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주유 · 하루 만에 1,313km를 주파한 이야기
수차례 말하지만, 필자에게 있어 폭스바겐 골프는 단순히 유명한 차에 그치지 않는다. 자동차에 대한 막연한 관심을 실제 활동으로 이어지게 만든 정말 감사한 존재다. 폭스바겐 골프 세대 변경에 따라 필자도 발전했고, 어느덧 자동차와 관련된 일을 다양하게 하게 됐다.
새로워진 폭스바겐 8세대 골프는 올해 초 한국에 모습을 드러냈고, TDI 모델을 우선적으로 들여왔다. 출시 시기가 늦어지긴 했지만, 시승하는 동안 만족스럽게 느껴졌던 부분이 정말 많았다. 그리고 만족도의 정점에는 경이로운 수준의 '실연비' 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차고, 문득 이 차가 가진 장점이 얼마나 극대화될지 궁금해졌다. 그 결과 앞서 르노 캡처 디젤로 전국 일주 연비리뷰를 진행한 지 2년 만에 전국 일주 연비리뷰에 나섰다. 시작에 앞서 25시간 함께하며 시달렸던 동그란콩 동생에게 감사를 전한다.
2월 초에 진행한 연비리뷰의 주행 조건은 앞서 진행했던 방식과 동일하다. 긴 거리를 달리고자 국도를 적극 이용했으며, 주행가능거리가 없어질 때까지 달렸다. 전과 달라진 점은 내리막길에서는 탄력을 최대한 받으며 달렸고, 날씨로 인해 중간중간 히터를 켜며 달렸다.
기나긴 여정은 잠실에 위치한 GS칼텍스 삼화주유소에서 시작됐다. 출발 전 권장 공기압에 가까운 35 PSI로 세팅을 마쳤다.
그리고 출발에 앞서 기름을 가득 채웠다. 이때 표시된 주행가능거리는 900km. 8세대 골프 연료탱크 용량은 평균적인 수치인 50리터다. 참고로, 8세대 골프부터 주유구 뚜껑이 따로 없는 캡 리스 주유구가 적용됐다. 단 캡 리스 주유구 특성상 기름을 목 끝까지 넣는 건 불가능했다.
그나저나 2월 초 기름값을 보니 지금과는 정말 천지차이였다. 이때만 해도 기름값이 상당히 합리적이었다. 그 누구도 원치 않는 일이 벌어졌고, 그로 인한 피해는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모두가 지게 된 상황. 아무쪼록 안타까운 상황이 빠른 시일 내에 평화적으로 종결되길 바란다.
익숙한 국도를 항속으로 내달리며, 첫 번째 경유지인 한계령 휴게소에 도착했다. 한계령 휴게소는 그간 경험한 시승차 중에서도 정말 마음에 들거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들르는 곳이다. 8세대 골프로 이곳을 들르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트립컴퓨터상으로 확인되는 주행거리는 175km, 주행시간은 2시간 32분, 평균속도는 69km/h, 평균연비는 22.8km/L다. 주행가능거리는 처음 출발할 때보다 70km 줄어든 830km. 사실 주행 과정에서 주행가능거리는 금방 1,000km를 넘기긴 했었다.
이번 연비리뷰의 핵심은 8세대 골프의 코스팅 기능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었다. 코스팅 기능은 항속 중 엔진 회전수를 아이들링 수준으로 낮춰 탄력을 쭉 이어나가게끔 하는 주행 모드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해당 기능 유무에 따라서 고속 실연비 차이는 확연히 벌어지게 된다.
8세대 골프의 경우 주행모드를 에코에 뒀을 때 코스팅 기능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진다. 액셀 페달을 뗀 직후 바로 작동할 정도로 작동 빈도에 있어서 신뢰도가 정말 높고, 탄력주행이 정말 원활히 이뤄진다. 내리막길에서는 액셀 페달을 밟았나 싶을 정도로 속도가 붙을 정도.
한계령 휴게소에 도착해 숨도 돌리고, 스트레칭하면서 리프레시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침 타이밍이 맞아서 서서히 동이 트고 있었고, 산 정상의 대기질도 괜찮았던지라 해가 완전히 뜨는 모습을 보기로 했다. 그 찰나의 순간을 몇 컷 담아봤다.
필자가 한계령 휴게소에 올 때마다 느끼는 건 정말 사진이라는 게 어렵다는 것이다. 눈으로 직접 본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으로 표현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풍경 사진으로 감동을 선사하시는 분들은 정말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후로는 쉼 없이 달리며, 여정을 이어 나갔다. 강원도 양양에서 강릉, 동해, 삼척을 지나서 경북 울진까지는 7번 국도를 이용했다. 당연히 고속도로를 타는 게 더 빠르긴 하지만, 이 구간은 국도로 달리는 게 훨씬 풍경 보는 즐거움이 크다고 생각한다. 동해 바다를 끼고 달리는 맛이 정말 좋다.
트립컴퓨터상으로 확인되는 주행거리는 377km, 주행시간 6시간 15분, 평균속도 60km/h, 평균연비 25.7km/L다. 정리해 보면 평균속도는 내려갔고, 평균연비는 2.9km/L가 더 늘었다. 가장 인상적인 건 주행가능거리 840km. 강원도 양양에서 200km를 달렸음에도 10km가 늘었다.
울진은어다리 일대는 친한 동창 덕분에 알게 된 곳인데, 자동차와 아름다운 동해 모습을 한 컷에 담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명소다. 인적이 많지 않고, 포토 스팟이라 할 수 있는 곳들이 많다. 경주로 넘어가는 과정에 종종 들르는 포토 스팟에서 8세대 골프의 외관 사진을 몇 장 담아봤다.
사실 지루할 수밖에 없는 연비리뷰를 진행하는 상황 속에서도 8세대 골프는 정말 매력적이었다. 굳이 달리지 않아도 골프만의 경쾌함, 운전의 즐거움이 확실히 느껴진다. 그리고 탄력주행을 극대화하는 코스팅 모드에 힘입어 수직 상승하는 트립컴퓨터의 데이터를 보는 성취감도 컸다.
앞서 시승회를 통해 경험했을 때는 고속주행 시 N.V.H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는데, 되려 80km/h 이내에서 유유자적 달리다 보니 그런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었다. 8세대 골프가 가진 뛰어난 완성도와 상품성, 특히 이 차가 추구하는 가치를 생각해 보면 '여전히' 차고 넘치는 차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생각해 보니 여정의 결은 좀 다르지만, 7세대 골프 2.0 TDI를 시승할 때도 바다를 끼고 달렸던 기억이 있다. 강원도를 오가며 골프의 매력에 흠뻑 빠졌고, 실제 교통사고로 이어질 만한 상황 속에서도 잽싸게 반응해줘 위험을 벗어나게 해 줬다. 골프가 유명한 차를 넘어 각별한 존재로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다.
그로부터 3시간 뒤에 경주시에 도착했다. 경주시는 매번 올 때마다 다른 것을 하진 않고, 황남빵만 사 간다. 생각해 보면 초등학생 이후로 일절 들를 일이 없었던 것 같다. 나중에 제대로 날 잡고 초등학생 수학여행 감성으로 여행해 봐야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트립컴퓨터상으로 확인되는 주행거리는 524km, 주행시간은 9시간 23분, 평균속도는 56km/h, 평균연비는 26.7km/L다. 주행가능거리는 760km. 평균속도가 조금 줄어들었고, 평균연비는 1km/L 더 늘었다. 주말이라 울진 기점으로 차가 많아 여유로운 탄력주행은 힘들었다.
경주에서 울산을 거쳐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은 여정의 중간 정도 되는 곳으로써 이곳에서 충분한 휴식과 양질의 식사를 하는 편.
정말 신기했던 건 울산에서 부산을 가는 길이 올곧은 국도가 아닌 와인딩 로드가 섞여있다는 것. 덕분에 너무 지루하지도 않게 골프의 찰진 핸들링 성능을 즐기며 갈 수 있었다.
트립컴퓨터상 주행거리는 619km, 주행시간은 11시간 29분, 평균속도 54km/h, 평균연비 26.6km/L, 주행가능거리는 650km였다.
울진에서 사진을 찍다 보니 식사시간이 애매해진 상황. 맛집도 딱히 없고, '차라리 부산에서 제대로 된 걸 먹자' 고 같이 간 동생과 협의했었다. 원래 부산에 갈 때마다 대구탕을 먹었는데 이날은 그럴 수 없었다.
같이 간 동생이 해물을 못 먹는다는 걸 재차 리마인드 하고, 부산 대표 음식인 돼지국밥을 먹기로. 그렇게 들른 부산 수백한상은 전반적으로 괜찮았고, 생각 이상으로 돈가스가 맛있어서 놀랬다. 가성비도 훌륭한 편.
저녁을 여유롭게 먹은 뒤, 시간을 보니 6시가 훌쩍 넘었다. 당초 계획으로는 12시 전후로 서울에 복귀할 생각이었지만, 시간을 보니 그러긴 어려운 상황. 아예 여유롭게 서울로 향하자고 동생과 협의했다.
그렇게 부산 광안대교에 들르게 됐다. 부산 광안대교를 배경으로 8세대 골프 이미지를 몇 장 담아봤다. 외장 색상이 퓨어 화이트가 아니라 아쉽긴 하지만, 딥 블랙도 핑크빛 하늘과 분위기 있게 잘 담아냈다고 자평한다.
부산에서 창원, 진주, 광양을 거쳐 목포로 국도를 이용해 부지런히 이동했다.
어둠이 찾아오면서 IQ 라이트는 정말 바삐 작동했고, 그 덕분에 밤 운전에 대한 부담감을 완전히 덜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5시간을 쉼 없이 달려 전남 목포에 위치한 맥도날드에 도착했다.
트립컴퓨터상 주행거리는 953km, 주행시간은 17시간 30분, 평균속도는 55km/h, 평균연비는 26km/L. 영업시간 종료 직전에 아이스 커피를 테이크 아웃한 후, 서울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경로 선정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기존 취지대로 국도를 이용해서 가는 방법이 있고,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가는 방법이 있었다. 사실 주행가능거리가 간당간당하게 남은 것도 있고, 다음 날 각자 일정도 있던지라 고속도로로 이동하기로 했다.
같이 간 동생은 경북 울진에서 경주 그리고 목포에서 서울까지라는 중요한 구간 주행을 맡게 됐다. 사실 필자는 커피를 마시다 옆에서 기절해 버렸고, 정신을 차려보니 서울에 도착해 있었다.
동생에게 물어보니 주행가능거리보다 남은 주행거리가 더 커서 걱정했지만, 코스팅 기능을 적극 활용해서 용인 신갈을 지날 때쯤 그 상황이 완전히 역전됐다고 한다. 누구보다 자동차로 달리기 좋아하는 동생인데, 이날 필자 때문에 심적 고생이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올림픽대로 한남대교 구간을 지날 때부터 주행가능거리 표시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출발지였던 잠실에 위치한 GS칼텍스 삼화주유소에 도착했다.
8세대 골프와 함께 한 연비리뷰 결과는 다음과 같다. 트립컴퓨터상으로 확인되는 주행거리는 1313km, 주행시간은 21시간 53분, 평균속도는 60km/h, 평균연비는 25.7km/L. 아무래도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니 평균속도가 오르게 됐고, 코스팅 모드를 자주 썼음에도 평균연비는 소폭 떨어지게 됐다. 아마 이 구간도 국도를 이용해 달렸었다면 평균연비 저하가 지금의 수치보다는 미미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료탱크 용량 50리터 기준 실 주행거리를 대입해 봤을 때 평균연비는 26.26km/L.
시작할 때 설명했듯 8세대 골프가 캡 리스 주유구 방식이 아니었다면, 이 수치는 훨씬 더 크게 뛰었을 거다. 아무쪼록 의미 있는 차와 유의미한 결과를 기록한 듯싶어 만족스러웠고, 긴 시간 발을 맞췄던 8세대 골프에 정말로 고마운 하루였다. 초면에 가까운 만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오랜만에 손발 착착 맞는 차를 탈 수 있어 너무나 좋았다.
이런저런 일들로 8세대 골프의 고성능 버전, GTI의 출시가 지연되고 있다. 8세대 골프가 가진 탄탄한 기본기와 완성도에 매력적인 GTI라는 소스가 더해지면 차에 대한 만족감은 한층 높아질 거라 생각한다. 이미 늦은 감은 있지만, 더 늦기 전에 8세대 골프 GTI와 함께 이날 여정처럼 긴 시간 동안 함께하고 싶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서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