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플로리스트 두 번째 이야기
내가 꽃집을 연 가장 큰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돈을 벌기 위해서다.
평생을 내 일없이 가사노동만 하며 살고 싶진 않았다. 가사노동이 미천하다는 게 아니라, 그건 내 '성격'과 맞지 않았다. 그런데 '꽃집을 해서 돈을 벌고 싶다'는 이 말은 어딘가 금기시된다. 돈을 벌어보려고 삼겹살집을 열거나 치킨집을 여는 것은 당연해보이는데, 꽃집을 열었다고 하면 모두들 '좋겠다'고 우선 말한다. 꽃집은 참 예뻐보인다.
어느 정도 사실이다. 예쁜 꽃들로 가득찬 작업공간에서 매일 새로운 꽃들과 새로운 주문들 앞에서 씨름하다보면 내가 그토록 꿈꾸었던 멋진 플로리스트의 실력에 조금씩 다가서는 기분이다. 하지만 그렇게 성장해가는 내 노동의 가치가 '돈'으로 환원되지 않으면 사실 그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할 방법은 없다. 성격 급하기론 둘째 가라면 서러운 내게 '길게 보라'는 자기계발서 식 격언은 통하지 않는다. 난 당장의 증명과 인정이 필요한 사람이다.
물론, 세상 모든 일의 속성은 어느정도 비슷하다고 믿는다. 일하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나도 나에게 투자를 한 시간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꽃을 상품으로 변환시켜 팔기 위해서 나는 자격증을 따고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다. 자격증을 또 땄다. 꽤 오랜 자기 투자 기간이고 큰 비용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공부에만 매진해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얻어 그 시간을 보상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듯, 나도 내 방황과 노력의 시간을 이 꽃집에서 보상받고 싶은 솔직한 마음이 있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다. 정확히는, 보장되질 않는다.
나는 이 공간과 임대차계약을 했을 뿐, 어떤 사람도 내게 근무시간과 월급의 양을 정해주거나 약속해주지 않는다. 손님이 들어오지 않는 어떤 날 어떤 시간대에는 10평 가게의 적막한 공기가 무서울 때가 있다. 비가 와서, 눈이 와서, 너무 더워서, 코로나가 너무 심해져서, 사람들은 가게에 들어오지 않는다. 가게에 들어올 핑계를 만들기 위해선 안간힘을 써야 하는데 가게에 들어오지 않아도 될 이유는 세상 만사에 차고 넘친다. 그래도 그 가게 안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자영업이다. 창살없는 감옥이라는 말이 그저 나온 것은 아니다.
-꽃은 계속해 시든다....
그런데 여기에 꽃집의 특성이 더해진다. 꽃은 생물이다. 동대문에서 도매상에게 옷을 가져와 팔아보기도 했지만, 꽃은 옷처럼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다. 매장마다 원칙이 다르겠지만, 나는 조금이라도 시들어가는 꽃을 손님에게 내놓을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꽃집을 처음 열었을 때는 하루의 절반을 꽃을 잘라 버리는 데다 썼다. 도매시장에 처음 가보니 눈에 들어오는 예쁜 꽃들은 많고 매출은 짐작되지 않아 이러저리 담아보았는데 결국 며칠이 지나면 꽃은 시들어버렸다. 그렇게 꽃을 도려내고 있으면 마음도 찢어졌다. 짝꿍은 그런 나를 옆에서 보며 꽃이 시들어보이지 않는데 그냥 팔아도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걱정되는 마음에서 한 말이겠지만, 이건 내 '성격'이다. 나 자신이 완벽한 사람은 아닐 지라도, 내가 일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은 완벽했으면 좋겠다.(물론 짝꿍에게 이렇게 일일이 다 설명해준 것은 아니다. 노려보면 그만이다.)
AM 05:30
생물인 꽃을 매일 새벽마다 들여와야한다. 다섯시 반이면 눈을 뜬다. 아침 예약주문이라도 있거나 꽃시장이 붐빌 것으로 예상될 때는 네 시에 일어난다. 물론 짝꿍이 반쯤은 강제로 깨운다. (잠귀가 밝고 잘 일어나는 짝꿍과 사는 것은 이럴 때 참 긴요하다.) 짝꿍이 차려준 간단한 아침으로 허기를 채우고 새벽 올림픽대로를 달려 시장에 간다.
거대한 서울도 새벽이면 참 작은 동네다.
꽃시장까지 13분, 과속하지 않아도 금세 생존의 무대에 도착한다.
AM 07:00
수많은 다른 꽃집 사장님들, 일반인들과 뒤섞여 좁은 도매시장을 누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돌면 어깨가 뻐근할 만큼 꽃들을 안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돈을 얼마나 썼는지는 바로 어림잡아지지도 않는다. 차에 싣고 가게로 오면 분주해지기 시작하는 여의도를 목격한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쏟아져나온다. 땅을 보거나 휴대폰에 고개를 박고 저마다 갈 길로 걸어나간다. 가끔은 그들의 목적지가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 이미 열고 청소를 해주고 정리해뒀을, 하루의 업무가 정해진 곳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어떨까 상상해본다.
가게 문을 열면 정리와의 고독한 전쟁이 시작된다. 나는 꽃을 들고 와 묶어서 파는 사람이 아니다. 수십 송이에서 백 송이가 넘는 꽃들을 가게에 풀어놓고 하나하나 손질한다. 물병을 씻고 물을 갈고, 한송이 한송이 잎을 떼어내고 줄기를 자른다. 장미 가시를 다듬고 소재에 붙은 자잘한 잎들도 하나하나 다치지 않게 따낸다. 좁은 가게의 바닥에 잔해가 가득해질 즈음이면 허리가 아려온다. 그렇다고 앉아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AM 09:00
손님들이 문을 열고 처음 보는 꽃집의 풍경은 여기서부터다. 돈 받을 생각에 최대한 밝은 표정을 지으려는 게 아니라, 몇 시간이고 말없이 혼자서 중노동을 하다가 누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너무 반갑다. 적막은 빨리 깨질수록 좋다.
색과 양, 형태 그리고 포장까지. 손님들의 주문과 내 안목으로 하나의 상품을 완성한다. 꽃이라는 이 신기한 생물은 똑같은 주문도 누가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포장도 마찬가지다. 그게 이 일의 킬링포인트다. 너무 재밌는 일이기도 하면서 너무나 힘든 일이다. 일이 표준화도 안 되고 쉽게 대체도 안 된다. 삼겹살을 굽는 데 능숙한 사람은 있겠지만, 손님들보고 적당히 꽃을 잡아주고는 "이제 뒤집어가며 드시면 됩니다" 하며 알아서 마무리하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다. 내가 "됐습니다" 할 때까지 계속 미완이다. 영원히 기성품이 될 수 없는 꽃을 완제품으로 디자인해 판매한다. 여기까지가 플로리스트가 하는 노동이다. 오전 아홉시에 첫 꽃다발 하나를 팔았다면, 네 시간이 걸린 셈이다.
다행히 가게 문을 열고 지금까지, 고마운 칭찬의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단골 손님도 많아지고 지나가며 간식거리를 사주고 가시는 분들도 많다. 그런데도 매달 정산일이 다가오면 나는 절망한다. '돈을 벌고 싶어' 시작한 일인데 돈이 안 벌리기 때문이다. 어마무시한 월세와 관리비를 내고나면,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나를 갈아넣었을까 회의한다. 직장에 다니는 동생은 그래도 언니는 일한 만큼 더 받을 수 있다며 본인은 야근해도 수당같은 걸 받지 못한다고 위로한다. 서로의 처지를 비관하는 대결이 위로가 될 수 있는진 모르겠지만, 내가 욕심이 많아서 그런 건지 나는 지금의 나에게 만족하지 못한다.
한동안은 그게 진짜 '돈'이 더 벌고싶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다보니 그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단지 입금이 더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면, 마케팅을 더 하고 꽃값을 더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인스타그램에 상품을 더 열심히 올리고 블로그 리뷰를 유치하고 흔히들 하는 영수증 리뷰도 부탁해서 매출을 늘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모두 열심히 해야 하는 것들이지만, 요즘 생각을 곰곰히 더듬어보니 단지 '돈'이 더 입금됐으면 좋겠다는 마음만은 아니라는 걸 느낀다.
나는 좀 더 큰 가치로 환산되는 실력있는 노동자가 되고 싶다.
쉽게 말해, 잘 나가고 싶다.
스마트스토어로 떼돈을 번 사람, 인플루언서가 돼 너무 잘 살아 보이는 사람, 아마존셀러가 됐다는 둥둥둥둥둥 세상은 온통 쉽게 돈을 벌었다는 사람들로 가득해보인다. 내게도 그런 기회가 있다면 어떨까 생각해보지만, 지금 내 손에 쥔 건 기술과 꽃이 전부다. 그렇게 다시 내 젊음과 노동을 갈아넣어본다.
하긴, 믹서기처럼 정신없이 갈아넣은 것치고 완성된 꽃은 늘 너무 예쁘다. 너무 예쁜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네가 예뻐질수록, 나도 만족할 수 있는 거겠지? 앗, 그래. 어쩌면 난 꽃의 미모에 속아 넘어간 걸지도 모르겠다. 내 미모에 속아넘어갔다는 짝꿍의 얼굴이 아련히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