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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다.

모든 지난 사랑과 이별 앞에 담담할 수 있어서...

by 이은희 시인

2025년 4월 22일 화요일, 저녁이 물들어가는 즈음에 산본 스벅에서...


이사 후 오랜만에 익숙한 거리를 바라보고 커피숍 창문 앞에 혼자 앉았다.
지나가는 모든 ㅇㅇ고 체육복 바지를 입은 남자아이들이 내 작은아들처럼 보인다. 난시가 심한 내가 해가 질 무렵, 그것도 종일 비가 내려 흐렸던 날 제대로 내 아들을 구별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건지도... 방금 다른 동네에서 맥도날드 버거를 막 긁었다는 카드문자가 날아왔으니 멀리 창밖으로 지나간 아이들은 내 아들이 아니었음이 확실해졌다.
스벅의 '부드러운 생크림 카스텔라'에서 어릴 적 막냇동생 분유통에서 분유를 엄마 몰래 한 숟가락씩 훔쳐먹었던 그때 그 분유맛이 나는 것은 우연일까? 나는 샷 하나를 넣어서 맛있는 스벅의 라떼를 좋아한다. 다른 곳은 기본이 라떼에 샷이 두 개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 아니 스벅 라떼가 유독 내 입맛에 맞았던 이유가 샷이 하나라서라는 것을 알게 됐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갑자기 좀 생뚱맞은 것 같기도 하지만 철 지난 사랑처럼 초라한 것이 또 있을까?
뜨거웠던 온도와 비례라도 하듯이 식어버린 그 사랑은 불편하고 초라하단 생각이 왜 드는 것인지...




ㅇㅇㅇㅇ년 8월 ㅇㅇ일 밤 11시 50분 무렵...


단 10분도 보지 못할 거면서 단숨에 달려와 준 그 마음에 감사합니다.

그윽이 바라본 커다란 깊은 눈에 오롯이 담긴 그리움에 감사합니다.

술이 덜 취하면 참을 수 없이 보고 싶다던 마음에도 감사합니다.

필름이 끊길 만큼 취하면 몸이 본능적으로 알아봐 주는 그 마음에도 감사합니다.

오늘 당신은 감동입니다.

그 밤 나를 보기 위해 급한 걸음으로 달려와 준 나의 당신, 그 먼 길을 한 달음에 달려와 준 사람!


ㅇㅇㅇㅇ년 8월 ㅇㅇ일 토요일 오후...


이별을 해도 배가 고프고, 커피를 마시고,

한 번도 사보지 않았던 도서관 매점에 가서 빵을 찾으니 그대가 어느 아침 배고프다 칭얼대는 날 위해 편의점에서 사준 달달한 꿀데니쉬 빵이 꼭 한 개 남아있어서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본능적으로 집었습니다.

우리의 이별에 나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게 될까요?


ㅇㅇㅇㅇ년 10월 ㅇㅇ일 목요일 오전 11시 28분, ㅇㅇ 수업시간에...


찬란한 가을날 떠나간 인연이 되었네.

언제던가 우연으로도 만날 수 없다며 푸념한 그대에게 말했었지.

그런 우연은 누군가의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너무도 세상을, 사랑을 몰랐던 그대에게 가장 잘하는 것이 기다림이라던

나와는 너무도 다른 그대를 마음에서 보내네.


<오후 5시 40분>


나는 알고 있다네.

마음에서 얼마나 그대를 많이 보내고 놓아야 하는지를.

또다시 붙들고 싶어지는 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서 얼마나 많은 눈물의 밤을 보내야 하는지를...

그대는 어떤 모습으로 나를 보내게 될는지?

그러나 모두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그저 좋았던 추억으로 남을 수 있을 거란 걸 또한 나는 알고 있다네.

이렇게 설레던 두근거리던 이 마음에 간절한 그리움으로 물들 그날을 나는 또한 알고 있다네.

절대로 나에게 전화를 먼저 하지 않을 것이고, 보고 싶다 먼저 문자를 보내지 않을 당신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네.

모든 슬픔도 함께 져주지 못할 사람인 것을 오롯이 나 홀로 짊어지고 가야만 하는 그리움의 무게임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네.

이제는 슬퍼도 슬프다고 너무 내색하지도 말고 그저 아무 말 없이 나 역시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네.

뜨거웠던 여름의 태양이 함께 했던 우리들의 뜨거운 추억을 이제는 오롯이 가슴속에 묻고 찬바람으로 느껴질 그 공허를 온전히 감내하며 당신도 그렇게 아파주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참고 또 참고 가야 한다는 것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네.






추신. 이은희 시인의 연재 브런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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