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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햇살 Aug 11. 2023

거기, 사람 있어요

진정한 이웃의 숨결

 아흔다섯인 어머니는 보건진료소를 방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할 때가 많다. 간밤에 열이 올라서, 벌에 쏘여서, 들깨 모종을 한 후 몸살이 나서 등 여러 이유로 진료소를 이용한다. 다른 동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인구 절반가량이 만 65세 이상의 노인이라는 산골 동네에서 보건진료소는 그들에게 큰 위안이 되는 곳이다. 얼마 전 그곳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는 책을 만났다. 무주 산골 보건진료소장으로 활동하는 박도순의 산문집 ⟦거기 사람 있어요⟧이다     

  박도순 소장은 산골 동네에서 간호 일을 하며 동네 분들의 삶을 깊이 있게 읽어내고 가려운 곳을 긁어 드릴 줄 아는 사람이다.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진리를 체득하고 삶을 반추하며 하루하루를 그들과 함께 꽃 피운다.     

  인생이 무엇이냐는 물음 앞에 “하고 싶은데 해서는 안 되는 그 일, 날마다 그것을 물리치는 일이 인생”이라면서 어제 물리친 그 일로 인하여 오늘 밥을 먹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는 어르신, 귀가 어두워 소리를 들을 수 없기에 딸이 설치해 준 ‘알 낳는 거시기’(복합기 팩스)로 소통하며 청각 상실의 불편을 해소하는 강 씨, 김장 증후군에 걸려 소화불량과 변비로 고생하시는 엄마들, 죽고 싶어도 죽어지지 않는 세상을 살면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도장을 찍고자신의 손으로 결정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여기시는 어르신들, “세상일이 어찌 좋을 수만 있고 나쁠 수만 있겄는가. 좋은 일이 생길 때는 무슨 안 좋은 일 주시려고 이러나, 또 안 좋은 일이 생길 때는 무슨 좋은 일 주시려고 이러나 생각하라.”라고 조언해 주시는 어르신. 이들의 삶을 그녀는 애정 어린 시선으로 자세히, 그리고 오래 들여다본다. 순박한 우리네 이웃들이 짠하여 먹먹해지기도 하고, 유머 있고 낙천적인 삶을 만나면 감동이 되고, 지혜로운 우물에서 건져 올리는 그분들의 철학 앞에 숙연해지기도 한다.     

 “사람이란 좋은 기억을 간직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사랑으로, 그리움으로 살아간다”는 강 씨의 고백처럼 그녀는 아름다운 추억을 생산하려 노력한다. 형식적인 활동이 아니라 주민들과 시선을 맞추고 속내까지 들여다본다. 낮은 물론 늦은 밤이나 새벽에도 약을 처방해 주고 도움의 손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때때로 방문 진료를 하면서 거동이 불편한 주민들의 발이 되어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해주기도 한다. ‘그들 한 생애가 책’ 임을 깨닫고 그들이 써낸 글들을 읽고 또 읽으면서 공감하고 융화한다. 주민들의 육체는 물론 정신적인 아픔과 외로움까지 간호하는 데 정성을 기울인다.     

 이 책은 우리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고,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의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따라서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을 것인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삶의 가치를 선물할 것이다.     

▶이진숙 수필가는 전직 고교 국어교사. 201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부문에 당선됐다.  2010년부터 최명희문학관에서 혼불 완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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