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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햇살 Dec 15. 2023

반짝이는 눈을 가진  Y에게

그녀와 수다를

  Y!

비가 오려나 봐. 후텁지근하고 먹구름이 낮게 깔렸어. 잠포록한 날씨임에도 먼 길을 달려오시는 구리의 독서모임 회원들의 안전이 염려되는구나.

그들의 여정을 위해 마음을 모으고 하루를 시작했어.

이번 만남에 대한 설렘은 두 달 전 강의 부탁을 받았을 때부터지.

남원 방언의 어려움, 방대한  역사자료, 깊이 있는 풍습 연구,, 거꾸로 읽어낼 수 있는 역사의식, 삶의 길을 안내하는 철학, 꼼꼼하고 세심한 묘사력, 일만이천 장의 원고인 <혼불>을 낭독하고 있다니 더욱 애정이 생기는구나.  구리시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혼불낭독모임. 어떤 분위기일까 기대가 되었어.

 그분들은 최명희 문학관 지하에 있는 비시동락지실로 내려오는 계단에서도 한쪽 벽에 걸린 글을 읽으면서 한참을 머물렀어. 수많은 사람들이 오갔지만 이리 오래 이 글귀에 마음을 담는 분들은 처음 보았지.

  " 가슴에 꽃심이 있으니 피고 지고 다시 피어", " 꿈의 꽃심을 지닌 땅 전주", "꽃심은 꽃의 중심, 꽃의 힘, 꽃의 마음"에서 나오는 그 '꽃심'에 꽂힌 거야.


 한 시간 반 동안 <혼불>과 작가 최명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는 아픔을 느꼈다는 작가의 글쓰기 고통을 전달만 하다가 "선생님 책 소개해주세요" 하는 수강생 말에 나는 왜 14년간 이렇게 혼불 읽기 전도사 활동을 하면서 정작 내 글은 못썼을까 부끄러웠어.

갈팡질팡하는 사이 십 년 이십 년이 흘러가버린 거야. 맞벌이를 해야만 생활이 유지되는 현실에 굴복하고 열심히 살아냈어. 엄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와 딸로서, 누나로서, 동생으로서, 직분에 충실하려고 착한 짓을 흉내 내다가 나를 놓친 것 같아. 안 아픈 척 괜찮은 척, 즐거운 척, 무탈한 척 위장하며 살아온 내가 참 미워졌어. 아니 핑계 대기 바쁜 내가 불쌍했지. 내 꿈을 외면하고 마치 내가 아니면 부모도 자녀도 남편도 어찌 될 것 같은 불안함과 오만함에 그들이 원치 않아도 알아서 희생이라는 것을 남용을 했지.

 더군다나 수필과 동화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다가  내 세월을 흘려보낸 것도 있어. 한 우물을 못 판 거지.

오늘 아픈 네가 보내온 글을 보면서 너만큼은 갈팡질팡하지 않았으면, 네가 걷는 길에 등불을 켜 놓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글쓰기를 미루지 말기를. 오히려 지금이 적기임을 깨닫고 몰입해 보기를. 글을 쓰면서 너의 상처가 치유되기를 권하고 싶어.

 너의 글은 읽는 이를 끌어당기는 흡인력이 있어. 이제 서른 인 네가 쓴 글에서 노장의 연륜을 느꼈단다. 그 나이로 그 공간으로 환치시키는 그리고 같이 아파하고 함께 위로받는 느낌을 주네.

 네게 숨겨진 그 씨앗이 움트려나 봐. 캄캄한 동굴에서 답답했을, 홀로 자신을 키우느라 애가 탔을,  너에게 이제는 햇살을 내려줘. 다사로운 햇살 아래 몸을 말리며 일광욕을 시켜줘. 맘껏 글을 쓰면서.

 그래야 네가 이 나이가 되었을 때 지금 내가 겪는 이 글쓰기에 대한 갈증을 좀 더 수월하게 해결하지 않을까?

 너의 꽃에 물을 주고 햇빛을 쏘이면서 바람을 이기게 한다면  너의 꽃심에서 위로와 평안과 기쁨과 뭉클함이 몽글몽글 피어날 것 같아. 지금도 여전히 반짝이는 눈빛을 가진 너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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