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이 Feb 03. 2022

꽃을 선물해본 적 없는 플로리스트

글쓰는 플로리스트 다섯 번째 이야기

꽃은 늘 사람들을 위로하거나 기쁘게 하는 자리에 가잖아요.
그런 기쁨에 일조할 수 있어서
플로리스트로서 정말 기쁩니다.


  꽃집 사장들에게도 연말 시상식 같은 게 있다면 아마 대상 수상자는 분명히 저렇게 말할 것이다.

  일은 고되지만, 손님분들의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면 절로 피로가 풀리다고.

  누군가의 마음을 전달하는 일을 돕고 있어 행복하다고.


  하지만 나는 차마 그렇게 말하지 못할 것 같다.

  나의 거의 유일한 장점은 거짓말을 못한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다정한 포즈에 숨겨진...나의 차가운 심장


무관심 플로리스트


  나는 살가운 사람이 아니다. 정확히는 남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잔정도 큰 정도 없는 편이다. 세상 만사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면 내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를 모르고 살았다. 엄마 아빠는 물론이고 남편의 생일도 내겐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마음 속으로는 중요할지 몰라도 뭔가 해야한다는 압박이 별로 없는 날이다. 물론 하나뿐인 아들의 생일은 어떻게든 행복을 나누려고 노력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람들을 그렇게 챙기며 살아오질 않았다. 내 생일은 아주 중요하다.


  생각해보면 그게 성격때문인 건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오며 제앞가림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다보니 그것이 성격이 된 것인지 선후관계는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난 단 한 번도 꽃을 누군가에게 선물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 내가...꽃집 사장이 됐다.


사람들이 꽃을 이렇게나 많이 사는구나...!?

  꽃집 사장이 품기엔 너무 이상한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꽃집을 열고 1년 남짓 내가 가장 놀라웠던 것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꽃을 많이 선물한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어떻게 창업을 했느냐고 물어볼 수 있겠지만, 사실 난 내가 예쁜 꽃다발을 만들어내는 데 관심이 있었을 뿐 사람들이 실제로 꽃을 왜 사고 누구에게 주는지는 크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꽃을 선물하는 세상


  병문안을 갈 때도, 퇴근길에 문득, 여자친구 생일이어서, 졸업식이어서, 승진을 해서, 퇴사를 해서, 이직을 해서, 혹은 정말 그냥. 사람들은 참 많은 이유로 참 많은 꽃을 선물한다. 책상에 수북이 쌓인 꽃도매시장 매입영수증을 보고 있으면 저걸 다 상품으로 만들어 누군가에게 주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때도 있다. 어떤 단골 분은 1주일에 세 번이나 연락을 주신 적도 있다.


사람들은 참 꽃을 많이 선물하고 있었다.

나만 빼고 말이다.

용돈박스....라는 걸 선물한다고요?!!! 라는 마음으로 만든 용돈박스

  특히 부모님 생신이나 어버이날에는 용돈박스같은 상품을 많이 주문해주시는데, 박스에 정성스레 꽃을 어레인지하고 그 안에 용돈을 듬뿍 담아주신다. 용돈을 일일이 말아 반전용돈을 만들거나 배치하는 것도 꽃집사장의 몫인데, 5만원권을 하나하나 꽂다보면 처음에는 세상에 이렇게 돈을 잘 버는 사람이 많나 싶다가-그것도 어느정도는 사실이겠지만- 아, 이게 세상 사람들이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구나 깨닫는다.

  띠링, 입금해드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부러 돈을 더 들여 그 돈을 주는 행위에 마음을 담는 분들을 보면 나 스스로 참 불효자-혹은 나쁜 아내, 며느리-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꽃을 사서 선물한다는 대단한 행위


  나의 성향을 잘 아는 짝꿍은 지난 1년간 나를 지켜보며 사람이 많이 변했다고 한다. 클래스를 통해 알게된 손님들과 교류하거나 단골분들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걸 보며 그래도 타인에게 조금은 더 마음을 쓰는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말이다. 

  생각해보면 포레스트윌로우의 매장 단골분들 모두에게 나는 굉장한 신기함과 존경의 마음을 품고 있다. 꽃을 자주 사러 오는 고마운 분들이 진심으로 신기하고, 그 행위가 대단해보인다. 손님들의 인생 세부항목에는 여전히 아무 관심이 없지만- 그래도 그렇게 마음을 나눌 줄 아는 분들이라면 분명히 나보다는 좋은 사람일 거라는 확신이 있다. 나는 높은 확률로, 나보다 좋은 사람에게 물건을 파는 사람이다.


  내가 가게를 열기 전, 월급날이면 꽃다발을 사오던 짝꿍은 이제 내가 꽃집을 열게 돼 꽃선물을 할 수 없게 됐다고 불평했다. 아마 다른 만만한(?) 선물을 찾기가 어려워서도 있을 것이고, 나름 플로리스트라는 아내에게 잔소리 듣지 않을 수준의 꽃다발 선물을 구하기도 쉽진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꽃을 상품으로 제작하기 시작한 뒤부턴 그냥 꽃다발을 보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무슨 재료를 썼나' 일일이 따지는 게 먼저였다.

  그러던 짝꿍이 얼마 전 학원 출강을 나갔던 일요일 점심시간에 나에게 꽃을 선물해주었다. 일요일도 못 쉰다고 아침부터 히스테리를 부린 내가 마음에 걸린 모양이다. 참 오랜만에 받아보는 꽃 선물이었다. 일요일이라 짝꿍의 눈에 차는 꽃집을 찾기 어려웠다고하지만, 이상하게도 처음으로 꽃다발을 내가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같은 비교의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저 몹시 기뻤다. 

  지난 1년간 정신없이 일했던 내 손끝에 이런 감정들이 내가 모르는 어떤 곳에서 피어나고 있었다고 생각해보면, 참으로 벅찬 일이다. 


  꽃을 전해드리며, 조금씩 내 마음 안에도 내가 아닌 누군가를 따스하게 생각해볼 여유가 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 차가운 마음의 플로리스트에게도, 조금은 더 따뜻한 사람이 될 기회가 되는 2022년이 되길 바래본다.

작가의 이전글 꽃말은 저도 모릅니다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