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조차 알 수 없는 이가 산다. 마음 아주 깊은 그 골짜기 밥은 먹고 있는지 어느 해 쉬이 피우지 못한 하얀 난 꽃, 이제는 피는 것에 미소 짓는지 선선한 바람에 나부끼는 머릿결은 가지런히 빗어 넘기는지 비누내음인지 로션향이었는지 끝내 묻지 않아 알 수 없던 그 청량함은 여전한 건지 기울어진 소주잔에 쓴 입술을 맞추는지
끝이 보이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지루하지 않던 그 긴 길을 아직도 걷고 있을까? 두 번은 들은 이 없다던 봉인된 메아리가 살고 있는 너도밤나무숲 가는 길이 담긴 지도는 아직도 찾는 중일까?
밤이 깊고, 별 하나 빼꼼 새벽이 오고, 쨍한 태양 가지 꼭대기에 걸리다 다시 바람이 별을 스치고, 밤이 깊고, 현기증이 나고, 숨이 차고, 목이 마르고, 다시 또 걷고……
차라리 눈을 먼저 감는 버릇이 생겼지 신기하게도 그러면 가슴이 두근거려와 눈을 감으면 자꾸만 가슴이 야릇하게 아려와 生과 死 한 끗 차이라는데 그 차이를 이길 수 없어서 나는 눈을 감고 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