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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이 Feb 07. 2022

실수가 단골을 만든다

글쓰는 플로리스트 여섯 번째 이야기

단골은 사랑이다


  개업 2년 차. 여의도 꽃집 포레스트 윌로우에는 자랑스럽게도 단골 분들이 여럿 계신다. 그 숫자가 충분한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한분 한분 모두 진심으로 사랑스러운 분들이다. 어쩜 그렇게 다들 예쁘고 잘생기고 착하신지. 일주일에 두 세 번 찾아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때마다 잊지 않고 문의해주는 단골 분들은 사실 꽃집 사장의 거의 유일한 행복이다. 


  가끔은 어떤 분이 매장을 너무 안 찾아주시면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걱정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 기간이 길어지면...


 드디어 버림받은 건가! 왜때문에!!!! 

지옥의 마음이 고개를 들지만...


  조금 검어진 얼굴로 제주도에 다녀왔어요, 라든가 사장님 잘 지내셨어요? 너무 오랜만이죠? 라고 말하며 커피 한 잔을 나에게 건네주면 그 순간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는 느낌이랄까. 살면서 남자에게 먼저 고백해본 적은 없지만, 아마 고백을 승낙받으면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단골 손님으로 오시다가 제주도를 훌쩍 가셔서 나를 긴장케했던 H님...은 클래스를 함께하며 더 가까워졌다 :)



  사실 우리 매장의 첫 단골 손님은 나의 엄청난 실수로 시작됐다. 


  때는 작년 5월 8일 어버이날. 

  말로만 들었던 꽃집의 소위 '시즌'. 아주 긴장했다. 카네이션 구하기 전쟁에 허덕이던 초보 사장에게 의외로 주문이 쏟아졌다. 처음으로 예약이 밀리기 시작했고 당일 방문해준 고마운 손님분들을 맨손으로 돌려보내는 일까지 생겼다. 문자 그대로 밤을 꼴딱 선 채로 지세우며 작업했다. 여기까지가 정신없는 사장의 변명이다.


엉망진창 어버이날

  오전 11시


 1번 손님이 들어와 예약 상품 픽업을 원하셨다. 나는 내 눈썰미가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기에, 어떤 상품을 예약하셨는지 묻지도 않고 꽃냉장고에 제작해둔 꽃바구니를 전해드렸다. 

1번 손님-핑크톤 꽃바구니-픽업완료
오전 11시 10분

  2번 손님이 들어오셨다. 2번 손님께도 꽃바구니를 전달했다. 

  그런데 2번 손님의 표정이 심상찮다. 남아있는 바구니는 오렌지톤이었다. 본인은 핑크톤 바구니를 주문하셨다고 했다. 


아뿔싸, 1번 손님께 2번 손님 상품을 잘못 드렸구나!!!!!

  여기서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수습했어야 했는데 방황하는 영혼의 초보사장은 말도 안되는 실수를 연이어 저지르고 만다. 2번 손님께 사죄를 하고 냉장고에 있던 오렌지톤 바구니를 대신 드린 것이었다! 마음이 넓은 2번 손님은 감사하게도 괜찮다고 하시고 오렌지톤 꽃바구니를 들고 가셨다. 그러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1,2번 손님의 상품이 바뀐 것이라고만 생각한 것이다.


2번 손님-오렌지톤 꽃바구니-픽업완료.


  2번 손님이 나가고 예약 장부와 꽃냉장고를 번갈아 바라보는데....어딘가 찜찜했다. 꽃다발이 하나 남아있었다. 잠깐, 저 꽃다발은 누구 것이지? 내가 만들긴 했는데...넌 도대체 누구냐?! 급히 예약장부를 들춰보았다.


  앗!!!!!! 곧 우리 매장에는 3번 손님이 올 예정이고 

  그 손님은 방금 2번 손님이 가져간 오렌지톤 꽃바구니를 주문하셨다!!!!!


1-2-3-1

2번의 상품을 1번에게 3번의 상품을 2번에게...


  꽃집이 무슨 야바위하는 곳도 아니고 손님들의 예약을 서로서로 맞물리게 헷갈려버렸다.

  1번 손님은 꽃다발을 주문하셨는데 동생 분이 대신 픽업해가시면서 꽃바구니를 그냥 들고 가신 것이었다. 하필 1번 손님의 동생 분과 2번 손님의 인상착의가 조금 유사하여 나는 의심의 여지없이, 핑크톤 꽃바구니를 먼저 드려버린 것이다..




나는 망했다.

꽃집을 열자마자, 대목 중의 대목이라는 5월 8일 어버이날에, 이 화창한 날에.

손님들의 엄청난 컴플레인으로 나는 가게 문을 닫게 될 것이다. 

가게 문을 닫으면....밀린 월세는....우리 아들은....



천사 단골의 탄생 


  내 머리가 지옥의 나락으로 빨려들어가던 찰나, 다행히 옆에 있던 짝꿍이 정신차리고 전화를 돌리자고 했다.

1번 손님, 2번 손님께 차례로 픽업이 잘못됐음을 안내드렸다. 다행히 두 분 모두 여의도에 계셨고 두 분 모두 천사셨다. 다시 매장으로 돌아오시겠다고 했다.


  그사이 3번 손님이 당도해 본인이 주문하지 않은 꽃다발 앞에 서 잠시 영겁과도 같은 대기시간을 가졌고...

한 분 한 분 돌아와 세 분이 사이좋게 다시 원래 주문했던 상품으로 찾아가셨다. 잽싸게 편의점에 가 홍삼스틱 2+1을 사와 오신 분들께 사죄의 말씀과 함께 선물로 드렸다. 다행히 3번 손님까지 세 분 모두 천사들이셨고, 누구도 나에게 섭섭한 말을 하지 않으셨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다시 생각하니 너무 어이없고 죄송하여 가장 수고로웠을 1번 2번 손님께 따로 커피쿠폰을 선물로 드렸다.


  그리고 그 두 분은 지금 1년 내내 우리 매장을 찾아주시는 단골 중의 단골 분들이 되었다.


  사실 이야기의 핵심은 꽃집 사장의 말도 안되는 실수를 어떻게 그렇게 너그럽게 용서하실 수 있었을까인데 그건 나같은 속좁은 사람으로서는 짐작도 할 수 없는 인품이라 뭐라고 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확실한 건 다른 곳에서의 사람 인연이 그렇듯, 장사를 하면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를 정하는 것은 어떤 우연한 '사건'들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 사건으로 인연이 영원히 갈라설 수도 있겠지만, 감사하게도 그 사건을 함께 겪은 '동지애(라고 혼자 우겨본다)'로 그 분들은 우리 가게의 단골이 되셨다.

꽃다발을 주문한 분께 꽃바구니를 드리는 마법의...꽃집!

  오늘도 그렇게....우당탕탕 초보사장의 좌절을 너그러히 보듬어줄 단골 분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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