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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아빠가 처음이라
Apr 10. 2022
저녁은 항상 같이 먹기.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규칙이다.
내가 생각했던 저녁 시간에는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오늘 하루 기분이 어땠는지 무엇을 했는지 서로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그렇지만 저녁 시간은 항상 전쟁이다. 하루가 피곤한 날에는 조용히 밥 먹고 싶은 날도 있지만 아이는 밥 먹는 동안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결국 물을 쏟고 밥을 흘리고 나는 아이에게 으름장을 놓는다. 밥을 먹은 후 창과 방패의 싸움이 시작된다. 놀아달라는 아이와 피곤하다는 나. 그 끝은 항상 서로 기분이 상하고 만다. 놀아주지 않는 아이는 나에게 기분이 상해서 발을 쿵쿵거리며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 모습에 화가 난 나는 결국 아이를 혼내고 만다.
나는 인상을 찌끄린 채 아이의 방으로 가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묻는다.
"발 쿵쿵거리고 소리 질렀어...."
두 눈에서는 이미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아빠가 안 놀아줘서 기분이 안 좋았어..."
한 두 번 혼내는 것도 아니지만 그날따라 마음이 아팠다. 아이가 입고 있는 시크릿 쥬쥬 옷이 눈에 들어왔다. 그 옷을 사줬을 때 행복한 얼굴로 나한테 자랑하던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갑자기 나도 눈물이 났다. 그리고 아이를 꼭 안아줬다. 사실 아이를 놀아주지 않은 나에게도 잘못이 있다. 피곤해서 예민한 내 상태가 결국 발을 쿵쿵거린 아이에게 화로 돌아간다.
"아빠가 무섭게 말해서 미안해...."
나는 항상 혼낼 때면 감정이 섞이고 만다. 최대한 덤덤한 얼굴로 단호하게 혼내고 싶지만 항상 욱하고 만다. 이게 좋은 것이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근데 정말로 고치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내가 사회생활에서도 그런 편은 아니다. 주위 사람들과 친하게 잘 지내며 감정 통제도 잘하는 편이다. 만약 사회에서도 아이처럼 말 한마디에 감정이 섞인다면 아마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근데 왜 아이에게는 항상 감정이 섞이게 될까?
어떤 날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친구나 다른 사람이 내가 죽을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막 언성을 높이면서 뭐라 하면 내 기분은 어떨까? 이게 내 아이가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사람이 실수를 했어도 항상 무례를 범하지 않는 선에서 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이를 어떤 존재로 생각하고 있는 걸까? 나는 아이와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도 대화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혼낼 때면 아이는 겁에 질린다. 언성을 높인다는 것과 혼을 내는 것(훈육)은 같지만 다르다. 언성을 높이는 것은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나의 분노, 짜증이 섞인 것이다. 훈육은 품성이나 도덕 따위를 가르쳐 기르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올바른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는 훈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절대로 감정이 들어가서는 안된다. 그 자체로 훈육은 의미를 잃고 만다. 나는 지금까지 훈육을 빙자한 감정 쏟아내기를 하고 있었다.
엄마 아빠도 로봇이 아니고 사람이다. 사람이 어떻게 매사에 기계적으로 감정을 배제할 수 있을까? 나는 아마 아이를 부족한 존재이자 내 아래 있는 존재로 생각했던 것 같다.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를 억쬐고 혼내고 결국 아이는 내 나쁜 감정을 다 받아준다. 이렇게 착한 아이는 다시 나에게 먼저 다가오며 사랑으로 돌려준다. 아빠가 혼내도 좋냐는 물음에 사랑한다고 대답해준다. 아이를 키우면서 단 한 번도 훈육에 감정이 섞이지 않는 부모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매번 아이에게 감정이 섞이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정말 어렵다. 그래도 계속해서 고쳐나갈 것이다. 그리고 항상 아이에게 감정에 대한 사과를 하고 있다.
"아빠는 너를 미워해서 혼낸 게 아니야 아빠는 너를 사랑해 혼낼 때 화를 낸 것은 아빠의 잘못이야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