정확히’ 설명해보라고 한다. 매번 하는 설명 내용은 다르지만 가장 인상 깊은 날이었던 음향, 파동에 대해 설명한 날을 예로 들어보겠다. 아빠의 전공분야와 밀접한 관계를 지닌 주제로, 이 분야에서 가방끈이 긴 아빠가 가장 자세히 설명을 해주신 날이었다. 이 날도 다름없이 나에게 먼저 배운 내용을 정리해서 설명해보라고 하였다. 이후 아빠는 내 말을 듣고 수업 내용의 중심 내용을 파악하여, 문제유형에만 집중하던 나에게 개념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며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한다. 아빠의 ‘진동이 뭐니?’라는 질문으로 이 시간은 시작되었다. 이에 내가 간발의 차로 틀리더라도 ‘잘 듣고 생각해봐. 진동이란 평형점을 중심으로 물체가 전후/좌우/상하로 흔들리는 현상을 진동이라고 하고, 에너지 측면에서는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의 교환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거야.’라고 ‘정확한’ 설명을 제공해 준다. 정의에 대해 확실하게 알아야 하는 것은 아빠의 말 대신 교재의 쪽수를 알려주고 보는 것을 권하기도 한다. 설명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내가 ‘정확한’ 설명을 할 때까지 기다려주고 계속해서 틀리는 부분을 수정해 주는 점이 유익하다. 끝내 정확하게 해내어 아빠의 '그렇지!'라는 말을 듣고 싶은 구미가 당기기 때문에 반복이 지겹지만은 않게 된다. 질문은 정의에서 그치지 않고 연쇄적으로 진행된다. 일반적으로 정의에서 유추가 가능한 문제로 진행된다. 이것이 그 전 문제를 답하기에 성공했다고 해도 고삐를 늦추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기도 한다. ‘진동의 대표적인 형태인 단진자의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의 위치에 따른 변화를 생각해보는 것’이 다음 문제였다. ‘진동하는 물체의 진동에너지는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의 합으로 정의되는데 그 값은 항상 일정하다’는 조건을 주고 모르더라도 일단 5분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고 답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런 시간들은 실력 향상의 효과 이외에도 나와 아빠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작용도 한다. 학원시험 공부를 하고 있거나 몸이 안 좋은 날은 학원가는 길에 작은 일에도 아빠에게 짜증을 내서 관계에 금이 가기도 한다. 하지만 서로의 감정과 같이 주관적인 내용이 아닌 물리 지식에 대한 객관적인 내용에 대해 말하고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다 보면 금세 오해나 안 좋은 감정들은 풀리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 경험들이 기억에 남도록 만들어준 또 다른 요소도 있다. 아빠는 길눈이 밝지만 나의 설명을 귀 기울여 듣고 해설해 주는 것이 많은 집중력을 요구하는 만큼 길을 잘못 들게 되는 일이 잦은 것이다. 그래서 설명을 잠시 멈추고 우여곡절 끝에 집에 돌아오게 되는 일이 많았다. 이와 같은 기억이 추억처럼 떠오르게 된다는 것이 이 시간을 더욱 인상 깊게 만들어 주었던 것 같다.  


 어느날 아빠에게 퇴근하고 피곤한데도 나에게 정성껏 물리를 가르쳐 주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아빠는 이에 대해 나도 기억하지 못했던 기억을 꺼냈다. 학원에서 물리시험을 보면 다 맞을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날이 많았던 나는 물리를 잘 하게 되는 것은 그림의 떡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아빠는 내가 흘린 말을 귀담아 듣고선 내가 물리를 잘할 수 있도록 차 타고 가는 시간을 활용해 자신감을 키워주고 개념부터 문제까지 완성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오늘날의 바쁜 사회 속에서 자동차를 이동의 목적으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다수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빠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지식을 나누며 서로를 위하는 마음의 진심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는 점에서 행복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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