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플로리스트 세 번째 이야기
식물을 잘 키우는 법에 대한 이야길 자신있게 쓰고 싶지만...
식물은 참 어렵다.
대학원에서 원예생명공학을 전공했다. 종속과목강문계를 나누고 생태를 공부하고 학명까지 고상하게 외웠다. 1년에 걸쳐 논문까지 쓰고 석사 학위를 버젓이 받았지만, 역시 식물은 어렵다. 아니,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참 어려운 것 같다. 식물은 나와 맞지 않아-! 플로리스트 서재이의 2022년 겸손한 고백이다.
어제 짝꿍이 '유퀴즈 온더블록'의 한 클립을 보여주었다. K자동차회사의 판매왕인 부장님이었다.
사장보다 월급이 많다는 건 그렇다쳐도 지금까지 자동차를 1만7천대 이상 팔았다니, 입이 떡 벌어졌다. 내가 지금까지 판 꽃이....그래 줄기 수로 계산하면 버금갈 수도 있겠다.
가장 공감가는 부분은 자동차를 파는 심정에 대한 것이었다. 자동차 한 대를 팔 때마다 마음이 자동차 부품 수만큼(3만개) 왔다갔다 하셨다고 한다. 그럼 1만 7천대를 파셨으니, 17000x30000=?
무한대의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새벽이면 전화벨이 울리는 환청도 들렸다고 한다. 비록 이제 2년차 꽃집 사장이지만, 나도 그 환청을 들은 적이 수없이 많다. 식물의 목소리를 말이다.
고맙게도 가게에 데려온 식물들은 참 잘 큰다. 농장에 가 예쁜 아이들을 데려와 가장 잘 어울리는 화분에 일일이 정성들여 식재한다. 난석을 깔고 마사토를 배합하고 뿌리 상태를 점검하고 매일 아침 생존을 확인한다. 나름 빛이 잘 들고 환기가 잘 되는 매장이어서인지 식물들은 무럭무럭 잘도 자란다. 어린 시절 한 때 집에서 키우던 스투키도 죽여봤던 나로서는 아주 보람찬 나날들이다.
문제는 팔리고 나서다.
팔려고 데려온 식물들이 팔리고 나면 기쁨이 아니라 근심거리가 된다.
가서 잘 살까...?!
카드를 결제하고 영수증을 찢고 나면 돌아서자마자 걱정이 시작된다. 꽃으로 만든 다발이나 바구니야 사가신 분들도 곧 시든다는 걸 알고 있지만, 식물을 사는 마음에는 어딘가 '영원한 생명'을 데리고 가고자 하는 마음이 함께 있다는 걸 잘 안다. 죽으면 곤란하다. 식물은 늘 푸르고 움직이지 않고 '뿌리'라는 튼튼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존재 아니던가. 특히나 조금 큰 나무를 판매하고 직접 배송해드리고 나면 휴대폰 진동만 와도 소스라치게 놀란다. 아니나 다를까 응애나 깍지처럼 해충이 생기는 경우가 왕왕 있다. 멸균된 제품을 배송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살아 숨쉬는 식물을 살아 숨쉬는 흙에 담아드렸으니 그럴 순 없는 노릇이다. 그럴 때마다 관리법을 소개해드리고 심할 때는 직접 방문해드린 적도 있다.
사실 판매하고 나면 그 뒤부터는 나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해봤다. 어쩌면 그게 당연한 일이다. 옷을 팔았는데 그 옷을 잘 입고 다니든 말든, 그건 손님의 일이다. 하지만 꽃다발을 들고 간 손님이 예쁜 선물을 하고 좋은 사진을 찍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듯이 식물을 데리고 간 손님이 꼭,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하길 바라는 마음도 자연스레 든다. 물론 작은 문의나 컴플레인에도 화들짝 놀라는 나의 개복치 성격때문에 쉬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식물을 데려가는 손님들이 하나같이 물어보는 게 있다.
며칠에 한 번 물을 주어야 하나요?
아마 나도 예전에 식물을 살 때는 꼭 물어봤던 것 같다. 그런데 참 대답하기 애매한 질문이다. 1주일에 한 번, 열흘에 한 번, 이렇게 정해주면 나도 좋을텐데 선뜻 그렇게 말하지 못한다. 난 그게 솔직한 꽃집 사장의 자세라고 믿는다. 나는 말이 길어진다.
물을 좋아하는 아이라 1주일에 한 번 주시면 좋지만 바로 주시기 보다는 흙에 손을 조금 찔러 넣어보시고 완전히 말라있다 싶을 때 아래로 물이 빠질 때까지 흠뻑 주시고....
물론 식물이 생장하는 데 물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죽어가는 식물을 가게에 들고 와 분갈이를 부탁하는 분들의 화분을 꺼내보면 대부분 '물때문에' 죽어가고 있다. 물론 억울할 만도 하다. 물을 며칠에 한 번 꾸준히 주었는데...도대체 왜?!
환기가 되지 않는 공간에서 화분에 물을 주면 흙의 물이 마르질 않는다. 그것도 모르고 1주일이 지나면 다시 물을 들이붓는다. 우리가 입을 열고 물을 넣으면 목구멍으로 바로 넘어가듯이 건조한 흙에 물을 가득 부어주면 뿌리는 놀라운 속도로 이를 빨아들인다. 그 힘으로 잎맥 혹은 꽃잎 끝까지 고루고루 물이 전파되며 그 특유의 탱탱함과 파릇파릇함이 유지된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가 물을 너무 많이 마셔 그만 마시고 싶은데도 누군가 계속해 입에 물을 붓는다면...당연히 그것은 고문이다. 식물도 마찬가지다. 뿌리가 다 빨아들이지 못한 물은 흙에 남는다. 축축한 흙에 둘러싸인 물배 찬 뿌리는 당연히 썩어버린다. 집과 사무실에서 죽어가는 식물들은 대부분 그렇다. 사실 물을 안줘서 죽는 경우는 별로 없다. 건조해서 잎이 쪼그라들면 너무 늦지 않게만 물을 흠뻑 주고 잘 지켜보아도 식물은 금방 살아난다. 너무 늦지만 않게 말이다...(우리집 아레카야자는 때를 놓쳤더랬죠...스투키에 이어 2kill)
그렇게 식물을 보러 여의도의 여러 사무실과 집을 방문해보면, 우리는 참 식물과 맞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사무실 창문들은 아주 작거나 거의 열리지 않는다. 겨울엔 난방이 여름엔 냉방이 하루종일 돌아간다. 물론 요즘은 플랜테리어는 물론이고 전문가 뺨치는 식집사분들이 많아 나조차도 우러러 볼 때가 많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공간들은, 식물이 살기에 적합하지가 않다.
환기가 잘 되고, 햇빛이 적당히 드는 공간.
너무나 당연해보이는 이 공간이, 우리 일상에선 의외로 찾기 힘들다.
식물에게 꼭 필요한 이 조건은, 우리 인간에게도 꼭 필요한 조건일텐데 말이다.
그런데 꼭 우린 물을 얼마나 많이, 자주 줘야할까만 생각한다.
개업화분이라는 이름으로 이 겨울에도 바깥에서 떨고있는 식물들을 여기저기서 본다. 잎맥 가득 차있을 물이 얼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물을 줬으니 살아- 라는 마음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오늘을 살아가는 모습과 참 닮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너한테 필요해보이는 걸 줬으니
너는 내가 필요한 걸 줘-
글쎄, 그렇게 누구와 살 수 있을까? 식물도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참 식물과 맞지 않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